“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
유서는 노동조합에 띄우는 승리 염원문처럼 읽힌다. 스무 줄도 되지 않는 짧은 글에 ‘승리’라는 단어만 5차례 썼다. 정동진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라고도 했다. 지난 5월17일 강원도 정동진 근처 도로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염호석(34)씨가 남긴 유서는 그랬다. 그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경상남도 양산센터 분회장이다.
그러나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지난 5월18일 저녁, 염씨의 주검이 안치된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에 갑자기 전투경찰 250여 명이 들이닥쳤다. 분향소를 지키던 노조원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최루액까지 뿌려졌다. 그 와중에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을 비롯해 20여 명이 연행됐다. 그리고 경찰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염씨의 주검은 구급차에 실려, 정동진 대신에 부산으로 떠났다. 경찰이 강제로 주검을 빼앗아가는 일은 1991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박창수씨 주검 탈취 사건 이후 처음이다.
23년 만의 노동자 주검 탈취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 관계자가 전해준 당시 정황은 이렇다. “염호석씨 아버지가 5월17일 저녁 ‘노조에 모든 장례 절차를 맡긴다’는 위임장을 썼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강원도로 올라오는 길에 충청북도 단양휴게소에서 양산센터장(사장)이랑 삼성 쪽 사람들을 만났다고 전해줬다. 그 사람들이 보상금 이야기를 꺼내면서 장례도 치러준다 말하기에 ‘아들 주검이라도 먼저 봐야겠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서울로 올라온 뒤 5월18일 오후가 되자 아버지 태도가 돌변해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친구 2명이 노조와의 접촉을 막았다. 아버지는 오전에 1~2시간 동안 외출했었다. 회사 쪽과 만난 게 아닌가 싶다.” 그 뒤 유가족이 112 전화로 경찰에 주검 인도 요청을 하자마자, 경찰이 득달같이 달려왔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들은 “조합원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고인의 뜻을 지켜달라’고 빌었다. 이게 과연 경찰이 무리하게 주검을 탈취해갈 만한 일이었느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지난 5월18일 밤 9시가 넘어 찾은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앞에는 노조원 100여 명이 허탈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지난해 10월 남편을 잃은 ‘별이 엄마’ 이미희씨도 함께였다. 천안센터 소속 수리기사였던 남편 최종범씨는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가 노조 동료들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다.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된 뒤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세 번째 죽음이다. 지난해 8월에는 칠곡센터 조합원 임현우씨가 과로사로 숨졌다. 이미희씨는 “유서도 있고 (염호석씨) 본인이 선택한 일이다. 죽었다고 유족이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경찰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이들의 진심 어린 충고가 염씨 아버지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삼성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아들 아니냐. 아들 주검을 데려갈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염씨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딸을 2007년 백혈병으로 잃은 황상기씨는 한동안 장례식장 앞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3월 70여만원, 4월 41만원 월급그런데 경찰의 ‘탈취’ 소동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틀 뒤인 지난 5월20일 경남 밀양공설화장장 앞에서도 경찰 300여 명과 노조원 100여 명이 염호석씨의 유골함을 놓고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염씨의 생모인 박아무개씨도 함께했다. 염씨가 6살 때 이혼한 뒤 따로 살아온 어머니 박씨는 “내 아들 유언대로 하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경찰은 유골함을 가져갔다. 염씨와 함께 경남·부산 지역에서 일했던 노조 동료들은 밀양공설화장장을 찾아가기까지도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부산 행림병원 장례식장에 영정 사진만 놓여 있을 뿐 애초에 염씨의 주검이 다른 곳에 안치돼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부랴부랴 인근 화장장 예약 상황을 뒤졌다. 유족은 노조에 5월21일 오전 발인이라고 일러줬지만, 화장장 2곳에 각각 5월20일 오후 예약이 잡혀 있었다. 부산 행림병원 관계자는 “유족과 경찰이 외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함구해달라고 부탁해왔다”면서도 “시신을 병원이 아닌 다른 쪽에 안치해놓는 건 유족들이 원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고인의 유골함이 최종적으로 어느 납골당으로 갔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유족과 경찰의 ‘노조 따돌리기’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과연 국가 공권력이 유족 개인의 요청만으로 이렇게 쉽게 움직였을까?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경찰이 삼성을 비호하는 걸 넘어 한 몸이 되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추모와 애도가 아닌 겁박과 모욕, 폭력을 자행했다. 고인 어머니의 강력한 의사에도 불구하고 가정사에 국가권력을 동원하는 망동에 분노해야 한다. 삼성이 어떻게 개입했고, 경찰이 어떻게 협력했는지 진상을 바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 삼성의 개입은 ‘심증’만 있을 뿐이지 ‘증거’는 없다. 삼성전자서비스 쪽은 “우리가 유족을 만날 이유도 없고, (양산센터와 유족 사이) 중간에 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협력업체인 양산센터와 소속 직원 그리고 유족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염호석씨는 2010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 입사했다. 냉장고, 에어컨, 노트북, 휴대전화 등 삼성전자 제품을 애프터서비스(AS) 해주는 수리기사였다. 삼성전자서비스 로고가 찍한 유니폼을 입고 일했지만, 염씨의 소속은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와 계약을 맺고 있는 협력업체일 뿐이었다. 정해진 월급은 따로 없었다. 콜을 받아서 배당되는 수리 건당 수수료에 따라 월급이 달라졌다. 비수기 때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봤자 방문 수리에 필요한 차량 유지비 등을 빼고 나면 80만~90만원 남짓 손에 쥐었다. 견디다 못한 염씨는 2012년 퇴사했다가 2013년 2월 재입사했다.
일정표에 ‘콜 주지 말라’ 메시지그리고 그해 7월 노조가 설립되자 양산센터 분회장으로 선출됐다. 파업은 가뜩이나 빈털터리였던 주머니를 더 가볍게 했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파업으로 인해 염씨는 3월 70여만원, 4월 41만원의 월급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40여 곳의 위임을 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금속노조는 ‘월급제 도입’ 등을 놓고 지난해 말부터 임금·단체협상을 벌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 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경총 관계자는 “서울·경기 권역에서는 126개 쟁점 중 73개 항목에 잠정 합의했는데, 금속노조 쪽이 갑자기 각 협력사 대표이사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박차고 나갔다”며 교섭 재개를 촉구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생활고는 염씨를 비롯한 노조원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난 5월20일 밤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만난 부산 광안센터분회 총무 박정애(45)씨는 자신을 “호석이 누나”라고 소개했다. 외롭게 자란 염씨는 매주 남부 지역회의 때마다 만나는 박씨를 유독 따랐다. 최근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뭐하냐?”고 물으면 “앉아서 논다”는 답이 돌아왔다. 삼성전자서비스 고객센터 전화(1588-3366)로 들어오는 제품 수리 요청은 박씨와 같은 내근 직원들이 일정이 맞는 수리기사와 연결해준다. 그런데 염씨처럼 노조 활동에 열심인 기사들의 일정표를 열면 ‘이 기사한테는 콜을 주지 말라’는 기타메시지가 뜬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말려죽이기 위한 압박 수단이었다. “호석이는 상경 투쟁이 없는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르바이트를 뛰는 것 같았어요. ‘택시 모요?’라고 물으니 ‘누이 알면 가슴 아프니까 알려고 하지 마소’라고만 하더라고요. 속 깊은 녀석이었어요.” 수백만원대의 빚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올 초엔 부산 해운대센터, 충남 아산센터 등이 갑작스레 폐업 신고를 하는 바람에 해고된 노조원들이 생겼다.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곳이어서 ‘위장폐업’ 의혹이 일었다.
박씨가 기억하는 ‘동생’의 마지막 모습은 지난 5월14일 밤이다. 2박3일 동안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였다. 염호석씨는 “다음 상경투쟁 때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박씨를 비롯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1천여 명은 5월19일부터 다시 삼성 본관 앞에 침낭을 폈다. 염씨가 며칠 전에 누웠던 바로 그 자리였다. 이번에는 무기한 노숙농성이다. 낮에는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의 노동권을 알리는 선전전을 계속한다. 협력업체는 삼성전자서비스가 비용 절감을 위해 거짓으로 만든 위장 도급업체일 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실고용주는 삼성전자서비스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180여 곳 가운데 직영센터 소속 800여 명을 제외한 비정규직 수리기사는 1만여 명에 이른다.
고용노동부 ‘불법파견 아니다’ 보고서삼성이 이들에 대해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아직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조사보고서를 내놨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수리기사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명령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에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민사소송을 법원에 내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종 판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경우에도, 검찰에서는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현대차의 노동자가 맞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협력업체들이 노조 가입을 방해한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이 회사 관계자들을 기소하는 의견으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최종범씨에 이어 염호석씨까지 잃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은 지금 악에 받쳐 있다. “회사를 20년 다녔는데 오래 다닌다고 나아진 게 하나도 없어요. 수리기사뿐만 아니라 내근직도 건당 수수료로 임금을 받아요. 날씨가 궂은 날은 일당도 못 받는 셈이죠. 경쟁 업체인 LG전자 협력업체에 비해서도 수수료가 절반 수준밖에 안 돼요.” 목숨을 내놓고, 아스팔트에서 몇 날 며칠을 지새워야 할 정도로 싸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박정애씨는 그동안 삼성한테 심하게 당한 것에 대한 “한풀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서비스 쪽은 “삼성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과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명확히 나뉜다. 협력업체 지원 차원이면 몰라도, 직접 고용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임금 문제나 금속노조와 경총 간 교섭에 끼어들 수는 없다”고 밝혔다.
며칠 전 그가 누웠던 자리에 침낭을 펴고주검과 유골함을 탈취해갔던 경찰은 5월18일 장례식장에서 연행된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장례식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과 5월19일 삼성 본관 앞 집회에서 연행된 위영일 지회장, 김선영 영등포분회장(집시법 위반·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 등 노조 지도부 3명을 구속했다. 노조의 투쟁 의지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이것은 세상이 아니다. 너희들은 죽은 자의 시신마저, 유언마저, 유골마저 강탈해갔다. 너희들이 빼앗아간 건 한 사람의 시신만이 아니다. 너희들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도려냈다. (중략) 찾으라는 시신은 찾지도 못하는 정부가 영안실을 기습했다. 국가 공권력이 아닌 일개 자본의 용병이었다.” 지난 5월20일 밤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송경동 시인이 낭독한 추모시의 일부다. “오늘은 먼저 가지만, 내일은 동지들과 함께 해가 뜨는 정동진으로 가겠다고 했다. 정동진으로 가기까지 우리에게 더 이상 다른 길은 없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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