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의 진보정당, 주민단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결성한 ‘마포파티’의 구성원들. 개인 가입을 원칙으로 지역당을 지향하는 마포파티의 실험은 ‘아래로부터 진보의 재구성’으로 주목받는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마을극장에서 하고, 바보주막으로 갑시다.”
지난 5월6일, ‘민중의집’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무엇을 하는데? 마포파티. 어디서 하는데? 성미산 마을극장. 그러니까 진보정당 운동이 만든 ‘마포 민중의집’에서 열린 회의에서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창립행사를 하고, 바보주막에서 뒤풀이를 한다는 결정이 났다. 바보주막은 정의당 마포지역위원회 위원장이 운영하는 주점이다. 여기선 마을과 투쟁과 선거가 따로가 아니다. 마포파티의 ‘파티 피플’은 마을의 무대에서 일상의 리듬을 타고 투쟁가를 부르며 놀았다. 아, 클럽에 가려면 각자 입장료를 내야지. 술값을 혼자 내고 주목도 혼자 받는 ‘몰빵’은 없다. 여긴 ‘1/n’이다.
마을과 투쟁과 선거는 하나“1번 오빠?” “아웃!” “2번 언니?” “비켜!” 파티의 피플이 주고받는 함성은 이것이다. 마포파티는 1번 새누리당, 2번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독점한 마포구 의회에 던지는 구민의 도전장이다. 정치도 파티를 하듯 흥겹게, 각자가 음식을 하나씩 해오는 홈파티처럼 평등하게, 뒤풀이까지 함께 책임지자는 것이다. 성미산 주민, 망원시장 상인, 서부지역 노점상,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마레연) 성소수자가 회비를 내고 후보를 내고 책임도 지는 ‘마포파티’가 시작됐다.
광고
서울 마포는 ‘핫한’ 동네다. 2002년부터 성미산 지키기 운동이 벌어졌고, 2007년 상암동 이랜드 비정규직 아줌마들의 투쟁이 있었고, 2009년 두리반에서 농성이 시작됐고,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빗자루를 들고 일어났고, 2012년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뜨거운 마포엔 전국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네 이웃의 아픔을 내 일처럼 여기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때로 밖에선 유명해도 동네에선 유명무실한 투쟁이 있다. 마포는 좀 다르다. 동네 분위기도 심상찮다. 성미산 마을 공동체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유구한 전통이 있고, 한반도 유일무이의 성소수자 지역단체 마레연도 있다. 협동조합, 마을카페, 공부방 수도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런데 가끔 마포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국회의원은 왜 정청래, 강용석 같은 사람만 하나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모였다 헤어지긴 너무나 가까운 우리들, 그 사이에서 마포당이 탄생했다. 마포의 주민단체, 진보정당, 시민단체 사람들이 지난해 12월 모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뭐라도 해보자 머리를 맞댔다. 거대 양당은 지역에 오면 초록이 동색이고, 진보정당은 사분오열 지리멸렬했다. 차라리 우리가 정당을 만들자. 이름은 마포당. 영어로 ‘파티’가 당이란 뜻이니 마포파티를 열자. 그런데 문제는 현행법. 중앙당이 있어야 정당이 되는 서러운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위헌소송을 낼까 하다가 일단은 ‘정치적 시민단체’ 정도로 결론을 내렸다. 주민조직, 진보정당, 시민단체 등 ‘출신성분’이 조금씩 다르니 합을 맞추는 시간이 걸렸다. 이전에 40여 개 단체가 함께 연대도 했는데, 안철수와 민주당도 합당했는데,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자, 가입은 개인별. 그래서 회비도 책임도 1/n. 정경섭 마포 민중의집 대표는 “연대의 경험은 넘치지만 하나의 실로는 묶이지 못했던 이들이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모였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n은 100명, 하지만 무한대의 n명을 지향한다.
결론은 “우리가 우리를 대변하자”발기인 n들은 저마다 사연을 품고 파티에 합류했다. 망원시장 상인 서정래씨는 “합정동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데, 당사자인 상인들에게는 어떤 공무원도 입점 등록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세상 물정에 밝아서 좀처럼 정치적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상인들도 입점 반대 운동을 함께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이제는 주민의 뜻을 모아서 후보를 낼 때가 되었다.” 그가 지금을 ‘파티 타임’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구청과 상인들이 협의를 했으면 하는데, 구의원이 그렇게 체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성미산 주민인 ‘갈숲’의 소망은 소소하나 원대했다. “동네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열거나 문화공연을 할 손바닥만 한 광장도 없어요.” 천하의 성미산 마을에 그런 공간이 없단다. 그의 파티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다. “광장이 없다는 것은 ‘잠만 자고 나가라’는 명령과 같아요. 주거공간이 생활공간이 되면 주민자치도 떠오르죠.” 세월호의 뼈아픈 교훈처럼, “외부의 시스템이 주민의 안전은커녕 생존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명한 갈숲은 모르지 않는다. “마포당이 정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로드맵을 그리고 가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해보자 그거죠.” 밖에선 개혁적이라고 알려진 국회의원도 동네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믿었던 진보정당마저 왜소하고 지리멸렬해졌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가 우리를 대변하자”. 나이 들어가는 그에게 도시정책은 생존의 문제다. “근본 문제는 살인적인 주거비죠. 과연 노후를 여기서 보낼 수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워요. 저에게 마포파티는 계속 가까이 지내고 싶은 이들과 관계망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권리를 찾는 일이에요.”
광고
“동네를 바꿔야 세상은 변합니다.” 마포당의 구호를 마포구의 성소수자만큼 뼈저리게 체험한 이들도 없다. 마포구청은 성소수자들이 내건 현수막을 철거하고, 커밍아웃 문화제를 불허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수막 철거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홍익대 앞에서 열겠다는 문화제를 불허한 마포구의 차별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마레연 회원이자 토끼똥 공부방 교사인 최윤정씨는 “마포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는데, 구행정은 바보 같은 짓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마레연은 매달 ‘퀴어밥상’을 연다. 함께 밥을 나누며 얘기를 나누는 자리다. 5월의 밥상은 정치수다를 더했다. 마포구 후보들과 성소수자 정책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마레연은 성소수자 유권자들의 메시지를 트위터를 통해 받아 후보에게 전할 계획이다.
가게 온 손님한테 ‘구의원 하는 일 아세요?’철거 반대 투쟁을 벌였던 두리반 유채림 작가는 “몹시 열받아서” 파티에 가담했다. “두리반을 내쫓은 개발안을 통과시킨 자들이 다시 표를 달라고 하니까요.” 그에게 마포당 활동은 두리반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뮤지션들의 집을 지키는 일이다. “마포구에 인디밴드는 800팀이 있고, 멤버는 3천 명이 넘어요. 그런데 공연장이 12곳밖에 없어요. 그중 하나인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없애려고 하거든요.”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다가 원래 건물 소유주인 마포구로 반환된다. 어렵게 가꾼 센터의 운영 주체를 마포구는 존중하지 않았다. 탁상행정으로 서교예술실험센터 공간을 마포문화재단에 위탁운영을 한다는 타령만 반복했다. 유 작가는 “돈이 되는 용도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본 의원 한 명의 힘도 컸다. 지난 3월29일, 쫓겨난 카페 ‘분더바’를 되찾는 문화제를 하려고 텐트를 쳤는데 경찰이 막았다. 비가 내려서 텐트를 걷으면 음향장비가 망가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경찰은 듣지 않았다. 홀연히 나타난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경찰서장과 구청장에게 전화를 하자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됐다. “구의원 4명이 있으면 해방구가 되겠구나.” 그가 마포당에 ‘포섭된’ 이유다. 그는 지금 ‘4명의 기적’을 바란다. 마포파티가 함께하는 후보들의 기적 말이다.
마포파티의 후보들과 회원들은 공동의 약속을 명문화해 당선 뒤에도 후보들과 관계를 유지하자고 했다. 지난 5월3일 세월호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마포파티의 윤성일·설현정·오진아·조영권 후보(왼쪽부터). 마포파티 제공
1 대 17. 아무리 ‘맞짱’을 떠도 ‘쪽수’에 밀렸다. 오진아 마포구 의원(성산2동·중동·상암동)은 유일무이 진보정당 구의원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당선됐고, 지금은 정의당 소속이다. 그가 고군분투한 성과는 지역아동센터지원조례, 장애인지원조례, 도시농업조례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1 대 17의 고립 속에서 “아, 1명만 더 있으면” 하는 간절한 탄식이 나왔다. “상임위가 2개인데 저밖에 없으니 상임위 마크맨도 없어요. 수정안을 내도 1표만 나오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의 일심단결의 대오는 그렇게 강고했다. 주민참여예산조례를 의결하던 순간은 일심단결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조례가 주민 참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흐르자 마포구 주민들이 방청을 요구했다. 그러나 방청을 허락하는 의견은 1표에 그쳤다. 그렇게 주민들은 마포구 회의장에서 끌려나왔다.
광고
설현정 후보(망원2동·성산1동·연남동)는 이날 끌려나온 1인이다. 그는 간단한 ‘팩트’를 더했다. “당시 상임위 의장이 민주당 소속이었어요.” 그는 2003년부터 성미산 주민으로 살아온 엄마이자, 마포희망나눔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해온 활동가다. 설 후보는 “성미산에 살면서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엔 배수지 짓기 반대, 오세훈 시장 시절엔 홍익초·중·고 건설 반대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문제가 터지면 막지 말고, 먼저 디자인하자.” 소외된 이웃에 대한 기억도 그를 후보로 밀었다. “까맣게 변한 김치를 상보로 덮어두고 밥만 또 해서 먹는 어르신을 보면서 울었던 적이 있어요. 동사무소에 동네 할머니와 함께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러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탁탁 책상을 치면서 말하자 할머니 어깨도 툭툭 처지던 모습도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망원동 엄마들의 지지를 얻었고, 상인들의 신뢰를 얻었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어디 사세요?’ 묻고 ‘구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 하면서 상인들이 말을 건다고 들었어요.” 마포파티 출마자들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다.
윤성일 후보(염리동·대흥동·노고산동)는 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을 운영하며 주민들과 함께했다. 이곳에는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는 카페가 있고, 되살림 가게도 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22%를 득표하고 182표 차이로 낙선했다. 그는 “지역 공동체는 활성화되는데 진보정당의 중앙정치는 후퇴했다”고 아쉬워했다. 10여 년 계속해온 진보정당을 탈당하는 어려운 결심을 했던 이유다. “아직도 정당 소속이 아니란 사실이 낯선” 그에게는 조직의 형식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중요했다. 지역에서 연대해온 이들이 함께하니 즐거운 파티가 되리란 기대가 크다. 그는 “지방선거는 토호들이 가장 활개치는, 가장 정책이 실종된 선거여서 주민들도 신물을 내고 투표율도 낮다”며 “구태가 만연한 선거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조영권 후보(서교동·동교동·망원1동)는 비리로 퇴출된 후보의 아들과 경쟁해야 한다. 마포구 의회는 부끄러운 전력이 있다. 2008년 당시 구의회 의장 경선에서 금품 매수 사실이 밝혀져 구의원들이 고등법원까지 유죄 선고를 받았다. 지역 건설업자가 건넨 뒷돈이 얽힌 이 복마전에는 당시 한나라당·민주당 의원들이 함께 연루돼 있다. 이렇게 유죄를 받아 출마가 불가능한 아버지의 지역구를 2세들이 물려받아 출마한다. 마포파티 후보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조 후보도 마포에서 진보정당 운동을 해왔다. 토끼똥 공부방 운영위원장으로 지역운동도 함께했다. 그는 “마법의 1표가 마포를 바꾼다”고 말했다. ‘마법의 2펜스’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1843년 영국 로치데일의 플란넬 방직공장 노동자들은 노예 같은 삶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고, 스스로 공장을 경영하기 위해 매주 2펜스를 모았어요. 그렇게 2펜스에서 협동조합의 역사적 물결이 시작됐죠. 지금 1표에서 진보정치의 새 물결도 시작될 거라고 믿어요.” 그는 당선되면 작은 파티를 자주 열려고 한다. 망원동 파티, 서교동 파티, 알바 파티, 엄마 파티 등을 열어서 의정을 보고하고 의견을 듣고 제안을 모을 생각이다.
선거가 끝나도 파티는 끝나지 않는다선거라는 파티가 끝나도 마포파티는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파티 피플’이 심야의 파티가 끝나도 새벽까지 ‘애프터 파티’를 즐기듯. 오진아 의원은 “선거 이후를 노린 정당”이라고 말했다. 당선만 시키고 끝나는 선거 연대는 이들도 이미 2010년에 경험했다. 여기서 끝나면 진짜 파티가 아니란 생각에 약속을 정했다. “세비의 10%는 주민참여정치를 위한 정책개발비로 사용한다. 3대 공동공약을 개발하고 실천한다. 마포파티 회원 3분의 2의 소환 요구가 있으면 이를 따른다.” 마포파티 후보들과 회원들은 그렇게 굳게 약속했다. 조영권 후보는 “마포구 원내 제3당이 목표”라며 “다음 선거에선 마포당의 이름으로 구청장 후보를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불법 정당’이라 오진아 후보를 제외하면 무소속으로 시민들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보물엔 마포파티의 약속이 들어갈 것이다. 은평당, 구로당, 밀양당, 나주당, 옥천당…. 어쩌면 n개의 파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이 모여서 운동권 오빠들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의 재구성”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n명의 사람이 모여서 n개의 파티를 벌이는 시간. 당분간 ‘몰빵’은 없다. 단지 ‘뿜빠이’가 있을 뿐. 정말 마포에서 시작하면 트렌드가 될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서울 강동구 싱크홀 매몰자 1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
나경원 “내일 이재명 사망 선고일”…도 넘는 막말 공세
한덕수처럼, 윤석열 탄핵 심판도? [3월25일 뉴스뷰리핑]
전한길 자살 못 하게 잡은 절친 “쓰레기…잘못 말해주는 게 친구”
“사흘 새 대피 두 번, 당뇨약 못 챙겨”…화마에 안동 주민 탄식
울산 언양에도 산불, 헬기 3대 진화중…등산객 실화 추정
미 해군 전문가 “군함 확보 시급, 한국이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하면…”
명일동 대형 싱크홀에 빠진 오토바이 실종자…안엔 토사·물 2천톤
검찰, 문다혜 ‘뇌물수수 혐의’ 입건…전 남편 취업특혜 의혹
‘의성 산불’ 역대 3번째 큰불…서울 면적 5분의 1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