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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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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비가 아깝다? 용역비가 아깝다!

국가보훈처가 민주화유공자법 타당성을 검토한다며 발주해서 나온
‘민주화유공자 대다수가 헌법 질서 훼손·파괴자’라는 어이없는 보고서
등록 2014-04-18 17:32 수정 2020-05-03 04:27
기소되지 않은 이영춘씨에게도 내란음모 사건의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다. 언제 구속돼 다른 이들처럼 중형을 받을 지 모른다는 생생한 공포를 이 사건에 대한 법원 선고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다산인권센터 제공

기소되지 않은 이영춘씨에게도 내란음모 사건의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다. 언제 구속돼 다른 이들처럼 중형을 받을 지 모른다는 생생한 공포를 이 사건에 대한 법원 선고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다산인권센터 제공

“민주화유공자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헌법 질서를 훼손·파괴한 경력자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책임연구원 류석춘 교수)가 지난해 12월 작성한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민주화운동 성격 및 국가 기여도에 관한 연구’의 일부분이다.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화유공자법)의 타당성을 검토한다며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5월 3600만원을 들여 발주한 용역 보고서다. 민주화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심의·의결된 사람과 그 유족 또는 가족을 국가보훈대상자로 편입해 교육·취업·의료·양육 지원 등을 보장하자는 게 뼈대다.

강기정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 4월9일 공개한 보훈처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진정한 민주화운동이란 헌법에 명시된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운동이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기소 혐의도 없는데 ‘간첩사건’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는 반발했다. “민주화운동 인정자의 절대다수는 반독재 민주화, 노동운동, 전교조 등의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이 대부분이어서 ‘상당수가 헌법 질서를 훼손·파괴한 경력자들’이라는 보고서는 명백한 왜곡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항거하다 사망하거나 다친 경우”도 보상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한-일 회담 반대, 유신헌법 반대, 3선 개헌 반대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뿌리째 뒤흔드는 주장이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부분도 눈에 띈다. 보훈처 보고서는 간첩사건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며 ‘문인 간첩단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간첩’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지만 실제로는 간첩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이 19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당시 국면 전환을 꾀하려던 박정희 정권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작된 수사 결과를 언론에 알려 문인들에게 간첩의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정작 간첩 혐의는 검찰 기소 단계에서조차 제외됐다”고 밝혔다. 반공법을 일부 적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2011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그럼에도 보훈처 보고서는 ‘간첩사건’으로 분류했다. 당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다 구속됐던 임헌영(73)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40년 전보다도 판단 수준이 떨어져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불법적인 폭력시위, 점거농성 등으로 실정법을 위반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사건들”로 규정했다. 과연 그런가. 1980년 8월 최고통치기구였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노동계 정화조치’를 발표해 민주노조운동에 앞장선 노조 임직원을 잇달아 해임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국제그룹 원풍모방 공장에선 1980~82년 600명이 쫓겨났다. 해고노동자들은 삼청교육대로, 감옥으로 끌려가 죽도록 고생했다. 정권은 그 뒤에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재취업을 막았다. 진실화해위는 2010년 경찰과 노동부 공무원, 중앙정보부 직원 등 73명을 조사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970~80년대 블랙리스트의 광범위한 작성과 취합, 배포에 경찰, 노동부,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개입했음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명예회복을 권고했지만 보훈처 보고서는 ‘불법 폭력시위’로 깎아내렸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탓이다. 원풍모방 노조 부지부장을 맡았던 박순희(67)씨가 말했다. “34년간 억울한 세월을 견디면서도 복직의 꿈을 놓지 않았는데 이제 희망이 없다. 끌려가 고문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절망스럽다.”

‘부림사건’ 보상 사례도 부적절

영화 의 배경으로 주목받은 ‘부림사건’도 보훈처 보고서는 부적절한 보상 사례로 지적했다. 부림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1981년 부산 지역 민주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사회과학 책을 읽던 부산의 학생과 회사원 등 19명을 체포·구속한 사건이다. 사건의 담당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산지법 형사2부(재판장 한영표)는 지난 2월14일 고호석씨 등 부림사건 피해자 5명에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14명도 추가로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부림사건에 엮여 1년6개월간 옥살이한 전중근(57)씨는 “과거사를 정리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할 정부가 엉터리 보고서를 만들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광철 계승연대 명예회복사업국장은 “민주화운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학계에서나 사회적으로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국민의 세금으로 왜 작성했는지 그 배경을 철저히 감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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