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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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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정들이 불편한가요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래도 농성을 접을 순 없다
우리는 서로 폐 끼치며 살지만 깨닫지 못할 뿐
등록 2014-03-15 17:25 수정 2020-05-03 04:27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숨진 이들의 영정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는 장애인들. 이들은 가난한 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숨줄을 조이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한겨레 김정효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숨진 이들의 영정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는 장애인들. 이들은 가난한 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숨줄을 조이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한겨레 김정효

서명하고 가세요, 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늘 그랬다. 목소리는 떨리고 말은 꼬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큰 목소리로 낯선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동료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어렵다. 농성은 560일이 넘었다. 이곳 서울 광화문역 안, 이 농성장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경찰은 안 된다고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짜증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에 보란 듯이 사람들이 죽었다. 김주영이 죽었고, 박지우·박지훈이 죽었다. 어른이 죽고 아이가 죽고 남자가 죽고 여자가 죽고 늙은이가 부모가 죽었다. 이제 농성장 앞 검은 추모대에는 7명의 얼굴이 놓여 있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나를 대신해 말을 건네는 빔스크린 영상 속에서 한 남자가 말한다. 보건복지부 앞이다. 복지부가 사람을 죽여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사람을 죽인 것이 복지부라고 말한다. 복지부. 가난한 자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제도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하나의 단서조항으로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이 부양의무제 때문에 사람이 죽고 있다. 당신은 아들이 돈을 벌고 있으니까, 당신은 아직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안 된다고 한다. 당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자식 때문에 사위 때문에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없다고 한다. 달리 살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으므로, 수급권을 인정받지 못한 할머니가 농약을 먹는다. 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던 할머니가 아파트 복도에서 뛰어내린다.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나무에 목을 매단다.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서 목을 매단다. 이것이 대체 다 무어람.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것인가. 벽이라는 것이 너무 높다. 벽 안에서 이를 갈다가 울다가. 죽기로 하든가 살기로 하든가. 그런 삶들이 있다.

박지우·박지훈의 영정을 본다. 13살 지우와 11살 지훈이는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둘이서 저녁을 해먹다 집에 불이 나 유독가스에 질식했다. 발달장애와 뇌성마비, 이 아이들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었다. 두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누나 먼저 그리고 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광화문역,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지나가며 묻는다. “누가 죽었어요?” 참새 같은 목소리로 재잘대며 지나간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영정 앞 타요버스. 아이들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본다. 너희는 왜 죽은 거니? 검은 천에 둘러싸인 두 아이와 5명의 사람들은 언제쯤 이 지하 광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너무 오래 저이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붙잡아놓은 동안 우리는 잊을 수 없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슬픔도 계속된다. 무겁고 검은 것이 짓누르는 힘이 세다.

아주머니는 묻는다. 1급 장애인들이 나라로부터 받는 돈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사람마다 다른데요. 많이 받는 사람은 수급비에 장애연금 더해서 50만~60만원 정도 돼요. “1급도 그것밖에 안 주나요?” 네. 1급 되기도 어려워요. 1급 되기가 어렵다. 이 이상한 말이 성립할 수 있다니. 아무튼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다 가신다. 나는 서명을 청하지 않는다.

주기도 싫은 돈, 왜 법으로 만들었나

틀어놓은 영상 속엔 노모와 함께 사는 늙은 아들의 사연이 나온다. 몇 번째 재실행되고 있다. 이 가난한 이들의 55만원, 50만원, 40만원은 이제 그만,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뺏을 걸 빼앗아야지 않나. 매달릴 곳이라곤 국가 같은 것밖에 없는, 매일의 삶이 시급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죽고 있다. 드러나지도 않은 곳에서, 국가가 지역사회가 아니 당신이 내게 무언가를 주었어야 했다고 말해볼 생각도 못한 누군가가 오늘도 죽고 있다. 드러나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얼굴들이 있다는 게 더 아프다.

아이들 얼굴 위에 근조 리본이 씌워져 있다. 너무나 익숙할 정도로 많이 봤나보다. 저것이 끔찍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똑바로 다시 본다. 웃는 아이들 얼굴에 죽음을 뜻하는 근조 리본이 붙어 있다.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고 있고. 비극. 비극. 비극.

발이 시리다. 살아 있는 내 두 발. 오후 1시45분. 교대시간 2시. 농성장에 온 시간 지난밤 10시. 전기장판 켜고 자리 깔고 자고 자리 치우고 영정에 초 켜고 밥 사먹고… 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저 추위를 견디며 영정 속 얼굴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동시에 바라보며, 산 사람의 시선을 대체로 피하며, 종종 묻는 말에 답하며 앉아 있었다.

김주영의 영정과 선전물을 유심히 보던 아주머니께서 장애등급제가 왜 없어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장애등급이 있어야 뭘 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지금 장애등급에 따라서 서비스를 주고 있는 게 맞는데요.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더 있는데 정부가 1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 많아서 정작 필요한 사람이 서비스를 못 받고 있어요. 정부가 예산을 늘릴 생각은 안 하고, 이 서비스는 1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하고, 1급 자격도 굉장히 어렵게 만들어놨어요. 이쪽에 예산 쓰는 것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무심히 휙휙 지나간다. 나 역시 고개 들어 그들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간간이 지우·지훈이와 주영씨와 눈을 맞춘다. 떠나지 못하게 하니 그들은 곁에 있다. 잠잘 때도 웃을 때도 저렇게 장막이 되어 곁에 있다. 콧구멍에서 허연 김이 나온다. 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글을 쓴다. 어쩌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낯선 이들과 마주하기 어려운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한 나의 방법일지 모르겠다.

무심한 사람들… 나는 고작 발이 시리다

농성 초반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금방 무언가 바꿔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자신감,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정당함. 사람들을 만나 친절하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 줄 왜 몰랐을까. 그렇다고, 뭐,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무엇이 달라졌다고. 560일이 넘는 동안 달라진 건 늘어난 영정, 죽은 자들의 얼굴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의 위치와 단단함을 더 크게 느낀다.

농성장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우릴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불편하겠지. 그냥 지나가기도 쳐다보기도 말을 걸기도. 마음만큼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이 죽고, 춥고. 살아 있는 나는 고작 발이 시리다.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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