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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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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 희망의 아리랑 가락

지구촌동포연대 활동가들이 우토로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
절망 속에서도 희망 잃지 않았던 어머니들의 노래
등록 2014-02-28 17:4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2월13일, 우토로 마을을 찾은 배지원 지구촌동포연대(KIN) 운영위원(왼쪽)이 아홉 해 동안 연을 맺어온 주민 여군자(73)씨와 안부를 나누고 있다.박현정

지난 2월13일, 우토로 마을을 찾은 배지원 지구촌동포연대(KIN) 운영위원(왼쪽)이 아홉 해 동안 연을 맺어온 주민 여군자(73)씨와 안부를 나누고 있다.박현정

지구촌동포연대(KIN) 활동가들은 2005년부터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주민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함께 걸어왔다. 배지원 운영위원에게, 우토로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과의 추억 한 토막을 들려달라 청했다. _편집자

여군자 어머니께.

2005년 2월 처음 우토로 땅을 밟았을 때, 굽은 등과 커다란 산소통을 끼고 있던 어머니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제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동포들의 역사와 현황을 조사한다며 호들갑을 떨던 저희들 때문에, 산소 호스를 빼고 긴장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계시던 어머니. 해방이 된 뒤 우토로 군 비행장을 차지한 미군이 마을을 없애려고 총을 쏜 이야기,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폐쇄해 아주 먼 곳의 조선학교에 다녔던 이야기. 어느 대목에선가 어머니와 저는 손을 맞잡고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습니다.

우토로 마당에 철퍼덕 앉아 동포들과 뒤섞여 숯불에 고기를 구우며 술 한잔이라도 걸칠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제 몸뚱이보다 큰 장구를 가져와 아리랑 가락을 쳐주셨지요. 그 가락 속에는 우토로의 한(恨)과 희망이 범벅돼 있었습니다. 장구, 피리, 징이 어울린 한마당의 열기는 우토로 마당을 넘어 마을 옆 일본 육상 자위대 훈련소까지 흘러갑니다. 경계 둑 위에서 긴 총을 메고 보초를 서던 군인들도 우리를 바라보았지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우토로로 이어진 동포들의 역사가 어머니들의 노랫소리에 녹아 있었습니다.

요즘 고 문광자 할머니 생각이 부쩍 많이 납니다.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우토로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서셨지요. 군 비행장과 조종사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 남자들은 중노동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었고, 심신의 고통을 이겨내려 공업용 알코올까지 마셨다고 하셨습니다. 고향 경남 마산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눈물 고인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2007년 끝내 눈을 감으셨습니다. 우토로에 갈 때면 문 할머니의 빈집 마당에 누워 그분의 인생을 그리곤 합니다. 저 하늘에서, 우토로 동포들이 쫓겨날 위험에서 벗어났다며 기뻐하실 것이라 믿으면서요.

김군자 어머니를 뵌 지 오래됐습니다. 일흔이 넘은 연세에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겠다며 건물 청소, 찻잎 따는 일을 하시면서도 마을 일이라면 어김없이 달려오셨던 분. 건강이 악화돼 요양원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우토로 일로 오랫동안 긴장하며 싸워오다, 문제가 해결되니 병이 찾아온 것은 아닌가’라고 혼잣말하는 동포도 계셨지요. 홍수가 날 때마다 어머니 집은 침수 피해를 당했습니다. 조선인들이 손으로 땅을 파서 삶의 터전을 만든 까닭에, 우토로 지대는 주변보다 유독 낮은데 어머니 집은 그 가운데서도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이죠. 어머니는 딱 한 번 한국 땅을 밟으셨습니다. 2007년이었던가요. 강제 철거가 임박한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공항에 내리시자마자 말을 잇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이젠 조국이 나서줄 때입니다!”라고 목청껏 외치셨습니다. 재일동포에 대해 기민정책으로 일관했던 대한민국을 조국이라 부르며 하소연하시는 모습에 저희는 말없이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그 조국도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도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를 통해 공적주택을 짓는다고 하니, 홍수 피해는 더 이상 없겠지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토록 지키려 하셨던 우토로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시겠지요?

이렇게 돌아보니 우토로 역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그 근거 없는 희망에 혀를 차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 역사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론 우토로가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놀 수 있는 마을이 되어야겠지요. 올봄에는 어머니가 그리워하시는 고향 하동으로 꼭 모시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군자 어머니.

배지원 지구촌동포연대(KIN)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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