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밤 10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서발 고속철도(KTX) 자회사에 철도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10년 철도산업에 정부는 “경쟁 시대가 열린다”고,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민영화의 물꼬가 터졌다”고 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면허 발급은 더 이상 타협의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철도사업 면허 발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국토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월30일 국회 합의로 철도노조가 파업을 풀었지만 면허 발급 취소 소송은 계속할 계획이다. 철도 관련법을 위반하고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철도사업 면허 발급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이 정리한다.
철도공사가 철도 운영 독점하는가?
노무현 정부 때 통과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보면,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해 시설은 국가가 관리하고 운영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맡도록 돼 있다. 국토교통부가 2004년 12월에 내놓은 보도자료를 읽어보자. “철도공사는 철도 운영 부문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철도 운영은 철도공사가 독점한다는 의미다. 송기호 변호사는 “따라서 아무리 철도공사의 자회사라고 해도 다른 주식회사에 철도운송 면허를 발급한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철도 운영은 철도공사에 독점권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쟁 체제”라고 반박한다. 철도 관련법을 보면, 철도사업자는 철도공사나 철도사업 면허를 받은 법인으로 규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새로운 철도 운영자가 도입될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한 것”이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이미 철도산업 민영화가 법률상 허용돼 있다는 얘기다.
합법적 절차 밟았는가?
면허 발급이 가능하더라도 절차상 문제가 남는다. 철도사업법상 면허를 발급받으려면 안전성, 운행 계획의 적합성, 재정 능력, 철도 능력의 대수·규격 기준 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수서발 KTX 자회사는 ‘철도교통 안정성’을 검증받지 않았다. 철도 및 철도시설이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다. 처음으로 민간자본이 들어간 인천공항철도의 경우 민자사업 실시협약→우선협상대상 지정→설계 승인→선로·시설 완공→면허 발급 및 운행 개시 과정을 6~7년에 걸쳐 진행했다. 시설 완공 전 6개월에 걸쳐 10만km의 열차 시운전 등 종합시험운행을 마치고 테스트를 통과해 면허를 발급받았다. 철도공사가 이사회에서 자회사 설립을 의결한 지 17일 만에 면허를 발급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철도노조가 ‘날치기’라고 비판한 이유다.
국토부는 “충분한 준비와 검토를 거쳤다”고 맞선다. 철도공사가 지난 5개월간 전문기관 연구용역 등 준비 과정을 거쳤고 정부는 철도산업법상 면허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더 일찍 면허를 부여할 수도 있었지만 철도노조가 철도공사 이사회 결정 무효소송을 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다소 늦어졌다고 국토부는 덧붙였다.
투명·공정한 기회를 보장했는가?
철도사업 면허를 발급하려면 행정절차법에 따라 다른 예비사업자에게도 투명하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사전 공지나 객관적이고 투명한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송기호 변호사의 설명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관치경제 때처럼 면허 줄 곳(코레일 자회사)까지 내정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WTO 서비스협정이 정한 합리적·객관적·비차별적인 시행 의무 위반이다. 한-미 FTA의 투명성 조항에도 어긋난다.”
철도 시장 개방 유보 포기했나?
한-미 FTA를 보면, 2005년 6월30일 이전에 건설한 철도 노선의 철도 운영은 철도공사만 공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2005년 7월1일 이후 건설 노선은 경제적 수요심사에 따라 국토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도 맡을 수 있다. 수서발 KTX 노선의 70%(평택~동대구)가 2005년 6월30일 이전에 건설돼 철도공사가 독점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토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에 새로운 면허를 발급하면서 한-미 FTA에서 보장받은 ‘철도공사 전담’ 체제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이다. 철도노조는 “공공부문을 자발적으로 개방한 첫 사례”라고 평했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는 민간자본은 물론 미국 등 해외 자본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민간자본 참여 제한할 수 있나?
수서발 KTX 자회사에는 민간자본 참여가 금지돼 있다. 등기부에도 ‘주식의 양도·매매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공적자본이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면 철도 운행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를 모르고 수서발 KTX 자회사의 주식을 인수한 선의의 제3자라도 주주임을 회사에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적 근거로 국토부 장관의 ‘경제적 수요심사’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WTO와 한-미 FTA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가 낸 와 등을 보면, 경제적 수요심사는 공급자의 자격을 제한하는 질적 조처가 아니라고 돼 있다. 면허를 내주되 그 수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정부의 재량에 따라 사례별로 면허를 내주기도 하고 안 내주기도 하면 이는 경제적 수요심사라 할 수 없다.” 한-미 FTA도 “면허절차 자체가 서비스 공급에 대한 제한이 아닐 것”이라고 규정한다.
철도 민영화 법률 FTA 위반인가?
한-미 FTA를 주도한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2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철도 민영화 금지를 법제화하면 FTA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미 FTA에서 약속한 개방의 정도를 더욱 축소하겠다는 것이라서 (래칫 조항) 약속 위배다.” 래칫이란 일단 자유화된 내용을 뒤로 후퇴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미 FTA 원칙이다.
시곗바늘을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은 2012년 1월13일치에 ‘한-미 FTA 발효되면 철도 민영화 못 되돌려’라는 기사를 싣는다. “2005년 7월1일 철도 운영권을 민간에 넘길 수 있도록 한 법제도는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개방을 후퇴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 역시 래칫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외교통상부의 해명 보도자료다. “민간에 실제로 운영권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토부의 정책 결정 사항으로서 한-미 FTA 래칫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최석영 외통부 FTA 교섭대표는 더 단호했다. “공기업의 민영화와 관련한 어떤 정책적 결정도 우리 정부가 자유롭게 내릴 수 있으며 FTA 영향을 받지 않는다.”(<fta>·서울변회·2012)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fta>
한겨레 인기기사
‘받는 사람 : 대통령님♥’…성탄카드 500장의 대반전
김용현 요구로 ‘북 개성 송전탑 철거영상’ 계엄 날 공개됐다
이준석 “여성 높은 집회 참여율? 치안 좋아서…남성들은 군대에”
이승환, 구미 공연 취소에 스태프 보상금…“그들 없인 무대 없어”
숨진 북한군 손편지 “로씨야에서 생일 맞는 나의 동지야”
끝이 아니다, ‘한’이 남았다 [그림판]
국힘 권영세 “헌법재판관 임명안 통과하면 헌법소원 간다”
응원봉 물결친 남태령의 밤…난 농사를 더 열심히 짓기로 했다 [기고]
광복회장 “윤석열 부친, 아들이 뭐 모르고 자랐다며…”
윤석열, 2차 출석요구도 불응…공수처 “향후 대응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