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는 설립을 준비할 때 해외 우수학교의 장점을 가져오기 위해 교육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았다. …자율형 사립고이기 때문에 교과과정에서는 자율성이 있었지만, 대학 입시를 등한시할 수 없다는 점은 이상적인 교육을 할 수 없는 큰 제약이었다.”( 49쪽)
서울 자사고 가운데 날짜·기간 유일한 예외
2010년 개교 당시 ‘금융사가 만든 귀족학교’ 논란에서 출발한 하나고등학교(서울 은평구)는 공부도 과외활동도 모두 잘할 것을 요구하는 ‘전인교육’의 명성을 얻더니, 올해 배출한 첫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이른바 ‘명문고’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하나고의 오늘을 있게 한 배경으로는 거대 금융사와의 관계 속에 이뤄지는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 외에도, 우수한 학생들의 유치를 가능케 한 전국 단위 선발권과 자율형 사립고 특유의 자율적 교과과정 운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교육 당국의 편법과 특혜 속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6월30일 하루는 하나고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유은혜 민주당 의원은 당시 하나고·서울시교육청·교육과학기술부 사이에 오간 공문들을 제출받아 에 공개했다. 공문을 보면, ①이날 하나고는 서울시 교육청에 ‘자율형 사립학교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②같은 날 서울시 교육청은 교과부를 상대로 하나고의 자사고 전환을 위한 사전 협의를 요청했다. ③이에 교과부는 서울시 교육청에 ‘하나고의 자사고 지정에 동의한다’는 협의 결과를 통보했는데, 이 또한 같은 날이었다. ④서울시 교육청은 이날 하나고에 ‘자사고 전환 지정’ 사실을 전달하고, ⑤동시에 이 내용을 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식으로 고시했다. 결국 신청부터 협의와 결정, 고시까지 단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이다.
전국 50개 자율형 사립고의 지정 과정을 봐도 하나고는 지나치게 예외적이다. 50개 학교가 자사고 지정을 신청한 뒤 지정을 받아 고시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68.1일이다. 가장 오래 걸린 한국외대부속용인외고는 498일이 걸렸고, 전북 남성고와 군산중앙고는 각각 119, 118일이 걸렸다.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56일이 걸린 18개 학교가 신청·고시 날짜가 같고, 88일이 걸린 7개 학교도 신청·고시 날짜가 같다. 서울 지역 26개 자사고 가운데 하나고는 날짜도, 기간도 유일한 예외다.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학교는 민족사관고(1일)와 울산 현대청운고(6일)를 꼽을 수 있다. 두 학교는 각각 2002년과 2003년부터 (자율형이 아닌) 자립형 사립고로 운영해온 학교들로, 2010년 2월로 시범운영 기간이 끝난 상황이었다. 자립형 사립고가 등장한 것은 사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학교 경쟁력 강화를 꾀하자는 취지였다. 전체 고등학교 가운데 사학 비중이 절반이 넘는데도, 정부의 지원과 통제를 받다보니 국공립과 마찬가지일 뿐 ‘무늬만 사학’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두 학교와 부산 해운대고, 전북 상산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등 전국 6곳이 시범운영됐지만, 취지가 실현됐는지에 대해선 이론이 분분했다. 결국 애초 2007년 2월까지였던 시범운영 기간을 두 차례(2년, 1년) 연장하는 것으로 자립형 사립고 정책은 막을 내렸다.
이후 자립형 사립고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던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신청을 했고 각 시·도교육청은 모두 받아들였다. 신청부터 고시까지 걸린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배경이다. 광양제철고(15일), 상산고(28일), 포항제철고(25일), 해운대고(49일) 등도 모두 평균보다 적게 걸렸다.
은평뉴타운에 자사고 강력 추진한 MB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고가 또 이례적인 대우를 받았다. 2008년 12월31일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된 것이다. 시범운영 종료를 불과 1년여 앞둔 상황에서 건물도 미처 지어지지 않은 하나고가 서울의 첫 자립형 사립고가 됐다. 7년 전인 2001년 9월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부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가 없어 단 한 곳도 추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당시 심사선정위원회는 △학교 경영자의 의지 △교육시설·환경 △교직원 확보 및 인사관리 △학사관리 △재정 및 후생복지 △학교발전 및 운영계획 등의 잣대로 심사를 진행했다. 당시 대다수 사학이 자립형 사립고에 눈독을 들였지만 서울에선 등장하지 못했다. 신청 시점에 학교 운영을 해보긴커녕 학교 건물도 없던 하나고가 과거의 다른 학교들보다 사정이 나았을 거라고 보긴 힘들다. 더욱이 2006년 6월 정부는 ‘공영형 혁신학교’(개방형 자율학교) 도입을 발표하면서 자립형 사립고는 더 이상 확대될 가능성이 전무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하나고는 서울시 교육감이 직접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했다. 교육부는 단지 “서울시 교육청의 하나고등학교 설립 및 자립형 사립고 지정 계획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덧붙였을 뿐이다. 학군과 관계없이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기존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운영은 시·도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교육부가 지정했다.
결국 하나고도 자립형 사립고에서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신청을 한 셈이 됐다. 똑같이 하루 만에 처리가 된 민사고와 같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민사고의 신청서는 당시 학교 현황 및 연혁, 재정 운영 계획, 시설 확보 계획, 교육과정 운영 계획, 교직원 배치 계획과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 등 38쪽 분량이었다. 반면 하나고의 신청서는 공문과 신청서, 요약서 각 1장씩 3장이었다. 기존 자립형 사립고는 2010년 2월 시범운용이 종료됐지만, 하나고는 그 다음달에야 개교했다.
하나고가 받은 특혜의 배경은 뭘까? 상세한 연관관계는 규명돼야 할 부분이 많지만, 하나고의 설립 과정엔 지난 정부 때 주요 인사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은평뉴타운에 자립형 사립고를 강력 추진했다. 하나금융지주는 2008년 2월 자사고 운영사업자 공모에 단독 신청했다. 현재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이 전 대통령의 후임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9년 김 전 회장과 학교 부지 임대차계약서에 서명하면서, 서울시가 학생 정원 15%의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특혜 의혹이 나오는 부분이다.
곽노현 교육감 취임 바로 전날 인가김승유 전 회장은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에게 선거에 보태라고 300만원을 준 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하나학원 설립 인가와 자립형 사립고 지정, 자율형 사립고 전환은 모두 공 전 교육감 시절에 이뤄졌다. 특히 하나고의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부터 고시까지 이뤄진 2010년 6월30일 바로 다음날인 7월1일에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취임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끼리끼리식의 엘리트 교육은 민주적 의식을 심어주지 못한다”며 엘리트 교육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은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자율형 사립고 논란이 뜨겁던 사이에 슬그머니 동원된 편법과 특혜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묻혀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원칙과 절차에 따라 엄정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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