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적도기니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전 대통령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를 만난 뒤 소설 의 이명준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같은 이미지를 정반대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데칼코마니의 문양처럼 두 사람의 운명은 닮은 듯 달랐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기 이명준의 여정은 남한에서 북한으로, 그리고 다시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된다.
북한→스페인→미국→한국
북한에서 스페인과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 이어진 모니카의 삶은 정반대다. 모니카의 부친인 응게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조카이자 국방장관이던 오비앙 응게마가 일으킨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났고, 처형당했다. 오비앙 응게마는 1979년 이후 현재까지 적도기니의 대통령이다. 아버지는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자신이 ‘형님’이라고 부르던 김일성 주석에게 자식들을 보냈다. 모니카가 불과 6살 때의 일이었다. 언니와 오빠도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삼남매는 혁명가 집안이나 당 고위 간부의 자식들만 다닌다는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주체사상과 군사교육을 받았고, 이후 모니카는 평양경공대 피복학과를 졸업했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을 받아준 김일성 주석은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었다. 명절 때마다 김 주석은 과일과 초콜릿을 보내줬다. 한 외국인 유학생 친구가 김 주석의 사진이 실린 을 깔고 앉은 모습을 보고 격분했다. ‘미제의 꼭두각시’로 사는 한국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그는 뼛속까지 ‘북한 사람’이었다.
1989년 ‘통일의 꽃’ 임수경이 방북했을 때 여느 평양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을 똑같이 느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그 임수경이다. “임수경은 청바지에 면티를 입은 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노래하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 시대의 영웅이었다. (중략) 평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자연스러움이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솔직하고 거침없고 자연스럽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도 그때 알았다.”
자연스럽게 북한을 고향으로 생각했지만, 그 또한 체제가 개인에게 강요한 통제와 관리의 경직성을 벗어날 순 없었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 무엇보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거부한 ‘방랑자적 기질’이 청년 모니카를 뒤흔들었다.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떤 나라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평가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스페인과 미국 등을 거치며 전공을 살려 의류 관련 직종에서 일해왔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 생활도 했다. 자신의 뿌리를 ‘한반도’라고 말하는 모니카는 현재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수입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 (예담)를 펴낸 그와 9월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마주 앉았다.
평양에 온 임수경의 자유분방함에 충격=일단 편안하게 잘 살았다. 아무 문제 없고, 행복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게 끝은 아니지 않나. 다른 유학생들을 접하면서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건 사실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궁금증이 생기고, 알고 싶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정치가가 아니니까 이런 건 잘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사는 세상은 다 똑같았다. 이건 분명하다. 문화적으로 남쪽과 북쪽은 별로 다르지 않더라.
-김일성 주석과의 일화도 소개해줄 수 있나.=어린 시절 몇 차례 만났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하지만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른이 아이들을 대할 때 비슷하지 않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니까 오빠가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하시라’고 대꾸하기도 했다. 지난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하니까 김 주석도 ‘아, 그랬나. 미안하다’고 하더라.
-책에는 북한에서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내부의 문제점을 깨닫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 생활을 통해 느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뭔가.=꼭 나쁜 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더라. (웃음) 서울에 있을 때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 주말에는 너무 피곤해서 잠만 잤다. 서울 구경도 사실 많이 못했다. 이번에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돈은 즐겁게 살기 위해 버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일만 하다가 백발이 되고 병들어 결국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심경도 남다르겠다.=연평도 뉴스를 스페인에서 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스페인 친구들은 ‘한국에 전쟁 난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얼마나 가슴이 아픈가. 연평도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 이게 아닌데, 저러면 안 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배울 점은 있더라”
=세상에는 정말 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나라마다 자신만의 특징과 문화가 있다. 남이 말해주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속한 세상밖에 모른다. 그러면서 모르는 나라, 모르는 사람에 대해 평가한다. 그게 싫었다. 미국도, 한국도, 심지어 북한 사회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상황에선 마음을 열지 않는다. 겪어보면 마음을 열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도 그거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했으면, 그리고 앞을 보면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글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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