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은 지난 8월5일 하반기 전략회의를 열어 올해 2조5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확정했다. 지난해(2조2천억원)보다 13.6%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신규 인력도 상반기(1만7천 명)에 이어 하반기에 7천 명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했다. 역시 사상 최대다. 지난해에는 7500명밖에 채용하지 않았다. 장기 불황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유통업계 현실을 고려하면 신세계의 행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 7월22일 권혁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이마트 부당노동행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이사(현 상임고문) 등 임직원 14명은 노조 설립 대응 방안을 마련·시행하는 등 조직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허인철 이마트 대표에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복수노조 때문에 이마트가 노동자를 집중 탄압하던 2011~2012년, 이마트는 정용진 부회장과 최병렬 전 대표가 함께 책임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권혁태 청장이 밝힌 무혐의 이유를 들어보자. “이번 사건에 대한 개별적 지휘 라인을 파악하고 통신 기록을 조회해본 결과, 부당노동행위를 보고받은 것은 최병렬 전 대표였다. (당시 공동대표였던) 정용진 부회장이 관여한 흔적은 없었다.” 아랫사람의 보고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렸다는 설명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보면,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마트가 일삼은 부당노동행위는 직원 불법 사찰이었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모든 직원을 노조 개입 정도에 따라 △문제사원 △관심사원 △여론주도사원 △가족사원 등으로 분류해 감시해왔다. 2012년 10월 노조를 설립했다가 해고된 전수찬 위원장 등 노조 관련자들을 솎아내기 위한 ‘경영활동’이었다.
2011년 6월14일 이마트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이아무개 과장이 상급자인 윤아무개 파트장을 비롯한 노무 담당자 14명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보자. 미국계 할인점 월마트에 입사했다가 이 업체가 이마트에 합병되면서 옮겨온 전수찬 위원장을 포함한 노조 결성 위험인물 3명을, 이 과장은 ‘월마트’로 칭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최대의 적인 월마트 3인 및 이와 친분이 있는 인력에 대한 히스토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이들이 세력을 결집한다고 하면 징계나 해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이들의 히스토리를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관리해주길 바란다.”
형사처벌 대상에서 줄곧 제외전자우편에는 ‘월마트 출신 3인 친밀 관계도’라는 제목의 엑셀 문서도 첨부돼 있었다. 문서에는 전 위원장 등과 친하게 지낸 직원 34명의 이름과 사진, 직급, 현 근무 점포와 발령일, 직책 등과 함께 ‘월마트 3인’과의 친밀도가 ‘상·중·하’로 분류돼 적혀 있다. 사생활도 거침없이 기록됐다. 이 과장이 2011년 6월24일 작성한 문건의 일부 내용이다. “직원 ㄱ씨는 퇴근 후 동생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며 술자리를 조금씩 줄이고 있음. 최근 관심사는 결혼 문제이며 고모 및 인척에도 농담 반 진담 반 형식으로 주선을 부탁하였다고 함. 여직원 ㄴ씨는 ○○○와 지속적으로 사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최근에는 ○○○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음.” 노조 결성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직원의 사생활도 수년간 회사가 침해한 것이다. 서울노동청의 발표대로라면, 그것도 최고경영자(정용진 부회장)에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서울노동청 발표 사흘 뒤인 7월25일 정용진 부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칼끝도 피했다. 이날 공정위는 신세계의 ‘빵집 부당 지원’ 사건과 관련해 허인철 이마트 대표와 신세계 임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에서 정용진 부회장과 함께 최병렬 전 대표가 제외됐다.
2012년 9월 공정위는 신세계SVN에 62억원을 부당 지원한 신세계와 이마트, 에브리데이리테일 등에 과징금 40억6100만원을 부과했다. 당시 신세계SVN의 대주주(지분 40%)는 정용진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부사장이었다. 부당 지원 행위에 그룹 총수 일가가 연루된 물증이 나왔다. 2010년 9월 신세계SVN의 경영실적 회의록에 “상반기까지 어려웠지만, 7월부터 그룹 지원으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으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되도록 할 것”이라는 배아무개 대표이사의 발언과 함께 “(이명희) 회장님, (정용진) 대표이사님 그룹 지원 당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신고당해신세계 총수 일가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나선 건 시민사회단체다. 신세계SVN이 얻은 부당이득은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입은 손실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수부 검사를 포함한 전담 수사팀을 꾸려 정용진 부회장을 소환하고 정유경 부사장을 서면조사했다. 그리고 지난 5월 공정위에 신세계 임직원에 대한 고발을 요청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공정위가 전속 고발권을 가진 탓이다. 공정위가 고발한 경우에만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형사처벌 대상에서 정용진 부회장이 또 빠져 있었다.
검찰과 공정위, 서울노동청의 ‘면죄부’에 정용진 부회장은 사상 최대 투자·채용으로 화답했다. “국내외 경영 여건이 불투명하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국내 투자가 대부분이라 내수경기 활성화와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정용진 부회장)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불씨를 댕겼다. 2002년 2월부터 이마트 즉석식품 코너에서 호떡·떡볶이·꼬치 등을 판매해온 식품가공업체 ‘미래’가 이마트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2011년 3월 이마트가 경비를 절감하려고 미래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A사와 직거래에 나서면서 미래와의 납품거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매출액이 월평균 4억원대에서 7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이마트는 거래처 직거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지만 미래의 묵인이 있었다고 반박한다. 사건 당시 이마트의 최고경영자는 역시 정용진 부회장이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정 부회장은 이번에도 칼끝을 피해갈 것인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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