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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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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0기 멈췄어도 6월 불볕 넘겼다

1999년 39.3%까지 기록했던 원전 비중, 28년 만에 25% 아래로
원전 중심 정책이 전력난 대응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수치로 증명돼
등록 2013-08-10 08:19 수정 2020-05-03 04:27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케이블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시운전이 미뤄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 있는 신고리원자력 발전소 4호기 모습.김명진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케이블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시운전이 미뤄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 있는 신고리원자력 발전소 4호기 모습.김명진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59%까지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제시했다. 당시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59%’라는 목표를 현실성 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해부터 계속됐던 국내 원자력발전소 비리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우리 사회 역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사회적 여론을 고려한 듯 “원전의 적절한 비중을 검토하겠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발표된 한국전력(한전)의 ‘6월 전력통계속보’에서 전체 발전량 대비 원자력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24.2%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5년 8월(16.8%) 이후 매월 25~30%를 차지하던 원전 비중이 28년 만에 25%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5월 말 터진 부품 서류 위조 비리로 원전이 무더기 정지된 결과지만, 우리 사회의 원전 의존도를 지금보다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력판매량은 2.1% 증가했는데

5월 말 원전 부품 서류 위조 사건이 터진 뒤 정부는 “당장 6월부터 심각한 전력난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원전에 설치된 불량 제어 케이블 조사를 위해 3기의 원전이 가동을 멈춘 것을 비롯해 고장·계획정비 등의 이유로 국내 23기 원전 가운데 10기가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6월 원자력발전량은 지난해 같은 달(1만2770)보다 23.3% 감소한 9798GWh를 기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6월의 전력 상황은 심각한 위기를 겪지 않았다. 6월 한 달 동안 12차례 전력 경보가 발령됐지만 사전에 마련한 대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6월 전력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전력소비량을 엿볼 수 있는 6월 전력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해 6월보다 평균기온이 1.6℃ 올라 냉방 수요가 늘었고, 석유화학·반도체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의 수출이 늘어 전력판매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루 중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시간대인 오후 2~5시의 피크시간대 평균 전력소비도 지난해보다 평균 약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이 생산한 전력량 공급이 감소한 가운데, 전력소비량은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별일’ 없이 6월을 넘긴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6월은 특수한 상황으로 원전이 재가동되고 전력소비가 많은 8월이 되면 원전발전량이 다시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핵발전 비중을 현재보다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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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량이 줄어든 대신 석탄·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한 발전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7.3%, 16.1% 증가했다. 원전을 ‘기저발전’(기본으로 돌리는 발전소)으로 삼는 우리나라 전력 공급 구조상 원전 가동 중단은 추가 비용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밝히는 발전 연료별 발전 단가(2012년 기준)는 원자력이 kWh당 39.5원으로 석탄(66.25원), LNG(168.1원)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전력부족량을 LNG, 경유 등 비싼 전력으로 대체하며 최소 9천억원에서 최대 2조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두세 시간 전력난 때문에 원전 24시간 가동

추가 비용 발생은 표면적으로는 ‘원자력이 경제적이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원전을 기저발전으로 삼고 과도하게 의존하는 우리 전력 시스템의 ‘리스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지금의 전력난은 전력소비가 치솟는 하루 2~3시간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를 위해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원전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운영에 따른 위험부담과 비용이 크다”고 말했다. 100만kW급 원전이 불시에 사고나 고장으로 멈출 경우 전력 수급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데다, 재가동은 최소 2~3일이 걸리기 때문에 탄력적인 전력 공급원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후 처리 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이 ‘경제적 에너지’가 아니라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란 보고서를 통해 원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등 발전 단가에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최소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방사능이 유출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원전 중심 정책이 최근의 전력난 대응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력소비가 치솟는 것과 반대로, 원전 이용률과 발전량 비중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의 ‘원자력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내 원전 이용률은 82.3%를 기록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평균 원전 이용률 91.5%보다 9.2%포인트 낮은 수치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정부와 한전이 90% 이상의 원전 이용률을 자랑해왔지만, 이는 원전의 노후화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원전 수출 정책을 추진하며 90% 이상의 원전 이용률을 국내 원전의 우수성을 대표하는 사례로 내세운 바 있다. 원전의 연간 발전량 비중도 1999년 39.3%를 기점으로 꾸준히 낮아져 2011년 29.9%, 2012년 28.3%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석광훈 위원은 “더는 90% 이상의 원전 이용률과 30% 이상의 발전 비중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요지 주변에 분산형 전원으로”

전력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정책을 확대해 원전 중심 전력 공급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단체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도 이제는 독일처럼 탈핵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인사들도 “대규모 발전소 건설 중심의 공급 정책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주장에 공감대를 표시하고 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해안가에 대규모 발전소를 지어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지금의 체계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전력 수요지 주변에서 발전소를 구축하는 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하는 등 지금까지의 에너지 정책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석광훈 위원도 “원전 비중을 줄이고 다른 대체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는 원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59%까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비현실적인 목표는 현재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올해 말 수립되는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현재 원전 비중 결정을 두고 검토가 진행 중이다.

우리가 원전 비중으로 고민하는 동안 최근 포르투갈은 1분기 전력생산의 70%를 수력·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채웠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이승준 경제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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