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바람’은 “학교가 뭐 같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얼마 전, 바람은 교실에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같은 반 아이 세 명이 치고 갔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당한 기습. “와, 이제 뒤통수도 치는구나.” 그 순간에 대한 그의 기억이다. 멀리서 오는 아이들도 있다. 2반인 그를 놀리러 학교 건물 위층인 12반 아이들이 ‘친히’ 원정도 오신다. “계단도 내려오고 얼마나 귀찮겠어요. 나 한 명을 위해서 내려오니.” 그래, 그냥 애쓴다 여긴다. 같은 반 아이 서넛은 그 앞에서 옷을 벗고 봉춤을 추기도 했다. 발신전화표시제한 전화가 계속 와서 “더럽다” “꺼져라” 욕설도 들었다. “하다 하다 지쳤나, 요즘은 반으로 줄었어요.” 김조광수 영화감독의 동성결혼 기사가 나온 주말, ‘내일은 또…’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웨딩 사진이 뜨니 난리가 났다. “너도 할 거냐?” “나도 하고 싶은데, 애인이 없어. 나랑 같이 할래?” 그렇게 말을 받으며 견딘다. 아이들이 이상한 말로 놀리면 인권 자료를 주면서 “다음에는 이런 말을 써라” 친절한 안내도 해준다. 아, 담임교사는 회개 기도를 해준다고 그를 교무실로 부르기도 했다. 바람이 커밍아웃한 뒤 겪은 일이다. 바람은 “숨기는 행위는 나를 죽이는 것이라 나 자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반스쿨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모교에 보내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 학생을 지지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무지개 스티커와 성소수자 학생을 위한 가이드라인 7가지를 담은 홍보물도 함께 보냈다.이반스쿨 제공
학교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어쩌면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예전의 학교는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들에게 ‘숨어 있기 좋은 방’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개념도, 의혹도 없었다. 그러나 홍석천 같은 사람이, 김조광수 같은 용기가 드러날수록 ‘의혹의 눈초리’도 늘어간다. ‘이반 검열’이라 불리는 청소년 성소수자 색출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호막은 여전히 전무. 그래서 어제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편지를 띄웠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반스쿨이 모은 ‘모교에 보내는 편지’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편지를 보내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반스쿨은 지난 7월9일, 1300통 편지를 학교에 부쳤다. 여기엔 ‘사과의 편지’ ‘회개의 편지’도 있었다.
서울의 한 여고에 보낸 이 편지의 마지막은 “게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 그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해도 혐오와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으면 해요”라는 당부로 끝난다. 이렇게 동성애혐오증의 힘은 강하다. 역시나 혐오증이 만연한 가운데 당한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 이도 적잖다. 장애인학교를 다녔던 이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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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치유를 명목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보호를 이유로 부모에게 알리거나 한 경험을 적은 편지는 적잖다. 같은 학교 언니가 퇴학당한 일을 전한 편지도 있다. 동성 애인이 있다고 친구에게 고백하자, 친구가 그것을 교사에게 말했고, 추궁을 당하던 언니가 자퇴를 했다는 것이다. 편지의 일부다. “선생님이 생활자치부 교사에게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거나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퇴한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께서는 반 친구들에게 저런 애랑은 말도 섞지 말라고 너도 찍히기 싫으면… 버티다 못해 학교에 자퇴서를 내밀었다고 하네요.”
이반스쿨이 지난해 7월 성소수자 2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분석한 ‘서울시 성소수자 학생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차별의 원인 제공자’로 학생(47.5%)과 더불어 교사(23.1%)가 꼽혔다(표 참조).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조사에 바탕하면, 미국 10대 성소수자 청소년 자살 시도 비율은 이성애자보다 5배 높다. 처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됐던 초등학교 5학년 때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아야지’ 생각했다”는 사람은 교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여기에 모교의 교사가 편지를 읽고 답글을 보냈다. “편지를 손에 쥐었을 때 뭘까 궁금했고 읽어가며 저도 모르게 두근거렸고… 읽고 나서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도 말 못하고 있는 아이가 있겠다 싶었지요. 아차 싶었습니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성소수자 청소년의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않는 무개념의 공간 학교”를 넘어 “함께 살자”고 답장을 쓴 교사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성소수자라서 행복하다는 게이 교사의 편지다.
이렇게 모교에 편지를 쓰는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학교가 치유될 때다.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소류’는 학교에서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비밀 트위터를 누군가 엿봤다. 거기엔 성소수자와 나눈 대화가 있었다. 삽시간에 소문은 퍼졌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소문도 함께 따라왔다. 다행히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있다고 어른들은 안도한다. 그러나 소류도, 바람도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소류는 학교를 “외로운 지옥”이라고 말했다. 그곳이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애타는 편지는 학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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