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오르기에 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레 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에 스칠 만 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이범선의 은 한국전쟁 이후 해방촌이 생겨났을 무렵의 풍 경을 가장 잘 묘사한 소설이다. 이렇게 생겨난 동네에 피란민이, 산업화 시절에는 요꼬(스웨 터) 공장 운영자와 노동자가, 외국인이 먹고살 기 위해 끊임없이 이 동네를 들고 났다.
어느 곳보다 커뮤니티 공고한 동네미군부대와 남산, 3호터널로 향하는 큰 도로에 둘러싸인 해방촌은 몇 개의 입구를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해 방촌에 스미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 동네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폐쇄성 을 지닌 동네는 팍팍한 서울살이를 하는 주 민들에게 적당한 단절감을 주는 안온한 곳 이었을 테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동네 사 람들을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해방촌은 어느 곳보다 커뮤니티가 공고한 동 네다. 외부에서 보기엔 여러 지역 출신 사람 들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듯하지만 실상 이 동네가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맞는 사 람들끼리 뭉치는 집단의식이 강하기 때문이 라고 한다. 해방촌 대안주거공동체 ‘빈집’에 살며 서울시의 ‘신택리지사업’ 조사원으로 해방촌을 관찰해온 정민(가명)씨는 “각 지역 향우회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술집도 나뉘 어 있을 정도다. 이주민끼리 ‘유입’에 대한 동 질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커 뮤니티끼리 아주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라 고 말했다. 도시공학자 강홍빈씨는 어느 글 에서 “당국의 입장에서 해방촌은 불법 정착 민의 불량 주거지, 개조되어 마땅한 ‘문제 동 네’”였지만 건강성을 가득 담은 동네라고 말 했다. 강씨가 말하듯, 해방촌이 독특한 건강 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폐쇄 적이지만 서로를 끊임없이 지켜보게 되는 미 묘한 개방성 때문인지 모른다.
동네의 오랜 커뮤니티들이 해방촌의 역사 를 이어나가는 한 힘이었다면, 한 축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임이 형성되 고 있다. 7월6일 토요일 오전 10시 해방촌 주 민 배영욱씨 집 거실은 왁자지껄했다. 동네 잡 지 을 만드는 이들의 회의 시 간이다. “해방촌 최고령자를 만나보는 건 어 떨까?” “동네 골목길 각도가 몇 도인지 재보 지 않을래?” “나 동네에서 샘 해밍턴 봤어!” 사소한 기획과 잡담 사이에 “이 잡지를 어떻 게 꾸준히 만들 것인가”와 같은 진지한 고민 도 툭툭 던져진다. 발행인 배영욱씨는 “잡지 가 주인공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주인공인 모 임”이라고 말했다. 건축설계사로 오래 일한 배씨는 “도시계획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커뮤 니티를 연구할 때 가장 많이 주목하는 공간 이 해방촌”이라고 덧붙였다. 대안주거공동체 빈집은 해방촌에 젊은 숨을 불어넣는 작은 힘 이다. ‘카페 해방촌’ 마스터 유선(가명)씨에 따 르면 “빈집 회원 대부분 해방촌이라는 동네 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들어온다”고 한다. 하 지만 빈집 사람들은 동네 누구보다 주민들과 소통하려 애쓰고 다른 커뮤니티와 힘을 합쳐 동네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됐다. 해방촌에 머물다 삼선동으로 떠난 지 몇 년 만에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온 연구공 간 ‘수유너머R’의 7월5일 집들이에는 “여기 뭐 하는 곳이냐”묻는 주민들도 함께했다.
‘오부작 오부작’ 들어오는 누군가“해방촌 저기 저쪽 가면 동네가 오부작골 이라고 있는데 오부작골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오부작 오부작 궁뎅이만 들어가면 거 기다 이렇게 하꼬방 맨드는 거야.”(주민 신연 근, ) 이렇게 시작된 이주 민의 역사가, 이제 새로운 것들 들고 ‘오부작 오부작’ 들어오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이 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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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