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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은 자에 아 동물의 권리를 만방에 선언하노라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 동물사랑 교과서, 동물복지법 명칭 개정 헌법소원… 말 못하는 동물의 투쟁을 대신해줄 말하는 동물 늘어나
등록 2013-06-19 19:37 수정 2020-05-03 04:27

국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보다 많은 수의 동물들이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비좁은 축산시설에 갇혀 있다. 한 해 100만 마리 이상의 실험동물이 연구라는 미명하에 차가운 기계 사이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과 함께 지구를 나눠 썼다. 하지만 문명 이래 인간이 그들을 소유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공존과 공유의 개념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에 처음으로 동물보호법이 생겼고 2000년대 들어서야 동물보호 단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등 우리의 동물보호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약한 생명에 힘을 보태는 이들이 조금씩 세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5월25일 서울 마포구에서는 전무후무한 생활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 줄여서 ‘우리동생’이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는 국내 최초로 동물사랑 교과서를 발행했다. 카라,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변호인단 등은 동물보호법의 명칭을 ‘동물복지법’으로 개정하는 한편 동물학대·동물권·동물복지 문제에 관한 법개정안을 발표하고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5월30일에는 비슷한 맥락으로 카라, 녹색당, 시민소송 원고인단 등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장식 축산 반대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동물을 보살피는 일은 인간성 회복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한 활동가는 최근 도드라지는 일련의 이슈들과 관련해 “한국 동물보호 활동이 부흥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실험견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비글’이 자신이 실험 대상인 줄도 모른 채 동물실험실 우리 안에 갇혀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b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험견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비글’이 자신이 실험 대상인 줄도 모른 채 동물실험실 우리 안에 갇혀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용과 동물용으로 나뉜 정관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 정관 전문은 인간용과 동물용으로 나뉘어 있다. 동물의 마음을 대신해 사람이 쓴 동물용 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만의 세상’ ‘인간만의 사회’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인간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인간과 함께 공존해왔습니다. 둘째, 우리들은 생각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셋째, 우리들은 말로 아픔이나 고통을 호소하지 못합니다. 넷째, 어떤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굶주림과 갈증,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사육당하고, 도축당하며, 생명이 아닌 물건 취급을 당하며 목숨을 잃는 동물들이 존재합니다. 다섯째, 우리들의 수명은 당신에 비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제가 늙어도 돌봐주길, 죽음을 맞이할 때 제 옆에 있어주길, 우리의 죽음이 존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언제나 잊지 말아주세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동생에는 인간에게 이런 말을 전할 동물 대표가 있다. “우리동생 1대 대표는 강아지 보리가 되었습니다.” 지난 5월25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우리동생 창립총회에서 개 보리가 임기 2년의 동물 대표로 뽑혔다. 앞서 5월23~24일에 개 보리, 실마리, 고양이 호야, 동생이 등 4마리 동물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투표에서 경쟁을 거쳤다. 임기 동안 보리가 할 일은 우리동생 웹진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성명을 내는 것이다.

동물의 대변인으로 활동할 ‘인간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140여 명, 반려견·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비롯해 반려인이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동물을 품고 있는 이들이 모였다. 조합원들은 우리 일상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의 수에 비해 사회 시스템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동물복지와 관련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문 밖으로 나가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동물 옷 만들기, 수제 사료 만들기, 동물의 시선으로 지역을 들여다보고 지도 만들어보기 등 동물을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는 다양한 활동부터 돌봄 품앗이, 정보 교류 등 공동체로서 지원할 수 있는 역할도 이행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계획은 동물병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우리동생 조합원들은 동물에게 적합한 의료를 제공하고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병원을 원한다. 최근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의료생협의 동물 버전인 셈이다. 인간보다 목숨이 짧은 동물의 일생을 함께 보내며 반려인들은 짧은 시간 생과 이별을 모두 경험하면서 병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조합원 대부분은 몸이 아픈 반려동물, 길에서 구조한 나약한 동물을 위해 동물병원을 찾으면서 부침을 겪은 적이 있다. 사람 진료에 비해 몇 배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몇 번이나 책임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들어 죄책감에 시달렸던 일, 폐쇄적 진료 과정으로 인해 동물에게 어떤 약이 쓰이고 어떤 치료가 행해지는지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경험 등이 있다. 우리동생 조합원인 ‘민중의집’ 오김현주 사무국장과 정경섭 대표는 자신들이 내세운 목표와 관련해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동물병원 대 착한 소비자의 프레임이 아니다. 같이 힘을 합쳐 왜곡된 문제를 바로잡고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시도다. 동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요구를 제출하고 서로 버무릴 수 있는 통로가 이제까지 없었다. 개인이 가진 문제를 조합을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서 시스템이 개선되길 바란다.”

동물이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도록

동물생협이 동물복지 전반을 이야기하면서 반려동물의 삶을 도닥이는 편에 기울어져 있다면, 지난 5월30일 오전 몇몇 사람들은 축산동물을 대변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모였다.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숨쉬는 물건이 돼버린 축산동물을 위해 녹색당, 카라,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추진모임’은 현행 축산법 개정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한 서지화 변호사는 “국가가 비용까지 지원해 장려하고 있는 축산업 허가 및 등록 기준인 단위면적당 적정 사육 두수와 사육 시설·장비의 기준이 현재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공장식 축산의 모습과 별다를 게 없을 정도로 미흡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녹색당과 카라는 축산법 제22조와 시행령 13·14조 등이 국민의 행복추구권, 생명 및 신체의 안전에 관한 관리, 보건에 관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헌법소원을 낸다고 밝혔다. 현행 축산법은 소독·방역 시설 등 인간의 위생을 위한 관점에서만 사육시설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 동물본성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는 전혀없다. 소송인들은 대량 밀집 사육 과정에서 발생한 분뇨 및 온실가스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어 결국 인간의 건강에도 위협을 주는 등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 변호사는 공장식 축산의 대안으로 소규모 친환경 복지축산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동물이 햇빛을 쬐고 흙을 밟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생명으로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기를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비싸게 먹게 되겠지만, 건강한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지구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소수의 기업농이 아닌 다수의 영세한 축산 농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물은 농장 우리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매끈하고 번듯한 건물 안에선 토끼, 돼지, 원숭이, 개, 흰쥐 등이 실험대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 최대 동물실험기관이라는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가 세워져 동물보호 시민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카라 이원창 정책국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166만 마리가 사용됐는데, 매해 증가율을 감안하면 2012년에는 180만 마리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료계에서 동물실험은 필요악이다. 생명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는 만큼 신약 개발 등 인간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치명적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화장품·세제 업체들은 출시 이전에 대규모 독성 실험을 시행하고, 모든 의약품은 동물실험을 필수로 요구받는다. 동물실험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안적 방법으로 ‘3R의 원칙’(개체 수를 최소화할 것(Reduction), 고통을 최소화할 것(Refinement), 대체 수단을 찾을 것(Replacement))이 제시되고 있지만, 동물실험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현재 한국에서는이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험에 사용되는 설치류 및 척추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를 지닌 동물이다. 동물실험 윤리에서는 설령 인간에게 아주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할지라도 영장류 실험이나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실험 등은 하지 말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말할 줄 모르는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빌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25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 창립총회에서 모든 생명이 존엄한 삶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 우리동생 조합원과 반려견·묘들(윗쪽). 지난 1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동물복지 정책 현안 반영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시민들. 민중의집 제공,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진기자단

말할 줄 모르는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빌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25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 창립총회에서 모든 생명이 존엄한 삶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 우리동생 조합원과 반려견·묘들(윗쪽). 지난 1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동물복지 정책 현안 반영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시민들. 민중의집 제공,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진기자단

실험 결과 동물과 인간 일치율 5~25%

현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실험을 시행하는 기관이나 학교에 반드시 실험동물윤리위원회를 만들어 행해지는 동물실험이 잔혹하거나 타당한지 심의를 하도록돼 있다. 이원창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300여 개의 동물실험기관에 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여전히 설치되지 않은 기관들도 있고, 윤리위원회가 전체 동물실험 계획의 80% 이상을 승인한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과연 고통스러운 실험의 당사자인 동물의 처지가 정당하게 고려받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동물보호 활동가인 철학박사 신승철씨는 어느 글에서 영국 임상시험 대행 전문 기관 ‘헌팅턴 라이프 사이언스’에 근무했던 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 “동물실험 결과를 인간에 적용했을 때 일치할 확률은 5~25%에 불과하다”고 썼다.

‘비글’이라는 견종이 있다. 만화 캐릭터 스누피의 모델이기도 한 비글은 ‘악마견’으로 불릴 정도로 장난이 심하고 말썽을 많이 피우는데 그만큼 성격이 쾌활하고 사람에게 친근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는 이유로 비글은 실험견으로서 0순위다. 연구자들이 목에 칼을 대는 순간까지 꼬리를 흔들고 있더라는 증언이 흔할 정도다. 인류 생명의 연장과 복지를 위해 우리는 잔혹한 실험에 기대를 걸며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고 고통을 호소할 줄 아는 동물에게 주삿바늘을 꽂아야 하는 걸까.

그래서 미국의 생태학자 마크 베코프는 (Animal Manifesto)에서 관심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 모른다.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거나 남용하지 않으려면, 동물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과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면, 동물은 지혜롭고 감정이 있고 서로 배려하며 죄가 없는 생명임을 깨달으려면, 동물이 사라진다면 우리도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내려면” 동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동물사랑 교과서 를 펴낸 카라 동물보호 교육센터 김혜란 추진위원은 “여러 방식으로 학대받는 동물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동물보호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동물을 대량생산하고, 귀엽다는 이유로 입양을 했다가 쉽게 파양하고, 도시 생태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배려하지 않는 일상적 행동 모두가 동물학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상적 학대, 혹은 동물을 향한 실질적 폭력이 나중에는 사람을 향한 학대나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생명 감수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동물사랑 교과서를 펴낸 이들이 주목한 연령대는 만 13~17살 청소년이다. 동물보호를 위한 사후적 활동보다는 예방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법, 실효성 없는 유명무실한 법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해지는 동물복지와 관련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모여 현행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이 제안될 예정이다. 녹색당, 카라, 생명권네트워크변호인단, 새누리당 문정림, 진보정의당 심상정, 민주당 진선미·한명숙 의원 등은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수단으로 바라보고 인간 중심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학대 등에 대한 실효성이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의 거의 모든 조문에 대해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들은 “동물은 자신의 죽음과 신체 손상, 잔혹한 학대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고통을 말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없으며 그들에게는 법적인 권리 능력도, 당사자 능력도 주어지지 않아 이 비극이 중단되도록 할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동물의 대변인이 돼주기로 했다.

동물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먼 길을 돌아왔다. 한국은 비교적 동물권 회복 운동에 늦게 뛰어든데다 동물복지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편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지점은, 동물은 더 이상 재산이 아닌 인간과 동일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며 그런 이유로 그 자체로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그들의 말하지 못하는 투쟁을 대신해줄 사람이 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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