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학교 문제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5월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과문을 내놨다. 올해 초 이 부회장의 아들이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입학 전형으로 영훈국제중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최근엔 입학 성적이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5월20일 영훈국제중이 2013학년도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에서 지원자 3명에게 주관적 채점 영역에 만점을 주었고 그래도 합격권에 들지 못하자 다른 지원자의 주관적 채점 영역 점수를 깎아내려 이 학생들을 합격시킨 정황이 있다며 영훈학원 이사장 등 학교 관계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5월2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영훈국제중 관계자에게 부정 입학했을 가능성이 있는 3명 중 이 부회장의 아들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내건 국제중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국제중은 국어·국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특성화중학교다. 전국에 4개 학교가 있으며 서울 지역에 위치한 영훈·대원국제중은 2008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재임 시절, 교육 목적이 불분명하며 초등학생 입시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논란을 딛고 설립됐다. 그리고 5년 뒤, 국제중은 자신의 자녀에게만은 남다른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의 차별 욕망이 비싼 값으로 실현되는 장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영훈·대원국제중의 연간 학비는 1천만원이 넘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이 ‘귀족학교’가 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책으로 취약계층 학생 입학을 보장하는 사배자 입학 전형 시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자녀처럼 사회적 배려 대상인지 극히 의문스러운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따로 만들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왜곡시켰다. 지난 2월 김형태 교육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영훈국제중이 비경제적 사배자 입학전형으로 선발한 장애인·아동복지시설 학생은 2명뿐이다.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 합격자 학부모의 직업을 들여다보면, 사업가·의사·변호사 등도 포함돼 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 등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15명은 지난 5월27일 대원·영훈·청심 3개 국제중의 2012∼2013년 비경제적 사배자 합격생 70명 중 가정환경 자료가 확보된 56명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절반인 28명이 시세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의원들은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하지 않은 국제중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영훈국제중은 2009년 국제전형 추가 합격자 1명을 선발하면서 원서도 내지 않은 학생을 뽑았고, 대원국제중은 2012학년도 전입학 1단계 서류 심사에서 학생 4명의 점수를 잘못 입력해 다른 학생 4명이 부당하게 불합격되는 등 학생 선발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원국제중 횡령·배임 혐의 고발국제중이 입학 장사를 했다는 의혹도 계속 제기돼왔다. 영훈국제중 입시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신성식 부장검사)는 5월30일 학부모들에게서 입학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수천만원대의 뒷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임아무개 행정실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동부지검도 대원국제중 편입학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지난 4월 편입학 학생들로부터 뒷돈을 받았다며 대원국제중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설립 당시부터 예견된 수많은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나자, 국제중 설립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결국 학교 자퇴를 결정했다. 남다른 부모와 특별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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