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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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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누구랑 살고 싶을까?

등록 2013-01-25 21:29 수정 2020-05-03 04:27
*미국 언론에서는 불법 입양이 시도된 한국 국적 아이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은 아이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지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합니다. _편집자

2012년 6월28일. 태어난 지 18일밖에 되지 않은 한국인 영아 지영이는 미국 국적의 한국계 여성 ㄷ(49)씨 품에 안겨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오하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12월10일 미국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 법원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재판이 시작됐다. 보건복지부는 미국인 ㄷ씨 부부(남편은 백인으로 55살)가 한국의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입양특례법)에 저촉되는 불법 입양을 시도했다며 이들에게 후견권을 부여한 결정을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새해 1월9일, 주법원은 지난해 11월 내린 후견권 부여 결정을 무효화한다고 판결했다. 한국 국민인 지영이를 입양하면서 해당국 법원이나 관청에서 어떤 증빙서류도 발급받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법 및 미국 이민법 위반 문제를 재판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후견권을 취득했기 때문에, 이 부부가 후견권을 가지는 것은 아이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도 있었다. 1월14일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은 이들이 미 국토안보부(DHS)를 상대로 제기한 지영이 인신인도 신청을 기각하고, 아이의 거취는 미 연방정부 난민재정착센터(ORR)에서 결정하라고 판결했다. 아이의 인신인도 소송은 불법 입양으로 봐야 한다는 한국 보건복지부의 통보에 따라 지난해 11월9일 국토안보부가 아이를 부부와 격리시키는 조처를 취하자 제기된 소송으로,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주법원이 부여한 후견권에 따라 지영이를 부부가 돌보도록 했다.

미국 국적의 ㄷ씨 부부가 합법적인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간 생후 7개월 된 한국 여아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보도한 미 현지 언론들. ㄷ씨 부부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이 아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이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국적의 ㄷ씨 부부가 합법적인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간 생후 7개월 된 한국 여아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보도한 미 현지 언론들. ㄷ씨 부부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이 아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이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ㄷ씨 부부, 법상 입양 가능 조건 안 돼

현재 법적으로 ㄷ씨 부부는 지영이에 대한 후견권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미국 시카고 근교 에번스턴에 위치한 ㄷ씨 부부네 집에 있다. 1월11일치 을 보면 이 부부는 자신들이 지영이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아이를 정치적 인질로 이용하고 있다며 지영이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고아원으로 보내지리라 우려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아이가 한국으로 송환되는 것이 최선이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씁쓸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핏덩이 지영이가 어떻게 미국까지 가게 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7개월 동안 지영이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영이는 2012년 6월10일 경남 통영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이의 엄마(1992년생)·아빠(1994년생)는 만 20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였다. 엄마 김아무개씨는 지영이를 출산하기 4개월 전, 통영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부설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 시설에 들어간다.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의 자립을 도우려고 설립돼 국가 지원을 받는 시설이다. 시설에 들어올 당시, 김씨는 생후 6개월 된 첫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두 아이의 양육은 어린 엄마에겐 큰 부담이었을 터이다. 아이가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인 6월26일자로 미국 입양 동의서 및 친권 포기 각서가 작성된다. 이 문서엔 지영이 부모, 외조부모, 친조부 등의 이름이 쓰여 있다. ㄷ씨 부부는 친부모 각서만 있으면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문제가 없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지영이를 ‘요보호아동’(부모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하는 18살 미만 아동)으로 봐야 한다며, 민법상 사적 입양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시 입양특례법 적용을 받아 입양기관을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한국 입양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ㄷ씨 부부는 2002년 입양특례법에 따라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 경험이 있다. 지영이를 데려갈 당시 부부는 한국법이 요구하는 입양 가능 부모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한국 국민이 아니라면, 25살 이상 45살 미만만 양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초, 아내 ㄷ씨는 지영이를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10살짜리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다. 지영이가 태어나기 전이다. 통영에 있는 임산부와 미국 시카고에 사는 부부의 연결고리가 된 이들은 서아무개 목사와 아이 엄마가 머무는 시설의 이아무개 원장이다. 서 목사는 과의 통화에서 “아는 교회 집사를 통해 미국인 부부를 소개받았고, 통영 시설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적의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려면 미국 입국을 위한 비자가 필요했다. 만약 ㄷ씨 부부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법한 입양 신청 절차를 진행했다면, 아이에겐 입양비자(IR3 또는 IR4)가 발급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영이 여권으로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신청됐다. 비자면제프로그램은 여행 및 상용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ㄷ씨 부부에게 의뢰를 받은 국내 로펌 소속의 한국인 미국변호사는 아이를 비자면제프로그램으로 데려간 뒤 미국에서 입양 신청을 하라는 의견서를 써주었다. 2012년 6월28일 인천공항에서 미국 국적의 여성이 한국 국적의 핏덩이를 데리고 출국 심사를 마쳤지만 이를 미심쩍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은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아동 탈취를 막는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 지영이의 적법하지 못한 비자 문제가 드러났다. 공항에 억류돼 조사를 받던 ㄷ씨는 친부모가 작성한 각서 등을 제출해 입양하려는 아이임을 주장했고, 미 당국은 지영이를 입국시킨다. 11월8일 미국 국토안보부는 부부가 입양 합법성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져오지 못하자,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의심스러운 사건’ 검토를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요청한다. 이로 인해 한국 정부에 지영이 문제가 알려지게 된다.

당시 외교통상부나 법무부 등은 사건 대응에 미온적인 태도였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국외 입양을 ‘불쌍한 아이들이 선진국 부자 부모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길’로 생각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외 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나라다. 2011년 국외로 입양된 아이 수는 916명. 이 가운데 88%는 미혼모 자녀다. 미혼모 시설 원장과 목사는 기자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가엾은 아이와 미혼모를 위해 좋은 부모를 빨리 찾아주려다 생각지도 못한 곤경에 처했다는 하소연이었다.

946호 이슈추적

946호 이슈추적

OECD 국가 중에 해외 입양 허용 유일

이들의 말은 진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곧 아이의 행복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2008년 발행된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보고서 ‘국외 입양인 실태 조사 및 효율적 입양 사후 서비스 제공 방안’을 보면, 1970~80년대 미국·유럽 등지로 입양된 한국인 277명 가운데 약 80%가 삶에서 정체성 위기를 경험했다. 인종을 넘어선 입양은 아이에게 문화·사회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이자 진실화해를위한해외입양인모임(TRACK)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는 국외 입양에 대해 더욱 냉정한 진단을 내놓는다. “미국 내에서도 입양을 기다리는 유색 인종 아이는 많다. 국외 아동보다 미국 내 아동을 입양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든다. 그러나 자국 아동을 입양할 경우 친모와 아이를 만나게 해줘야 하고, 친모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인권 후진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면 이런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한국 아이들은 동유럽이나 중국 아이들보다 건강 상태가 좋다.” 아동권리 전문가들은 국가가 미혼모 등이 친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며, 국외 입양보다 국내 입양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법 국외 입양 시도와 계속되는 송사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지영이다. 이런 피해를 유발한 책임 소재의 규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미혼모 시설 원장, 미국인 부부, 목사 등을 형법 및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최근에야 우리 쪽으로 사건이 넘어와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며 “미국인 수사와 관련해서는 외교적 문제가 있어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ㄷ씨 부부는 지영이를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적지 않은 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1월11일치 을 보면, 아내 ㄷ씨는 미혼모 시설 원장에게 일종의 후원금으로 4800달러를 건넸고, 그 외에 아이의 친모·변호사·목사 등에게 현금을 지급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런 비용이 아이를 데려오는 대가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미혼모 시설 원장은 “ㄷ씨가 불쌍한 엄마들을 위해 쓰라며 간곡히 부탁해 돈을 받은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돈을 썼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후원금 통장에 입금했다”고 해명했다.

지영이의 삶 위한 최선의 선택은

지영이가 한국으로 돌아올지, 계속 미국에 머물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ㄷ씨 부부는 1월10일 주법원에 새로운 입양 신청을 제기했고, 1월16일 연방법원에 국토안보부를 상대로 지영이의 인신보호 신청을 냈다.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움직임이다. 한국 정부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한국 송환이 이루어져야 아이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태도다. 보건복지부 이경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아이의 법적 후견인이 정해졌고, 공개 입양 경험이 있는 한국인 부부가 지영이 입양을 신청해 양부모 후보로 선정된 상황”이라며 “한국인 부부가 직접 미국으로 가 아이를 데려올 준비가 돼 있고,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즉시 해당 가정에서 위탁보호될 수 있게 관련 절차도 마무리한 상태”라고 밝혔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지영이의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는 한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만큼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미국으로 보내졌다. ㄷ씨 부부가 양부모로서 자격이 적합한지 알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을 묵인하고, 미국 땅에서 그저 잘 자라기만 바라는 것은 이미 한 번 한국 사회가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했던 아이를 두 번 버리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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