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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쫄리’ 고향에 울려퍼진 ‘고향의 봄’

등록 2012-10-24 15:00 수정 2020-05-03 04:27

무대의 막이 걷혔다. 붉은 제복에 모자를 눌러쓴 30여 명의 수줍은 검은 피부의 학생들이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 이었다. 플루트·트럼펫·바순 등을 든 낯선 외모의 이들은 북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온 ‘톤즈 브라스밴드’다. 남수단의 딩카족인 이들은 대부분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딩카족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종족이다.

‘톤즈 브라스밴드’ 단원들이 지난 10월1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2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 연회장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톤즈 브라스밴드’ 단원들이 지난 10월1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2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 연회장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이 신부 묘소에서 연주회 열기도

‘톤즈 브라스밴드’가 지난 10월15일 오른 무대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2012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 연회장이었다. 이들은 이날 아프리카 39개국 장차관 41명과 아프리카개발은행 도널드 카베루카 총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등 한국 노래를 연주했다.

이들이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대양을 건너 한국 땅을 찾은 건 단지 이 짧은 공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이 오게 된 연유에는 2010년 영면한 고 이태석 신부가 있다. 의사 출신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2001년 북수단과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남수단 와랍주 톤즈로 가 작은 병원과 진료소·학교를 짓는 등 선교·구호 활동을 벌여 ‘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2008년 휴가차 들른 한국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남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2010년 선종했다. 그의 활동은 영화 로도 널리 알려졌다. ‘톤즈 브라스밴드’는 이 신부가 톤즈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꾸린 학생 음악단이다.

톤즈 사람들은 이 신부를 ‘파더 쫄리’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이들이 그의 영문 이름인 존 리(John Lee)를 서툴게 발음하는 것이다. ‘톤즈 브라스밴드’가 한국을 찾은 가장 큰 목적은 바로 한국에 묻힌 이 신부를 만나는 일이었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인 지난 10월14일 오후, 이 신부의 묘소가 있는 전남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을 찾아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은 이 신부가 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톤즈 브라스밴드’의 아순다 아조크(18)는 “한국에 와 무덤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파더 쫄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며 “무덤을 손으로 만졌더니 마치 그가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밴드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존 마폴(19)은 “플루트를 처음 배울 때 친구 다루듯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가르쳤던 ‘파더 쫄리’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2016년 남수단에 종합병원 건립돼

이번 ‘톤즈 브라스밴드’의 방한은 남수단의 코스티 마니베 응아이 재정경제기획부 장관이 ‘이태석 신부 기념 의과대학병원’(John Lee Hospital) 건립 사업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고자 기획한 일정이다. 이 사업은 한국 정부가 이 신부의 업적을 기리고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남수단 수도 주바에 2016년까지 남수단 최초의 현대식 의과대학 종합병원을 짓는 일이다. 이 신부의 형이자 ‘이태석 사랑나눔(스마일 톤즈) 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태영 신부는 “이 신부가 생전에 ‘삶은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처럼 이 신부가 늦게나마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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