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불거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민간 사찰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사건 당시 기무사는 ‘합법적 수사 활동’이라 주장했다. 고 엄윤섭씨 등 사찰 피해자 15명은 이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2심 재판부 모두 사찰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기무사가 ‘공조수사’를 빌미로 민간인 사찰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법원 “공조수사 명목 사찰 이뤄질 위험”
이 입수한 항소심 재판 기록을 보면, 인터넷 카페 ‘뜨겁습니다’ 회원들의 동향이 담긴 수첩 자료에 대해 기무사는 “조총련계 재일교포 O씨와 문자 등을 주고받은 현역 군인 ㄱ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국가정보원의 조정을 받아 경찰과 공조수사를 했고, 이 과정에서 O씨와 접촉한 인물들에 대한 내용을 메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엄윤섭씨 등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의 행적이 담긴 동영상 자료에 대해선, 진행 중인 공안 사건과 관련돼 수사 경위를 공개할 수 없으나 국정원의 조정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경찰과 공조수사를 하던 중에 촬영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기무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5월3일 판결을 보면, 인터넷카페 회원 동향 기록 건에 대해 법원은 “기무사 수사관들은 경찰과 함께 차량을 이용해 (재일동포 O씨와 만난) 민간인 행적을 감시·추적한 다음 각자 수집한 정보를 상호 보완해 이 사건 수첩에 기재한 것으로 보이는바, 이는 직접 민간인에 대한 첩보 수집이나 수사를 한 것에 다름 아니므로 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민노당 관계자들의 동향이 담긴 동영상 등에 대해서도 “적법하게 확보된 자료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법원은 기무사의 공조수사 범위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정보 교류나 공유 등 정보 및 보안 업무의 통합 기능 수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기무사 수사관이 직접 민간인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지 않을 경우, 공조수사라는 명목 아래 민간인 사찰이 이뤄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사찰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률사무소 해율의 이원구 변호사는 “공조수사의 경우, 정보 교류 정도는 가능할 수 있으나 민간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찰·미행·망원 등은 허용돼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찰을 기무사가 반복해왔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항소심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최아무개 경위는 재일동포 O씨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기무사 한 팀, 경찰 한 팀이 함께 현장 활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번 사건 외에도 기무사와 공조수사를 한 적이 있으며, 각 기관 담당자들이 협의해 정보를 교류하거나 현장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하며 큰 사건일 경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기무사는 국정원 조정을 빌미로 불법행위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관은 “조작 간첩사건 등을 보면, 주로 국정원이 기획을 하고 기무사는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 해서는 안 되는 민간인 수사를 합법적 활동인 것처럼 강변했다”며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규정’등 모호한 관련 법규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의원된 당시 기무사령관
기무사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상태다. 사건 당시 기무사령관이던 김종태씨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돼 국회 국방위에 배정됐다. 그는 국회 회의록에 기록된 2009년 10월6일 국정감사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까? 19대 국방위 위원장이 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민간 사찰 문제와 관련해 김 전 사령관에게 당시 이렇게 말했다.“불법적인 것이 나중에 발견되면 사령관님도 책임을 지셔야 됩니다.” 김 전 사령관은 분명 ‘예’라고 답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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