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소나기로 바뀌었다. ‘한-일 군사협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임기 초부터 ‘쥐도 새도 모르게’ 이를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는 급기야 6월26일 국무회의에서 협정문을 통과시켰다. 기습이다.
정부는 ‘한-일 군수지원협정’ 체결까지 추진하고 있단다. 야권과 대다수 국민은 독도와 위안부 등 한-일 관계 문제를 들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를 냉전시대로 되돌릴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은 ‘국익론’을 앞세워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 예상보다 여론이 좋지 않았던 건가? 새누리당마저 정부에 협정 체결 연기를 요청했다. 결국 정부는 6월29일 오후 4시로 예정됐던 서명식을 ‘국회 설명이 먼저’란 이유로 돌연 연기했다.
물론 협정 체결 자체가 취소된 건 아니다.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보고 절차만 밟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려 할 공산이 크다. 왜 이렇게 급한 걸까? 임기 말에 서두르는 이유는 뭘까? 궁금증은 크게 세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는 협정 추진 배경과 이유이고, 둘째는 그 실체와 본질이며, 셋째는 문제점과 파장이다.
미·일이 뼈저리게 기다린 ‘뼛속 친미·친일’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미-일 동맹의 오랜 숙원이었다. 왜 ‘MB 시대’에 그 숙원이 풀리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크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선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을 보면 알 수 있다. 2007년 대선 직후인 12월19일 작성된 주한 미대사관의 외교전문에는 “(이 대통령의) 외교정책 참모이며 외무장관을 지낸 유종하는 미국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하등의 걱정할 것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한-미-일 3각 동맹은 향상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나와 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2008년 5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국 대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주일 미대사관 주관으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도,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태진 참사관은 “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강력한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을 희망하고 있지만, 취약해진 정치적 입지로 인해 공개적으로 이를 드러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고 위키리크스는 폭로했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비현실적이고도 자해적인 흡수통일론이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공개·비공개적으로 흡수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미국은 이를 위해서라도 한-일 간의 협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주문해왔다. 2010년 2월22일치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이 “천영우 외교통상부 차관은 강력한 한-일 관계가 일본으로 하여금 통일된 한반도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스티븐스 대사의 주장을 인정했다”고 기술한 것은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앞선 2009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에서도 한국 국방부의 한 고위 관료는 “북한 권력 승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3자 공동의 대북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3자 간 정보 공유 및 전략 대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일 군사협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미사일방어(MD)체제를 고리 삼아, 사실상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려는 데 있다. 동맹이 겨냥한 대상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포함된다. 한-미·미-일 동맹으로 이원화된 동북아 동맹 체제에서, 한-일 군사관계까지 이어지면 3각 동맹의 맹아는 자연스럽게 태동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뼛속까지 친미·친일” 성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정치적 기회’로 간주했다. 이 대통령의 시간이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한-일 관계의 유동성을 고려할 때, 속전속결로 협정을 마무리하려 하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중심축을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 한-일 군사협정의 ‘군사적 필요’는 더욱 커졌다.
한-일 현안과 별개? 외교에 별개란 없어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런 분석이 지나친 것이라고 반박한다. 과연 그럴까? “(한-일) 두 나라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미-일) 3자 MD 협력을 위한 조처를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와이의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의 제프리 호넝이 일본 영자지 6월18일치 기고를 통해 지적한 바다. 그는 한-일 군사협정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그가 속한 연구소는 한-미-일 3국의 민관 접촉(1.5트랙)의 핵심 기관이다.
에드워드 라이스 주일미군 사령관도 2009년 7월 도쿄에서 열린 차관보급 한-미-일 DTT에서 “정보 공유가 미-일, 미-한 양자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MD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공유된 지식과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중요한 장점들과 함께 3자 정보 공유가 이뤄지면 더욱 효과적인 MD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주일 미대사관도 3자 간의 정보 협력은 “다른 분야에서의 효과적인 협력을 위한 선도적 조처”라고 평가했다. 한-일 군사협정은 애초부터 한-미-일 군사협력의 맥락에서 추진돼온 것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맺고 있는 협정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한-일 군사협정을 통한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이 왜 한국의 국익을 심대하게 훼손하게 될 것인지를 따져보자. 첫째 일본의 경거망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일 군사협정과 독도·위안부 등 한-일 관계 현안은 ‘별개’라고 강조한다. 외교의 세계에 ‘별개’란 없다. 외교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언행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최근에는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주의 군사적 이용까지 명문화하는 단계까지 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한-일 군사협정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이를 반대할 근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독도·위안부 문제의 근원은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한국이 일본 군사대국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국익인가?
둘째 남북관계 파탄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 악화다. 군사 ‘동맹’이든 ‘협력’이든, 기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기반으로 한다. 한-일 군사협력 정당화의 다른 이름은 ‘북한 때리기’다. 이는 남북한의 불신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북한은 한-미-일의 의도에 더욱 강한 경계심을 품고, ‘핵 억제력’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 또 MD라는 방패를 뚫기 위해 탄도미사일 전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다. 이는 한반도 군비경쟁 격화와 상시적인 안보 불안을 낳을 것이다. 안보를 위한다는 한-일 군사협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커다란 국익 손실이다.
‘남방 3각 강화’가 불러올 ‘북방 3각 강화’
끝으로 동북아 신냉전 출현 위험이다. 한반도 지정학적 특성의 핵심은 ‘남방 3각 동맹’이 강해질수록 ‘북방 3각 동맹’의 출현 가능성도 커진다는 데 있다. 전제국 국방부 정책실장은 2008년 4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3자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눈에 띄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따른) 인지된 위협에 대처하고자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한-미-일 결속이 중-러 결속을 야기해 동북아 신냉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정부의 선택이, 고작 ‘티 내지’ 않고 추진한 것이었다. 냉전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이 그 냉전 부활을 부추기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대답하라고 악쓴 윤석열…총 쏴서라도 끌어낼 수 있나? 어? 어?”
‘윤체이탈’ 윤석열…“살인 미수로 끝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게 되냐”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
계엄 ‘수거 대상’ 천주교 신부 “순교할 기회 감사”
홍장원 “내가 피의자로 조사받는 거 아니잖냐” 받아친 까닭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영상] 피식, 고개 홱…윤석열, 체포명단 폭로 홍장원 노골적 무시
WSJ “트럼프, 불법이민자 관타나모 수용소 이송…군대 투입”
김용현 “애국청년 위로하려”...‘서부지법 난동’ 30여명에 영치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