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떠나지 않는 자의 앞모습은 얼마나 지겨운가.”
소설가 이외수씨가 지난 6월19일 트위터(@oisoo)에 남긴 MBC 파업에 대한 단상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계속되고 있는 MBC 노동조합의 파업은 이미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 가운데 가장 긴 파업이 됐다. 소설가 조정래, 배우 차인표, 가수 이문세씨 등 유명 인사들도 줄지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표현할 만큼 파업을 바라보는 우려와 안타까움은 커져가고 있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MBC의 51년 역사에서 최장기 파업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2년의 ‘52일 파업’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은 공정 보도와 최창봉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2010년 3월 방송문화진흥회의 임명을 받고 김재철 MBC 사장이 취임하자 파업의 역사도 다시 쓰였다. 6월이 지나면 파업 기간이 150일을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김 사장은 여전히 ‘건재’하고, 사 쪽은 강도 높은 징계를 통보하며 노조 조합원을 압박하고 있다. MBC 역사에서 최장기 파업과 함께 군사정권 시절에나 봤음직한 언론사의 ‘대량 해고’라는 최악의 역사까지 재연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우선 복귀’ 대 ‘끝까지 투쟁’으로 분열시키기?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 주장하는 사 쪽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에게 지속적으로 징계를 통보하고 있다. 지난 6월20일에는 <pd>의 상징적 존재인 최승호 PD와 박성제 전 노조위원장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로써 노조 조합원 가운데 해고자는 8명으로 늘어났다. 앞서 정영하 노조위원장과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 등 노조 핵심 집행부가 해고를 당했다. 그 밖에 중징계·대기발령 등을 받은 조합원 수를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 사 쪽이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조합원 69명을 골라 두 차례에 걸쳐 대기발령을 통보한 것도 앞으로 징계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해고 조합원 수는 파업이 장기화하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파업 참가자가 3번의 업무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을 때는 해고 절차를 밟은 전례를 미뤄볼 때, 노조도 사 쪽이 ‘업무복귀명령→대기발령→해고’로 이어지는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예상해왔기 때문이다. 사 쪽은 지난 2월24일과 6월1일,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 조합원 전체에게 ‘업무복귀명령’을 내린 바 있다. 게다가 지난 6월11일 김재철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2014년까지 임기는 반드시 채울 것”이라고 밝힌 점도, 사 쪽이 앞으로 강경한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 쪽이 시간 간격을 두고 징계를 통보하는 ‘계단식 징계’에 나선 데에는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770여 명의 조합원들의 마음을 흔들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해고의 전 단계로 받아들여지는 대기발령자 명단에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과 파업 대체인력으로 선발됐다가 파업에 참가한 경력기자까지 포함됐다. 파업에 참여하면 누구나 해고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에 대해 노조의 한 조합원은 “징계자 명단을 단계적으로 나눠 발표해 조합원들 개개인을 압박해 노조 안에서 ‘우선 복귀’를 주장하는 쪽과 ‘끝까지 투쟁’하는 쪽으로 분열되게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사 쪽은 대화와 별개로 사규를 위반하고 회사 경영에 영향을 끼친 노조 조합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은 “우리는 언제나 노조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며 “그러나 대화를 위해서는 사장 퇴진 등 노조가 근거 없이 요구해온 조건들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 복귀, 후 대화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노조 쪽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사 쪽과 노조가 대화의 접점을 찾지 못해, MBC 안의 갈등이 쌍용자동차 등 일반 사업장 파업 현장처럼 노조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해고 무효 소송에 휘말리는 사태로 비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사 쪽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때를 빼곤 언론사 노조 파업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대규모 징계와 노조 집행부의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는 등 법률적인 행동을 일사불란하게 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사 쪽은 지난 3월 노조와 집행부 16명 전원을 상대로 3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해당 금액에 대해 노조 집행부의 재산 가압류를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노·사·정 동시 자문한 이례적 경력
앞으로 있을 법정 소송에 대비해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 쪽의 강경한 대응은 과거 사내 조직 문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이런 사정 탓에 노조에서는 사 쪽의 기민한 대응이 경영진의 아이디어가 아닌 외부의 법률 자문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노조와 법조계 등 복수 관계자들은, 현재 사 쪽의 파업 관련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곳은 ‘법무법인 광장’이라고 전했다. 광장은 변호사수·매출액 기준으로 김앤장에 이어 업계 2위권으로 평가되는 대형 로펌이다. 노조 쪽 법률 자문은 ‘민주노총 법률원’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진숙 본부장은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와 노무사 등 전문가를 통해 필요한 법률 자문을 받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는 경영상 정보이기 때문에 굳이 외부에 밝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6월15일자 파업특보를 통해 “(사 쪽 변호사·노무사들이) 임시직과 시용 기자, 각 직종의 경력직 대거 채용 등 사실상의 파업 대체 인력 투입 책동이나 언론노조 탈퇴 요구,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곡해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조합원 협박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 쪽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광장은 노무 관련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 로펌 가운데 하나다. 광장에서 인사·노무를 담당하는 팀은 주완(53·사시25회) 파트너 변호사로, 그는 노사정위원회 멤버인 한국노총(노동자)과 경영자총협회(사용자), 고용노동부(정부) 등 3개 기관·단체를 동시에 자문한 이례적인 경력으로 유명하다. 주 변호사는 2008년 자신이 이끌던 법무법인 지성을 법무법인 지평과 합병했다가, 내부 갈등을 이유로 합병 100일 만에 노무 전문 변호사 등 10여 명만을 이끌고 광장 인사·노무팀에 합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조 쪽에서는 과거 광장이 노무 관련 법률 자문을 했던 기업의 노사갈등 사례를 예로 들며, ‘대량 해고’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 쪽이 예로 든 대표적인 사례는 2005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의 파업 사태다. 당시 노사정위원회의 직권 중재에도,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 647명 전원이 중징계(해고 23명, 정직 235명, 감급 142명, 견책 247명)를 받았다. 노조 집행부는 징계에 더해 31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에 걸렸다. 사 쪽이 징계를 앞두고 있는 노조 조합원들에게 파업 때 입었던 노조 조끼를 가위로 조각내는 ‘조끼 절단식’ 등을 강요하는 등 과도한 징계를 내려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노조의 집행부를 제거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려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행태는 노동 기본권을 위협하는 범죄행위에 가까운 태도”라고 말했다.
정치권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노사 어느 쪽이든 법률 자문을 받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다만 사 쪽이 이런 법률 자문을 바탕으로 조합원들의 업무 복귀에 애쓰지 않고, 노조 주요 조합원의 해고를 유도해 사 쪽에 부담스러운 MBC 노조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파업 과정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이 복직 소송 등을 진행한다면 소송 제기 시점에서 적어도 2년6개월, 길게는 3년 정도 걸려야 결론이 나는 게 일반적”이라며 “민·형사상 소송 제기 카드는 노조의 파업에 영향을 주려는 사 쪽에 유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MBC의 경우, 사 쪽이 최근 파업 인력을 대체할 경력기자·PD 선발을 진행하며 특보를 통해 1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밝힌 점도 사내 인력의 ‘물갈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한 노조 조합원은 “시용·경력 기자들을 동원해 노조를 결성한다는 소문까지 돈다”며 “기존 노조 자체를 해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정면 충돌 양상인 MBC 사태를 풀려면 정치권 등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출로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그동안 함께 파업을 해오던 KBS와 노조 등이 최근 파업을 마무리하고 업무에 복귀한 점도 시민들이 MBC 사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MBC 노조가 진행해온 파업 지지 서명운동이 사 쪽의 최승호 PD 추가 해고 등을 기점으로 각계 인사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이강택 언론노조위원장이 ‘언론장악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21일간의 단식농성 끝에 병원에 실려가는 등 사태의 심각성이 임계치를 향해 치솟는 징후가 뚜렷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김재철 사장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스스로 물러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오는 8월 MBC 사장을 선임권을 지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임기를 마치고 새 이사들로 구성될 때가 김재철 사장의 교체 문제를 매듭지을 적기가 될 수 있을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어느 쪽일지는 MBC 노조의 파업 대오는 물론 여론의 향배와 정치권 등의 움직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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