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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몫 논란에 흐려진 대법관 다양화

1964년 처음 도입된 검찰 출신 대법관 임명제청… 검찰 몫 있다면 여성·진보 몫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지적 일어
등록 2012-06-08 11:09 수정 2020-05-03 04:26

1964년 2월27일 당시 조진만 대법원장은 주운화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대법원판사(현 대법관)로 임명제청하는 데 동의했다. 검사 출신으로는 첫 대법관이 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갑자기 임명되고 보니 별로 소감이 없다”고 했다. 당시 법관추천위원회 위원이던 민복기 법무부 장관은 20여 년 뒤 “내가 검찰 출신의 대법원 영입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진언했다”고 회고했다. “대법원은 법관만의 것이 아니라 전 법조인의 전당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찰 출신 변호사 중에 천거해도”

검찰 출신 두 번째 대법관은 1975년 대법원판사에 임명된 나길조 광주고검장이었다. 주운화 대법원판사가 1969년 임기 중간에 퇴임했으니 5년여의 공백이 있었다. ‘검찰 몫 대법관’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1년 4월 새로 구성된 대법원은 검찰 출신 대법원판사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자기 몫을 늘리려는 검찰과 이를 막으려는 법원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졌지만 검찰이 승자가 됐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검사들의 대법원 진출을 넓히는 선례를 남겼다’는 불만이 많았다. 실제로 1986년에도 이준승 광주고검장, 이명희 서울고검장이 대법원판사 자리를 물려받았다. 검찰 고위직들의 ‘인사 숨통’을 열어준다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헌법 개정 뒤인 1988년 7월, 이일규 신임 대법원장은 재야 출신 대법관을 4명 임명하며 검찰 출신 대법관을 1명으로 줄였다. 검찰은 ‘대법원 다양성과 관례’를 들어 대법관 두 자리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문을 연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김양균 서울고검장이 임명돼 최고 법원의 ‘검찰 몫 두 자리’는 계속 유지된다.

오는 7월10일 퇴임하는 대법관 4명 중에는 검찰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이 포함돼 있다.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 때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해 ‘국민 검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안 대법관 후임으로 법무부가 추천한 검찰 몫 후보들에 대해 대법원이 난색을 보였다. 안 대법관에 견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이유다. 6월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 13명을 추천했다. 이른바 검찰 몫 후보로 현직 고검장 2명, 지검장 1명이 포함됐다.

전직 검찰총장은 “판사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서라도 검찰 몫 대법관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현 대법관 14명(법원행정처장 포함) 가운데 11명이 고위 법관에서 곧바로 대법관이 됐다. ‘대법관 구성 다양화’에 검찰 출신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대법관은 “검찰 출신 대법관의 경우 형사사건에서 판사 출신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검찰 몫이 합리적 이유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관행이 된 이상 그것을 없애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검찰 몫 대법관이 꼭 현직 검찰에 있는 사람이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게감이 떨어지면 검찰 출신 변호사 중에서 천거하면 된다. 검찰총장이 되기 어려운 사람을 대법관으로 보내겠다는 식은 대법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여성 대법관 후임, 이번에도 남성

검찰을 두들기면 대부분 좋아한다. 대법관 구성 다양화라는 중요한 화두가 ‘검찰 몫’ 논란으로 흐려졌다. 대법원이 검찰 몫을 고민하기 전에,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몫’들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몫이란 게 있다면, 여성·진보·개혁 몫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현실은? 2010년 물러난 김영란 전 대법관 후임으로 남성 대법관이 임명됐다. 오는 7월에 전수안 대법관이 퇴임하지만 후보자 13명 가운데 여성은 없다. 이홍훈·박시환·김지형 전 대법관 후임도 사실상 보수 일색이었다. 이번에도 진보·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후보는 없다. 양 대법원장은 6월 초,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 4명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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