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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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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휴무 대형마트, ‘꼼수’ 쓰시네 디테일하게

서울시 강동구 첫 실시 뒤 한 달, 쉬지 않는 점포로 유인하고 할인행사 등 공격적 마케팅…적용 안 되는 업태로 변경 시도도
등록 2012-06-06 19:21 수정 2020-05-03 04:26

한강 천호대교 남단을 지나면 천호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한때 서울 동남부의 ‘핫 플레이스’였다. 잠실이 진짜 ‘뽕밭’이던 시절, 천호사거리는 이미 서울시내와 경기 하남·구리·여주·이천 등을 오고 가는 시외버스로 가득했다. 인파가 모이는 곳에는 시장이 서는 법. 천호사거리와 약 300m 떨어진 구사거리에는 1970년대부터 재래시장인 ‘천호시장’이 있었다. 시장 안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내놓은 식료품과 옷, 한약재 등을 파는 점포 400여 곳이 있었다.

대형마트 4곳·SSM 15곳, 2·4주 일요일 휴업

번성하는 상권을 따라 백화점도 일찌감치 들어섰다. 천호사거리 한복판에는 1984년 ‘유니버스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보다 4년 먼저 세워진 백화점이다. 그 뒤 ‘목산백화점’으로 간판을 바꿔 단 이 5층 건물의 주인은 1992년 ‘신세계백화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곧 경쟁자가 나타났다. 바로 옆 건물에 13층 높이의 현대백화점이 들어서자, 신세계백화점 천호점은 2000년 이마트로 변신했다. 대형마트라는 업태가 움트던 당시, 이마트 천호점은 창고형으로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 대신 백화점 식품매장을 본뜬 상품 진열을 선보였다. 이 방식은 현재 대형마트 매장 형태의 뼈대이자, 이마트를 대형마트 업계 1위로 올라서게 만든 디딤돌 노릇을 했다.

천호사거리는 도심 유통업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 밀려 과거만큼 상권의 중심지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 지역이 최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4월6일 강동구의회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담은 조례 개정안을 의결·발의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전북 전주, 대전 등에서 먼저 해오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대형마트와 SSM이 매일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심야영업을 할 수 없으며, 매달 둘째·넷쨋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해 문을 닫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강동구에서는 이마트 천호점과 명일점, 홈플러스 강동점, 이랜드그룹의 2001아울렛 천호점 등 대형마트 4곳과 농협하나로마트, 롯데마켓999,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슈퍼마켓 등 SSM 15곳이 지난 4월22일과 5월13일, 그리고 황금 연휴가 끼어 있던 5월27일 문을 닫았다. 강동구를 시작으로 서울시내 구별로 발의되고 있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관련 조례 개정안은 6월을 넘어서면 서울 대부분 지역에 적용된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대형마트·SSM 의무휴업 한 달의 효과는 어떨까. 지난 5월30일 오전에 만난 이곳 시장 상인의 반응은 예상보다 냉랭했다. 게다가 천호신시장 상인들은 “세 차례의 의무휴업일에 시장도 같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SSM이 쉬는 날, 관내 시장 상인들의 매출이 평소보다 평균 20~30% 올랐다던 강동구청 관계자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천호시장은 건물 소유주에 따라 천호시장, 천호신시장, 동서울시장 구역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천호신시장은 40년 전부터 매달 둘째·넷쨋주 일요일을 정기휴무일로 정하고 쉬어왔다. 실제로 천호신시장 상인 100여 명은 대형마트·SSM 의무휴업이 시작될 무렵인 4월 말, 조례 개정안의 효과를 높이려고 휴무일을 매달 첫째·셋쨋주로 옮기는 것을 묻는 투표도 했다. 그러나 기존대로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중대형 슈퍼 24시간 영업이 더 위협적”

1970년부터 천호신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춘웅(69)씨도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어차피 대형마트 손님과 시장 손님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괜히 휴무일을 바꾸면 그나마 오던 시장 손님들의 혼란만 커질 뿐”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대형마트보다는 이미 많이 생겨버린 (의무휴업 대상이 아닌) 중·대형 슈퍼가 24시간 영업하는 게 더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천호시장 바로 옆 건물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중·대형 슈퍼가 있다. 이곳은 준대규모점포로 분류되지 않아 의무휴업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자조적인 분위기에 대해 천호신시장에서 참기름집을 운영하는 이영덕(45)씨는 “지방과 다르게 서울에는 동네 곳곳에 이미 다양한 종류의 슈퍼가 많이 들어와 경쟁 자체가 안 된다”며 “대형마트까지 의무휴무일의 손해를 만회하려고 온갖 애를 쓰니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대형마트·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시장상인·소상공인 단체가 지난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요구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실제로 시장경영진흥원과 소상공인진흥원이 대형마트·SSM의 의무휴업을 시작한 뒤 전국 대형마트 주변 중소 소매업체 904곳과 전통시장 내 점포 417곳을 조사해보니, 5월27일 평균 매출이 전주 대비 12.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뭘까.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의 근거가 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논의가 더디게 진행돼, 개정안 내용이 시장 상인들의 현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개정안의 허점을 파고들며 시장 상인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따르기는커녕 의무휴업을 무력화하려는 다양한 ‘꼼수’를 펼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대형마트·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시작된 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대형 유통업체의 공격적인 고객 마케팅이다. 롯데마트가 5월27일 고객들에게 “이번주 일요일(5/27), ○○점 정상 영업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 금액 할인권과 바꿔주는 행사도 했다. 롯데마트뿐만 아니라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의무휴업일에 맞춰 고객 정보에 따라 거주지 근처의 영업 매장과 할인 품목을 안내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했다. 아직 조례 개정안을 적용받지 않는 지역의 대형마트로 고객을 유치해, 의무휴업의 효과가 시장 상인과 소상공인에게 옮아가지 못하도록 차단한 셈이다.

대형마트와 SSM이 문을 닫은 4월22일, 서울 강동구 천호신시장의 출입문이 닫혀 있다. 천호신시장은 40년 전부터 매주 둘째·넷쨋주 일요일을 정기휴무일로 정하고 쉬어왔다.

대형마트와 SSM이 문을 닫은 4월22일, 서울 강동구 천호신시장의 출입문이 닫혀 있다. 천호신시장은 40년 전부터 매주 둘째·넷쨋주 일요일을 정기휴무일로 정하고 쉬어왔다.

농협하나로 마트, 대형마트 영업 제한 계기로 ‘도약’

홈플러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허점을 이용해 아예 의무휴업 대상을 피해가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을 “3천㎡ 이상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점포의 범위를 ‘대형마트’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홈플러스는 최근 대형마트로 등록한 부산, 경남 거제, 충북 청주 등의 점포를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되는 쇼핑센터·복합쇼핑몰로 바꾸려는 업태 등록 변경을 추진하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소상공인 단체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점포가 입점해 있는 쇼핑센터 건물의 점주가 집객을 함께 하기 위해 업태 등록 변경을 요청한 것”이라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도 이런 점주의 요청을 알리려고 공문을 보낸 것뿐이며, 업태 등록 변경을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개정안의 허점 탓에 농협하나로클럽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반사이익을 얻는 현상도 벌어졌다. 회원제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와 이마트 양재점, 하나로클럽 양재점이 모여 있는 서울 양재동의 경우, 지난 5월27일 코스트코와 이마트가 의무휴업을 하자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고객이 평소보다 15~20% 가까이 늘어났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외 대상으로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1% 이상인 대규모점포 등”을 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논의하며, 국내 농수산업 종사자를 배려하겠다는 이유로 하나로클럽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만든 조항이다. 당시 지식경제위원회 회의록에는 하나로클럽 매장이 전국적으로 13곳뿐이라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을 예외의 이유로 들었는데, 정작 하나로클럽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계기로 2020년까지 지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대형마트·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적용을 계기로 최근의 상황을 반영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현실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이 지난해 10월 작성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SSM 간 공간적 경쟁구도 분석 및 정책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는 “대형마트와 SSM의 지속적인 경쟁이 전통시장의 입지를 좁히는 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SSM 규제 정책이 실효성을 얻으려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별도로 전통시장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통시장 보호·육성할 별도 정책 필요”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정을 좀더 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5월30일,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형마트·SSM의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지금보다 강화한 밤 9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의무휴업일은 매달 3일 이상 4일 이내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은 “이번 조례 개정안 적용에서 나타난 대형마트의 행태를 바탕으로 시장 상인과 소상공인들이 좀더 보호받을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의 폭넓은 재개정 논의를 조만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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