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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경제’ 유럽에 흔해요

홈플러스 회장 “속은 빨간 경제” 발언… 독일·프랑스·영국 등에선 영업시간 규제와
노동법으로 시장상인·소상공인 보호해
등록 2012-06-06 19:15 수정 2020-05-03 04:26

“한국 경제는 ‘수박경제’ 같다. 겉은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안을 잘라보면 빨갛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지난 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적용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수박경제론’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발언처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적용은 과연 자본주의 경제에 유례없는 정책일까?

프랑스, 대규모점포 노동자는 일요일 근무 못해
전문가들은 “유럽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등의 규제는 보편적인 제도”라고 설명한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많은 나라가 법률로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출점과 그에 따른 영향을 조사한 뒤 허가하도록 한 ‘루아로예’(Loi Royer)법과 ‘루아라파랭’(Loi Raffarin)법을 뼈대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보호를 해온 프랑스는 노동법으로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을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법에 따르면, 대규모점포 노동자가 월~토요일은 밤 10시까지만 근무할 수 있고 일요일은 원칙적으로 근무할 수 없다. 품목 구분도 뒀는데 비식료품 영업은 11시간, 식료품 영업은 13시간 이내 근무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연방정부가 1956년 마련한 ‘상점폐점법’(Ladenschlußgesetz)으로 심야영업과 휴일영업을 규제해왔다. 2006년 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한 뒤로는 각 지방정부가 마련한 법에 따라 영업시간 등을 제한받는다. 상점폐점법에서는 철도역·고속도로 등을 제외한 대규모점포는 월~토요일 아침 6시~저녁 8시에 영업을 하고 일요일·공휴일에는 문을 닫도록 했다. 바이에른주 등에서는 여전히 상점폐점법과 같은 내용을 적용하고 있지만, 주마다 영업시간 제한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든 주가 크리스마스 전날(12월24일)을 뺀 일요일·공휴일에는 영업을 할 수 없다.
영국은 ‘일요일 거래법’(Sunday Trading Act, 1994)에서 매장 면적 280㎡ 이상 소매점의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으면 영업을 할 수 있지만, 오전 10시~저녁 6시 사이에 6시간만 할 수 있다. 영업시간을 어기면 5만파운드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한다. ‘성탄절 거래법’(Christmas Day Trading Act, 2004)에서는 매장 면적 280㎡ 이상 소매점의 성탄절 영업도 금지하고 있다.

일본, 미국과 통상 마찰 겪어 법 폐지했지만…
일본에선 2000년 미국과 통상 마찰을 겪어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 등을 규제하던 ‘대규모 소매점포법’을 폐지했다. 이 때문에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점포의 영업을 규제할 조례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1930년대부터 백화점법 등 중소상인 보호 법률이 존재한 덕에 현재 4대 대형 소매업체의 전국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지 않는다.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교수는 “이미 대형 유통업체 3곳이 과점을 한 한국의 경우, 지방의 모든 재래상권을 살리는 식의 보호정책을 펴기보다는 일본의 ‘시가지 활성화법’처럼 특정 지방상권에 차별적인 보조·지원 정책을 써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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