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한 고비는 넘겼다. 산을 넘으면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주)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8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된 다음날인 5월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의 한 관계자는 박영준(52)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겨냥해 ‘다른 산’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은 보란 듯이 5월3일 박 전 차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안팎에선 ‘다른 산’을 박 전 차장의 ‘비자금 수사’로 풀이하는 시각이 있다. 각종 의혹에도 꿋꿋하게 버틴 ‘대통령의 두 남자’를 한번에 벼랑으로 내몬 (주)파이시티 수사의 끝은 어디일까.
의혹의 중심에 선 ‘자금관리인’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를 보면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폐부만을 찔러가고 있다. 4월 초 하이마트 횡령 사건을 수사하다 건져올린 단서 하나를 갖고 애초 수사의 종착역인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을 향해 지름길로만 달려온 셈이다. 지난 4월16일 이정배(55) 전 (주)파이시티 대표에 대한 조사로 로비의 전모를 파악한 검찰은, 4월19일 서울 양재동 (주)파이시티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또 중간에서 돈을 받아 전달한 브로커 이아무개(60·구속)씨와 돈 전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최 전 위원장을 협박한 최아무개씨를 동시에 체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파이시티 수사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에게 불똥이 튈지는 수사팀 외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체포 이틀 뒤인 4월21일 브로커 이씨와 운전기사 최씨를 구속해 탄력을 받은 검찰은 (4월23일치 ‘최시중·박영준에 61억원 주고 인허가 청탁’)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의 로비 의혹 전모를 처음 보도하자 ‘최 전 위원장→박 전 차장’ 순으로 숨통을 조여갔다. 구속영장 청구 시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의 혐의 입증에 검찰이 공들인 기간은 각각 일주일씩밖에 안 된다.
최 전 위원장은 고향 후배인 브로커 이씨의 소개로 만난 이 전 대표한테서 2006~2008년 10여 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는 방식으로 모두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최 전 위원장은 돈 받은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을 부인하는 전략을 세웠지만 검찰의 칼을 피하지는 못했다. 최 전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박 전 차장 수사에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 전 차장은 2006~2007년 이 전 대표로부터 브로커 이씨를 통해 “파이시티 인허가 업무를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100만원짜리 수표 20장 등 1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들여다보는 박 전 차장의 혐의에는 (주)파이시티 쪽 돈 이외의 자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박영준 비자금’ 수사 얘기가 솔솔 풍겨나오는 이유다. 박영준 비자금 의혹의 중심에는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된 이아무개(59) 제이엔테크 회장이 있다. 검찰은 박 전 차장이 (주)파이시티 쪽에서 받은 수표를 현금화하는 과정에 동원된 이 회장의 연결계좌를 추적하다, 이 회장 친인척인 포항의 ㄷ은행 직원이 관리한 의문의 돈 1억여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한 이 회장의 귀국 여부 주목
이 회장은 검찰이 박 전 차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4월25일 오전 중국으로 출국해 현재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검찰은 이 회장의 출국 시점 등을 미뤄볼 때 그가 사실상 ‘도피’를 한 것으로 보고 여러 경로로 귀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 회장이 전격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을 경우 세간에 떠도는 ‘박영준 비자금’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의 귀국 여부가 하이마트 횡령 사건에서 파생된 (주)파이시티 로비 수사가 ‘박영준 비자금’ 수사로 이어질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필 기자 한겨레 법조팀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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