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이오른(33)씨가 촛불을 들었다. 4년 만이다. 2008년 촛불시위에 처음 참여했을 때 그는 그 4년이 그토록 험난할지 몰랐다. 출국금지, 압수수색, 사전구속영장…. 그는 이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평범한 회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과 재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씨는 온라인게임 회사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작가였다.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이명박 정부가 짜증스러워, 이씨는 촛불시위에 나갔다. 그때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봤다.★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폭력 시위대’라는 낙인을 붙였다. 이씨는 ‘상식이 파괴된 사회’라고 생각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2008년 여름이 사그라질 때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시지프스’라는 필명으로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참여했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광고주 명단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다.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는 보수언론에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서 폐간운동도 있었지만★ 불매운동만큼 효과가 한눈에 드러나는 운동이 없었다. 한 달 새 광고면이 절반가량 줄고 광고주가 많이 바뀌었다. 변화를 꿈꿀 수 있었다.”
승리를 맛보는 것도 잠시, 보수언론이 반격을 가했다. 고소·고발이 이어지더니 검찰 수사관들이 이씨의 게임회사로 들이닥쳤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압수수색이었다. “동료들은 많이 놀랐는데, 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러다 문득, 회사에서 잘리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변호사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거다. 법원이 이씨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지만, 함께 불매운동을 하던 2명은 구속됐다. 당시 구속된 양재일★(45)★씨는 “철장에 갇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는데 아득해졌다”고 했다. 양씨는 61일간 구속됐다가 1심 재판이 시작되면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재판 과정은 버거웠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으로 40여 명이 나왔고, 회사일이 힘들 만큼 재판이 이어졌다. 사건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과 보수언론은 겁박하기 위해” 그를 기소했지만, 평범한 회사원인 그에겐 사회활동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누구도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는 더 단단해졌고,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2009년 6월부터 지난 4월 총선까지 1천 일간 투표 독려 1인시위 ★등을★ 펼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퇴근 뒤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피켓을 들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도 출마했지만 2차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야당이 다수당이 되는 데 실패했다.
투표 독려 1인 시위, 청년비례 출마…
좌절하지 않았을까. 이씨는 시지프스라는 필명을 왜 쓰는지 말했다. “무거운 바위를 굴려 산 정상에 오르지만 다시 원점으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누구는 패배라 하고, 누구는 변화라고 부른다.”
그는 ‘역사는 변화한다’고 믿기에 4년 만에 다시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정부가 2008년 5월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 담화문과 일간지 광고에서 밝힌 대로, 광우병 발생에 따른 쇠고기 수입 중단 조처를 시행하도록 요구하는 게 그의 첫 번째 요구다. 선례를 남겨 검역주권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험난한 길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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