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 미 농무부는 4월24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중부 지방 목장에서 사육된 젖소 한 마리에서 소해면상뇌증(BSE)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2003년 워싱턴주, 2005년 텍사스주, 2006년 앨라배마주에서 발생한 사례를 포함해 4번째이고, 2008년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들여온 이래 처음이다.
수입 중단 회피하려 법률 개정 꼼수
광우병이 발생하자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강화했다. 하지만 수입 중단이나 그와 다름없는 검역 중단 조처는 없었다. 그동안 정부는‘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2008년 5월8일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등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다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국회에 출석한 정부 관계자들은 매번 ‘즉각 수입 중단’을 강조했다. 그해 5월7일 국회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참석한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의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하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한다 그랬지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이후에도 “광우병이 발생하면 책임지고 중단하겠습니다” “일어나면 확실히 검역 중단하고요” 등의 답변을 했다. 이틀 뒤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도 “총리께서는 미국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 중단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셨지요?”라는 의원의 질의에 “예”라고 답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국민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미국 정부가 (중략) 광우병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될 때는 우리가 수입을 중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후 MB 정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광우병 발생 때 수입 중단 조처를 의무가 아닌 정부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택 사항으로 바꿔놓았다. 2008년 8월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 제32-2조의 1항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위생조건이 이미 고시되어 있는 수출국에서 소해면상뇌증이 추가로 발생하여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에 대한 일시적 수입 중단 조치 등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법이 통과되기 전 당시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의원은 “이 개정안에는 광우병이 일어날 때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권한조차 분명하게 보장돼 있지 않습니다. 개정안은 ‘광우병이 추가 발생할 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경우에 일시적 수입 중단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 이렇게 해놓았습니다. 왜 이런 조건을 붙여두는 것입니까? (중략) 개정안은 미국이 요구하는 데 따라서는 즉각적인 수입 중단조차 못할 가능성까지 열어두었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을 정부·여당은 물론 민주당도 귀기울이지 않았고, 법률은 그대로 통과됐다.
농식품부 “국민 건강 위협 상황 아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러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MB 정부는 당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오해를 낳았다고 말을 바꿨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4월26일 “우리는 젖소와 30개월 이상 된 소를 수입하지 않고 있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게 아직은 없다”며 “2008년 정부 광고도 같은 해 8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법의 수위를 낮췄고, 광고 문안이 짧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측면도 있는 까닭에 정부가 약속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4월27일 자료를 내어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미국 BSE는 오염 사료에 의하지 않고도 생길 수 있고,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30개월령 이상 된 젖소에서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기갑 의원실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통상부와 미 국무부의 외교 전문을 보면, 미국 정부는 ‘광우병 발생 때 수입 중단 가능’이라는 MB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를 거듭해서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돼 있다. 2008년 5월8일 당시 한승수 총리가 ‘광우병 발생시 즉각 수입 중단’ 등의 담화문을 발표하자 주미한국대사관 최석영 공사는 “미 측의 양해를 구한다. 총리 담화문에 대한 공개적인 반박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 대표보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공고문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MB 정부는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을 통해 수입 중단을 얻어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통상 마찰에 대해 한승수 당시 총리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법 20조에는 일반적인 예외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권에 대한 보호가 있다”며 “그것을 원용하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정부로서는 언제든지 그 경우에 우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통상 마찰을 거론하며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여인홍 식품산업정책실장은 4월25일 “곧바로 검역을 중단할 경우 통상 마찰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좀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조처를 취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입 중단 없는 검역 강화는 의미없는 대책”
미국 광우병 사태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높아지자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대 정부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은 4월27일 “정부는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고,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서 검역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27일 “일단 검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고, 황우여 원내대표도 “신뢰를 보호하고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부의 대응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가 거짓말을 일삼으며 미적거리자 시민들이 2008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촛불을 밝히고 거리로 나선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은 4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과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재협상 등을 요구하며 촛불집회 4돌을 맞는 5월2일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수입된 뼈와 살코기에서 (광우병을)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검역 강화는 의미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MB의 ‘촛불 트라우마’에 다시 불이 켜진 셈이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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