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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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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으로 퍼진 ‘외부세력’

국제평화운동과 국제연대의 상징 된 강정마을…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적 우려로 평택 미군기지 때보다 너른 지지 받아
등록 2012-03-22 15:51 수정 2020-05-03 04:26

3월15일 오후 2시13분 사회부 기자들의 노트북에 새 전자우편 알림이 반짝였다.
“우리는 오늘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소속 3명이 제주도행으로의 입국이 거부된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타랙 카우프, 엘리엇 아담스, 마이크 해스티가 중국 상하이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하자 제주공항에는 3명의 사진을 든 정부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제주도로 진입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3명 모두를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편에 돌려보냈습니다.”

영국 출신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왼쪽 둘째)가 지난 3월9일 펜스에 뚫린 구멍 사이로 공사장에 들어가 시위를 벌였다. 그는 제주 강정을 향한 국제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겨레21> 박승화

영국 출신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왼쪽 둘째)가 지난 3월9일 펜스에 뚫린 구멍 사이로 공사장에 들어가 시위를 벌였다. 그는 제주 강정을 향한 국제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겨레21> 박승화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제주도 강정마을의 평화활동가 최성희씨가 보낸 전자우편이다. 이 전자우편은 실시간으로 영어로 번역돼 국제평화운동 단체에 제공됐다. 최씨는 ‘우주 공간에서의 무기와 핵 사용에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이하 글로벌 네트워크)의 회원이다. 영어로 작성된 강정마을 소식이 이 단체 홈페이지(www.space4peace.org)에서 소개된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국외 단체, 외국인들의 소식은 다시 이 단체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된다. 미국 평화재향군인회(Veterans for peace) 회원 3명도 강정 소식을 최씨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접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재향군인회가 여럿 존재한다. 미국 평화재향군인회는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한 예비역들이 1985년 만들었다. 이라크전쟁 참전자도 회원이다. 전쟁의 어리석음을 직접 겪은 참전자들은 이 단체에서 평화를 외친다.

1990년대 후반 시민운동가들 사이에 회자됐던 구호가 있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둘러싼 나라 안팎의 움직임은 이 구호와 그대로 들어맞는다. 강정마을은 지금 국제평화운동, 국제연대의 상징이다. 3월9일에 이어 3월12일에도 강정마을의 활동가들은 분주했다. 그날 오후 6시, 일군의 활동가들이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노란 깃발을 흔들었다.

그 가운데 앤지 젤터도 있었다. 그는 반전평화운동가다. 비폭력 직접행동이 운동 원칙이다. 1980년대 ‘스노볼 캠페인’으로 유명해졌다. 영국 내 미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반핵을 외쳤다. 1999년 영국 해군기지에 잠입해 핵잠수함 트라이던트에 사용될 컴퓨터와 장비 등을 물에 던졌다. ‘트라이던트를 보습으로’(Trident ploughshare) 운동이다. 벨기에, 캐나다, 영국 등에서 모두 100번 넘게 체포됐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3월9일에 이어 3월12일 그는 강정마을에서 체포됐다. 1951년생인 이 영국 여성은 경찰이 이름을 묻자 “구럼비”라고 답했다. 프랑스인 활동가 뱅자맹 모네(31)는 같은 날 오후 4시50분에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로 올랐다. 공사장 철조망을 넘어 굴착기에 올라가 구호를 외쳤다. 그는 ‘제주를 구합시다’(www.savejejuisland.org) 홈페이지에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는 ‘국제통신원’ 노릇도 맡아왔다. 앤지 젤터와 뱅자맹 모네 둘 다 경찰 조사 뒤 3월14일 한국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국외언론의 관심 더 뜨거워

두 활동가는 강정마을에 쏠린 국제적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네트워크’, ‘제주를 구합시다’, ‘아바즈’(www.avaaz.org) 등 국제평화운동 단체와 웹사이트는 지속적인 서명운동이나 성명 발표 등 여러 방식으로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bbc> <cnn> 등 외국 언론도 여러 차례 강정 해군기지 논란을 보도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는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국제평화운동 단체다.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의 학자와 활동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 누리집에는 강정마을 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다룬 영상과 보도 영상 등 5편이 연속으로 게시돼 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지지 의사를 밝힌 명망가들의 이름도 화려하다.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직접 한국을 찾았고,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여러 차례 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도 강정 주민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아랍의 진보적 방송사 는 3월 초 세계의 분쟁지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에서 강정마을을 다뤘다. 는 2007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압력 때문에”(under the pressure of the United States)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2011년 3월엔 영국 공영방송 <bbc>의 루시 윌리엄슨 기자가 구럼비 바위 앞을 찾았다. 루시 윌리엄스 기자는 강정 해군기지에 한국 전함은 물론 “기지 사용을 원하는 다른 국가의 함정”(ships from other countries should they wish to use it)들이 정박할 것이며 “바로 그 점이 계속 논란거리가 돼왔다”(that’s been a bone of contention)고 보도했다. <cnn>도 3월8일 기사에서 강정 기지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했다.
평화운동의 국제연대와 국외언론의 관심이 2005~2006년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때에 비해 강정에서 더 넓고 깊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당시엔 주로 일본 시민운동가들이 지원 활동을 벌였다”며 “강정의 경우 미국, 일본, 유럽,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지지 활동이 벌어진다. 국제연대라는 측면에서 더 활발하다”고 말했다.
<bbc>등 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정 대표는 미 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먼저 꼽았다. 미국이 앞으로는 점점 더 중동보다 중국에 세계 전략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취지다. 정 대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높다”며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강정을 통해) 어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앤지 젤터도 에 “강정은 국제적 이슈”라고 말한 바 있다.

‘운동의 국제화’도 중요 요소
‘운동의 국제화’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강정마을에는 기본적인 영어 회화가 가능한 활동가가 여럿 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영상과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만들어 여러 국제단체 누리집에 게시한다. 외국인 활동가들도 이를 거든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강정마을 소식은 휘발유가 타듯 급속도로 번진다. ‘눈덩이 효과’라는 말로 정욱식 대표는 표현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올해 초 국제평화운동가들의 모임에서 “세계 평화는 강정에서”라고 발언했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활동하라’는 문장과 정확히 같은 취지다. ‘외부세력’은 지구적으로 퍼져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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