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사람들은 늘 외지인들과 싸워왔다. 싸워야 했다. 텃세를 부리려는 싸움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바다 건너 ‘중앙정부’는 제주도를 보통 사람들의 삶의 근거지가 아니라, 권력의 전략적 요충지로만 바라봤다. 고려 때도 탐라(제주도의 옛 이름)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원나라는 본국에서 직접 배편으로 ‘다루가치’(지방관)를 탐라에 파견하기도 했다. 14세기 원나라가 몰락할 때 원 황실은 망명지 가운데 하나로 탐라를 꼽았을 정도다. 그러므로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제주도민이 많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육지 사람들’만 모른다.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의 투쟁을 텃세로만 치부했다.
알뜨르 비행장을 미군기지로?
1988년에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졌다. 그해 제주에서 벌어진 ‘알뜨르 비행장’ 반대투쟁은 강정 해군기지 갈등과 놀랍게 닮았다. 서귀포시 대정읍 바닷가에 알뜨르 평야가 있다. 일제시대 이곳에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이 건설됐다. 알뜨르 비행장이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1926년 계획돼 1930년대 중반 20만 평 규모로 건설됐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0만 평으로 확장됐다. 사세보의 해군항공대 2500여 명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했다. 가미카제호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 개의 격납고가 아직까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은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비행장을 되살리려 했다. 알뜨르 비행장 터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국방부는 1987년에 이미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을 마치고도 제주도에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은 1988년 보도로 겨우 알려졌다. 공군기지 조감도에 따르면 길이가 3.5km인 활주로가 2개 건설될 예정이었다. 전략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규모였다. 1988년 당시 미국의 최신예 B1 전략폭격기는 2km 길이의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했다. 당시 미국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제4조에 따라 언제든지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미군을 배치할 수 있었고, 필요할 때마다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주민들이 알뜨르 비행장을 미국의 기지로 여긴 이유다.
섬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1988년 9월26일 오전 11시30분 대정읍 대정리 대정국민학교 교정에서 근처 주민과 학생 등 1천여 명이 ‘모슬포 군비행장 설치 결사반대 결의대회’를 열고 군사시설 설치 계획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학생·시민단체·도민들이 모두 모여 싸웠다. 1989년 3월 국방부는 알뜨르 비행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2006년에도 비행장 건설 시도
공군은 2006년에도 알뜨르 비행장을 되살리려 했다. 당시 제주 화순항에 해군기지 건설이 논의되고 있었다. 참여정부의 해군과 공군이 제주도를 전략기지로 삼으려 했다. 시민단체·국회의원·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공군기지 건설은 다시 철회됐다. 그러나 재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섬사람들은 텃세를 부리려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싸워야 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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