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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끝났다.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 올레 7코스길이 나 있다. 3월7일 아침부터 강정마을 도로가 막혔다. 시외버스는 서귀포월드컵경기장으로 우회했다. 그런데도 올레꾼들이 왔다. 날이 좋았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14.6℃였다. “빨리 걸어! 데모꾼으로 오해해.” 베이지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선글라스를 낀 얼굴을 돌려 일행을 재촉했다. 예닐곱 명이 연신 강정천 다리 위 전경과 주민들을 쳐다본다. 올레 7코스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입소문을 탔다. 기분 좋은 방음실 같은 오솔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구럼비 바위가 눈앞에 있다. 왼쪽 범섬 근처에 해무가 끼면 햇빛이 흐릿하게 파도 위에서 번진다. 그 올레길은 지금 없다. ‘강정천~구럼비 바위~강정포구’로 이어지는 약 2km 바닷가 일대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9월 펜스 설치로 구럼비 올레길은 끊겼다. 차도로 걸어야 한다. 3월7일 오전 11시께 강정천 앞을 지나던 올레꾼들처럼. “경찰이 올레길 막는다고 트위터에 좀 올려주세요!” 옆에서 시위하던 주민 한 명이 올레꾼들에게 외쳤다.
제주지사 요청도 묵살한 “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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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경찰서는 3월6일 오후 5시께 해군기지 시공업체인 대림산업과 삼성물산의 협력업체들에 구럼비 바위 폭파를 위한 화약류 사용 허가를 내줬다. 두 시공사는 한때 절대보전지역이던 용암 단괴를 파괴할 폭약 560kg과 뇌관 112개를 바닷가 공사장으로 합법적으로 나를 수 있게 됐다. 이날 결정은 정치적 뇌관이 됐다. 우근민 제주지사와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 등은 하루 전인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사 보류 요청을 했다. 15만t급 크루즈가 들어올 수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제주도당도 재검증을 요구했다. 인구 53만 명을 대표하는 도백의 공식 요청을 정부가 거부하는 데 하루로 충분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3월6일 오전 공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우근민 지사는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3월7일 공사 중지 명령도 내렸다.
그러므로 3월7일 오전 11시20분께 “쿵!” 하고 울린 발파음은 공사장 안팎의 저항과 반대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화약류운반신고필증’과 달리 화약은 육로가 아닌 배로 날라졌다. 공사장 앞뒤에서 주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주민과 활동가들은 3월6일 밤부터 움직였다. 이강서 천주교 서울교구 신부 등 성직자 10명과 활동가 10명은 3월7일 새벽 해군이 쳐놓은 철조망과 펜스를 넘어 구럼비 바위로 들어갔다. 영국의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 등 활동가 6명은 다이브수트(잠수복)를 입고 카약으로 구럼비 바위에 올랐다. 신부 6명은 오전에 펜스 밖으로 나갔지만 앤지 젤터 등 활동가 7명은 발파를 막겠다며 바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3월7일 낮 12시께 강정포구 위에서 바다 건너 공사장을 지켜보던 기자들 시야에 분홍색 2인용 카약이 잡혔다. 구럼비 바위 위에서 깃발을 흔들던 활동가 7명 쪽으로 2인용 카약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위 근처에서 고속 기동한 해경 순찰선이 카약 앞에서 방향을 트는 순간 파도가 만들어졌고 카약을 때렸다. 카약은 뒤집어졌다. 어깨까지 오는 긴 레게머리를 한 활동가 뱅자맹 모네(32)와 진보신당 당원 진명원(19·가명)씨는 해경 특공대에 잡혀 강정포구에 올랐다. 잠수복도 갖춰입지 못한 진씨는 담배를 쥔 왼손을 계속 떨었다. “우리는 인도적 차원에서 (7명에게) 물과 식량을 전달할 것이라고 분명히 이유를 밝혔는데 보트 2대가 파도로 밀쳐 전복됐습니다.” 자신을 ‘26살의 강정지킴이’로 밝힌 김동수(가명)씨도 연신 물에 들어갔다. 여성 활동가 2명을 태운 카약도 강정포구로 끌려왔다. 아직 쌀쌀한 3월 중순의 바다로 젊은 해경도 카약을 붙잡으려고 연신 뛰어 들어갔다. 저 멀리 강정포구 오른쪽에서 다시 식량과 물을 실은 2인용 카약 2척이 구럼비 바위로 향하다 붙잡혔다.
강정에서 나란히 열린 찬반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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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53만㎡ 규모의 군항부두 1950m와 15만t 규모의 크루즈 선박 2척이 계류하는 민간 부두 1110m를 만들 계획이다. 부두에 필요한 땅 20만㎡는 바다를 매립해 만든다. 해군은 3m 높이의 담벽으로 48만4천㎡(매립 예정지 20만㎡ 포함)의 공사터를 에워쌌다. 3월7일 해군은 구럼비 바위 서쪽 200m 지점을 시작으로 6차례에 걸쳐 발파 작업을 벌였다. 이날 발파를 한 지점은 대림산업이 맡은 2공구 부분으로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구조물) 조성터다. 바다에서 항의가 벌어지는 사이, 공사장 정문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낮 12시30분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 사업단 지휘부에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 사이에도 바깥에선 계속 싸움이 벌어졌다. 3월7일 아침 8시부터 일몰까지 주민과 활동가 여러 명이 다치고 연행됐다. 이날 오후와 저녁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제주 지역 강창일·김재윤 의원과 천정배 의원, 최재천 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여럿이 방문해 발파 중단을 요구했다. 한명숙 대표의 발언 때 몇몇이 야유를 보냈다. 한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 강정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국회에서 답했다.
국방부의 바람과 달리, 발파는 정치적 논란의 뇌관이 됐다. 해군기지 건설 찬반 집회가 3월8일 강정에서 열렸다. 이날도 낮 12시30분께부터 10분 간격으로 모두 4회의 발파가 이뤄졌다. 발파가 끝날 때쯤 강정천 체육공원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촉구 전국대회’가 열렸다. 제주기독교교단협의회, 애국시민단체총연합회 등 극우보수단체 회원들이 군복을 입고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다. 국가안보가 중요하다고 이들은 외쳤다. 1천 명 이상이 참가했다. 서경석 조선족교회 목사가 집회를 추동했다. 300~400명이 서울에서 왔고, 나머지는 제주도민이었다.
백발의 영국 여성, 칠순의 한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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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살의 제주 노인이 태극기를 흔들던 3월8일, 밤섬 옆에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우뚝 섰다. 이날 새벽 5시께 대림산업은 화순항에서 바지선을 이용해 케이슨 1기를 구럼비 바위 해안에서 100여m 떨어진 바다 위로 옮겨와, 오후 5시께 투하 작업을 끝냈다. 케이슨은 방파제 축조용 구조물로 길이 38m, 너비 25m ,높이 20.5m의 규모다. 무게 8800여t에 이른다. 케이슨 투하는 본격적인 바다 매립 공사의 시작이다.
제주도는 늘 전략의 요충지였다. 원나라는 수시로 탐라로 배를 보냈다. 원나라가 멸망할 때 왕족들은 탐라로 망명할 계획도 세웠다. 섬사람들은 전략의 요충지가 아니라 삶의 근거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싸워야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가 중산간 ‘알뜨르’에 공군 비행장을 건설하려했다. 미국의 전략기지로 사용되리라는 우려가 많았다. 제주도민 모두 싸웠다. 기지 건설을 막았다. 이번엔 해군기지다. 싸움은 더 지난하다. 제주도백의 항의는 무시됐다. 3월9일 새벽에도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마을 방송이다. 농사를 짓고 노래방을 좋아했으며 2006년 김태환 전 도지사 선거운동을 벌였던 사내는 지금 투사가 됐다. 해군은 제주도백이나 강동균 마을 회장의 반대를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신감이 넘친다.
이런 자신감은 지금 강정에서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3월9일 낮 12시께 강용석 의원이 약 2~3분간 기지건설 찬성 피켓을 들다 엉겁결에 사라진 행위도, 파국을 지켜보는 주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지 못했다. 오전 9시50분께 강정포구에서 약 500m 떨어진 펜스에 사람들이 모였다. 활동가 10여 명은 절단기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로 펜스를 부쉈다. 얇은 펜스에 곧 서너 개의 구멍이 뚫렸다. 대림산업 직원 몇몇이 구멍 앞을 막고 활동가들을 발로 찼다. 활동가들은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영국에서 온 백발의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반전반핵운동가 앤지 젤터는 1980년대 ‘스노볼 캠페인’으로 유명해졌다. 영국 내 미군기지 펜스를 자르고 들어가 평화를 외쳤다. 1999년엔 핵잠수함 기지에 잠입해 핵무기 반대 선전활동을 벌이다 체포됐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엔 한국 군사기지 예정지 펜스다. 1951년생의 이 영국 여성은 이날 문규현 신부와 함께 펜스 구멍으로 들어가 구럼비 바위를 향해 흙밭을 내달렸다. 전경과 기자도 낮 최고기온 12.9℃의 햇빛을 받으며 흙밭을 달렸다.
끊긴 길 위에서 싸움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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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4분 진압이 마무리됐다.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고, 활동가들은 펼침막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 했다. 어떤 여성 활동가는 울었고, 문규현 신부는 흙밭을 기다 4명의 전경에게 사지를 들려 연행됐다. 대림산업 직원들은 기자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20여 명이 연행돼 서귀포경찰서와 서부경찰서 등에서 조사받았다. 누가 펜스를 훼손했느냐에 조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재물손괴죄 양형은 벌금형부터 실형까지 다양하다. 전과 등 여러 사유가 종합적으로 검토된다. 뚫린 구멍으로 단순히 들어온 활동가는 ‘무단출입’ 경범죄의 적용만 받는다. 이들의 항의로 이날 발파는 오후로 연기됐다.
올레 7코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올레꾼들이 여전히 기웃거린다. 그들은 강정천 앞에서 길이 끝났음을 본다. 끊긴 길 위에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그들은 본다.
강정(제주)=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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