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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자체가 대단히 황당하다”

보석으로 풀려난 박정근씨 쪽 이광철 변호사의 심경… “MB 정권 같은 정부 또 들어서면 이런 유의 황당무계 필연”
등록 2012-03-02 15:34 수정 2020-05-03 04:26
이광철 변호사. <한겨레21> 정용일

이광철 변호사. <한겨레21> 정용일

“‘박씨 형제들’의 수난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광철(41·법률사무소 창신) 변호사는 박경신·박정수·박정근씨를 한데 묶어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리트머스가 되고 있다”고 했다. 박경신(41) 방송통신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 성기가 드러난 사진을 올렸다가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 유포 혐의로 최근 기소됐다. 대학 강사인 박정수(41)씨는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었다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됐다. 사진사 박정근(24)씨는 트위터를 통해 북한 체제를 풍자하는 농담을 여러 차례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월31일 구속 기소됐다(899호 레드 기획 ‘저 치밀한 농담과 장난을 처벌하라!’ 참조).

지난해 9월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박정근씨의 집을 압수수색하자 “북한을 가지고 장난도 못 치냐” “보안법으로 농담까지 처벌하냐”는 비난과 우려가 쏟아졌지만, 기어이 검찰은 박씨를 기소했고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황당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 변호사는 박씨의 변호를 맡고 있다. 박씨 사건을 심리하는 수원지법 형사3단독 신영희 판사는 지난 2월20일 공탁금 1천만원 납입을 조건으로 박씨의 보석을 결정했다. 황당 사건을 변호해야 하는 이 변호사의 ‘심경’을 들어봤다.

이번 사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박경신·박정수·박정근, 박씨 형제들의 수난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박정근씨 구속 자체가 대단히 황당하다. 약식기소도 아니고 검찰이 정식으로 기소한 박경신 교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벌금형으로 가지 않겠다는 것인데, 평소 표현의 자유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 비판적이던 박 교수에 대한 ‘응징’으로 읽힌다. 대한민국이 예전처럼 사람을 끌고 가서 고문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척도를 거기로 잡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박정근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변호사들만큼 전향적으로 봐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법원이 이런 사건에까지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적부심을 기각하는 상황은 매우 우려된다. 아무리 정치·군사적 대립을 하고 있더라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볼 때 법원이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말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가.

사법부의 이런 경직성은 어디서 온다고 보나.
보안법 위반 사건, 북한에 대한 인식의 획일성이 문제다. 판사들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빨갱이들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이다.

법원 판단이 제대로 나온다면 공안기관의 수사 행태에도 변화가 있을까.
일단 재판부의 보석 결정을 환영한다. 이적 목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본다. 하지만 무죄가 나오더라도 공안기관의 행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민주주의와의 불친화성을 기본적으로 내재한 보안법 위반 사건은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좌우된다. 이명박 정권 같은 정부가 또 들어선다면 이런 유의 황당무계한 사건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돼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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