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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검찰도 “디도스 배후 없다”

경찰과 달리 선관위 디도스 공격 실체 밝히나 주목 받은 검찰 수사도 용두사미로 끝나
등록 2012-01-12 12:10 수정 2020-05-03 04:26

경찰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10월 서울시장 선거날 아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누리집이 공격을 받았다. 공격을 감행한 의혹을 받은 자들 사이에서 돈거래는 없었다. (언론의 폭로가 나오자) 아니, 돈거래는 있었다. 국회의장 전 비서와 국회의원 비서, 그리고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인터넷 업체 직원들 사이에 1억원의 돈이 오갔다. 그렇지만 대가성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어, 잘 모르겠다. 디도스 공격 전날 저녁 자리에서 청와대 행정관은 동참한 사실이 없었다. (언론의 폭로가 나오자) 아니, 그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디도스 공격 사이에 관련은 없었다. 청와대 행정관의 인권을 고려해 그의 행적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수사 과정에서 일체의 외압은 없었다. (언론의 폭로가 나오자) 아니,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경찰청장이 수사 결과 발표를 전후해 전화 통화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외압은 아니었다. 집권당 국회의원의 20대 운전사가 선거 전날 밤에 혼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었다. 디도스 공격 과정에서 여당 국회의원 등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전혀 관계된 바가 없었다.”

몸통에 접근하나 싶었지만
경찰의 설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수사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경찰청장도 믿지 않았다. 청장이 나서서 수사 실무진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수사 결과를 경찰은 내놓은 셈이었다. 망신이었다.
검찰이 경찰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검찰은 마침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경찰과 날을 세우던 참이었다. 검찰은 이참에 경찰과 차원이 다른 수사 능력을 보여줄 기세였다. 검찰도 시퍼런 칼을 빼들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봉석) 검사 4명 전원을 투입하고, 공안부·특수부에서 검사 2명, 대검찰청 사이버범죄수사단 인력 등을 모아 대규모 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의 수사팀은 경찰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 보였다. 먼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검찰로 불려갔다. 최 의원의 사무실에도 검찰이 들이닥쳤다. 최 의원의 주변에서 변죽만 울리던 경찰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였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검찰의 수사 상황도 심상치 않았다. 국회의장 전 비서관이 건네준 1천만원이 디도스 공격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는 것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따라서 국회의장 전 비서관이 연루됐다는 정황도 나왔다. 몸통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리고 지난 1월6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왔다. 검찰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선관위 누리집 공격은 국회의장의 30살 전 비서관과 국회의원의 20대 비서관 단 2명이 모의한 ‘치기 어린 범행’이었다. 공적을 세우려는 무모한 의도가 범행 동기였다. 배후는 없었다.”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디도스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날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가 이들을 만족시켰을 것 같지는 않다.            <한겨레> 류우종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디도스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날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가 이들을 만족시켰을 것 같지는 않다.            <한겨레> 류우종

경찰청장의 예언 적중해

민주통합당은 같은 날 논평을 내어 “몸통은커녕 꼬리도 제대로 못 찾아낸 빵점짜리 수사”라며 “검경이 도토리 키재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고 비판했다. 다른 ‘도토리’는 어쩌면 검찰의 ‘키높이’를 이미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앞서 지난 1월4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예언처럼 이렇게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도 새로운 게 밝혀진 게 없지 않느냐?”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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