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박승화 기자
309일이다. 오를 즈음 결혼한 지인은 애를 낳았고, 당시 100일 된 아이는 내려와 만나니 말을 배우기 시작해 “진숙이”라고 부른다. 내려온 지 한 달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여전히 아프다.
“땅멀미라고 아세요?”
땅에 내려온 뒤 얼마 동안 걷다 보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크레인은 24시간 움직인다. 올라간 뒤 며칠 동안 그 움직임에 어지러워 토했다. 빙빙 도는 크레인에 적응하기까지 달포가 걸렸다. 내려오고 나서는 움직이지 않는 땅에 몸이 적응되지 않아 토한다. 도리어 움직이지 않아 어지럽다. 운신도 편치 않다. 오른 다리를 전다. 혈당 수치도 심상치 않다. 온전히 몸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답하지 못한다. 가장 힘든 건 35m에 적응된 눈이 땅의 시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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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크게 보여요.”
크레인 위에서 본 사람들은 개미만 했다. 꼬물거리는 사람들을 보다가, 트위터로만 대화를 하다가 내려와서 보니 인간이라는 물체가 너무 크게 보인다. 시각의 차이는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땅멀미를 곱절로 겪게 한다.
그는 불편한 다리로, 푸석한 얼굴로, 계단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하지만 여전히 빛나는 미소로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해줬다. 우리는 309일, 85호 크레인 농성을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고통을 온전히 전달하지 않는다. 외면한다. 여전히 우리는 그에게 바라는 게 너무도 많은 것이다. 강연, 인터뷰, 사진 촬영…. 크레인에 오르기 전에 한 약속이 아니었다면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몸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에서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아, 그를 좀 쉬게 하자. 309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의 시선이 하늘의 시선에서 땅의 시선으로 돌아올 그날까지, 사람을 사람만 하게 쳐다볼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차분하게 기다리자. 그래서 그는 올해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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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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