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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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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벗 원순, 아름다운 정치를 꿈꾸는 자

김수진이 말하는 박원순
등록 2011-12-28 15:49 수정 2020-05-03 04:26

2011년 8월21일 오전 10시10분께 나는 평소 자주 찾는 체육관 트레드밀 위를 빠른 속도로 걸으며 눈앞의 모니터 속에 꿇어 엎드린 오세훈 서울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8월24일로 예정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연계하겠다는 발언을 막 끝낸 참이었다. 10월 보궐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가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나는 직감했다. 약 20분 뒤 나는 트레드밀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같은 시각 백두대간 어느 지점에서 나보다 훨씬 힘겨운 발길을 내딛고 있을 벗 박원순에게 문자를 날렸다. “이번에는 꼭 나서야 할 듯하네.”

“빗소리마저 민초들의 아우성 같다”

무상급식 문제로 주민투표를 강행하고 또 거기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것은 시정과 시민의 삶을 정쟁과 정략의 수단으로 삼은 오세훈의 폭거였다. 과연 민주당이 선거를 통해 이를 응징할 수 있을까. 손학규 대표 취임 뒤 1년 가까이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을 헤매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울시와 시민의 삶을 정쟁과 정략으로부터 되살릴 수 있는 인물은 현 정치권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동안 정치에 거리를 두어온 인물이 나설 때라고 원순을 설득할 마음을 먹었다.

6일 낮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이소선씨의 빈소에 조문을 마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6일 낮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이소선씨의 빈소에 조문을 마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8월24일 주민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26일 오세훈 시장은 시장직을 사퇴했다. 다음날 나는 벗을 찾아 백두대간으로 떠났다. 그날 야영 예정 장소였던 ‘이기령’(耳基嶺)을 향해 너무 늦게 산길을 오르는 바람에 중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다.

강원도 동해시 어느 여관에서 잠을 청하는데 많은 기억들이 스쳐갔다. 1994년 초였나. 원순이 시민운동인가 뭔가를 시작하겠다며 서울 용산역 앞에 사무실을 얻었으니 한번 놀러오라고 해서 찾아갔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허름하고 썰렁한 사무실에 들어가니 원순이 낡아빠진 책상에 앉아 나를 반겼다.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의 원순의 변신은 내 기억에 그렇게 남아 있다.

6년 뒤 나 또한 그가 만든 참여연대의 부름을 받았고 또 그 뒤 6년 동안 의정감시센터 소장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내 친구는 나를 끌어다놓고 2년 뒤 무슨 ‘아름다운’ 일을 시작하겠다며 참여연대를 떠났다.

박원순 서울시장 범야권 단일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시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던 중 박후보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찾아왔다는 한 시민과 청년층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 범야권 단일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시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던 중 박후보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찾아왔다는 한 시민과 청년층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4년 1월2일 나는 박원순과 함께 광주문화방송 신년 대담 프로에 출연했다. 그날은 광주에 아름다운가게 1호점이 문을 여는 날이었고 나도 원순을 따라가 오픈 행사를 참관했다. 광주의 시민운동가, 자원봉사자, 언론인 등이 구름처럼 모여 치르는 행사를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개정된 정당법에 의해 정당들의 지구당은 모두 없어졌는데 저 친구는 전국에 걸쳐 수백 개의 아름다운가게를 만들고 있고 매번 저런 행사를 하고 있구나. 저게 아름다운 사업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정치인가?’

8월28일 오후 나는 마침내 ‘백복령’(白茯嶺)에서 수염투성이의 벗과 조우했다. 예상대로 그를 설득하는 데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동안 정치 참여를 줄곧 거부하다 이번에 나서는 명분으로 ‘정쟁과 정략으로 오염된 서울시와 시정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고 얘기하라는 나의 제언에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산행 중 겪고 느낀 소회를 풀어놓았다. 그는 특히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 가파른 속리산 길을 힘겹게 걸으며 느낀 것을 강조했다. 퍼붓는 비가 황폐해진 자연의 눈물로 느껴졌고, 빗소리는 민초들의 고통스런 아우성처럼 들려오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원순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섬광처럼 했다고 토로했다. 나는 더 이상의 설득이 필요치 않음을 알았다. 그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을 위한 시장’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 중 자신을 찾아온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를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전인 10월6일 이소선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10월19일 서울 공덕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시민과 함께 사진을 찍는 박 시장, 12월18일 오후 무의미한 도로 포장 공사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서울시장 집무실에 보관 중인 보도블록을 들어보이는 박 시장(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을 위한 시장’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 중 자신을 찾아온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를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전인 10월6일 이소선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10월19일 서울 공덕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시민과 함께 사진을 찍는 박 시장, 12월18일 오후 무의미한 도로 포장 공사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서울시장 집무실에 보관 중인 보도블록을 들어보이는 박 시장(위부터).

는 새로운 길을 갈 마음의 결심을 이미 해두었던 것이다.

9월3일 나는 오대산 자락 진고개에 세 번째로 원순을 만나러 갔다. 그는 이미 출마 의사를 서울의 몇몇 후배들에게 알리고 준비를 지시해놓았다. 또 안철수 교수가 며칠 전 출마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내가 찾아간 그날 원순은 안 교수와 전자우편 교신을 한 상태였다.

나는 여론조사의 압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안 교수가 양보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안 교수는 맑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냉철하게 사물과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그동안 박원순과 깊은 교류를 해왔다면 그는 누구보다 박원순의 성품과 능력을 잘 알 것이며 자신보다 서울시장직을 훌륭히 수행해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냉철히 판단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양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리라는 기대도 들었다. 다행히 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때 이후 50일가량 박원순은 안철수 교수의 아름다운 양보와 협력을 이끌어내고, 시민 후보로서 조직력을 앞세운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고, 모든 개혁진보 세력의 단합된 지지와 적극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의 악의에 찬 흠집 내기와 네거티브 공세를 꿋꿋이 견뎌내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해내는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했다.

감동을 주는 공직자, 시민의 열광

이제 박원순은 어떤 기성 정치인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정치 스타일을 갖춘 탁월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를 섭렵하며 축적한 그만의 정책 역량은 현재 서울 시정에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백복령에서 담소할 때 박근혜가 화제에 올랐었다. 원순은 그때 단호하게 얘기했다.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바람직한 공직 후보자는 그가 살아온 행보와 자취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시민들이 안철수와 박원순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이 말에 명쾌하게 담겨 있다.

김수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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