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부세력’이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파업에서 두리반 농성, 김진숙의 한진중공업을 거쳐 제주 강정마을, 쌍용차 평택 공장 앞까지. 첨예한 갈등의 현장엔 어김없이 나타나 정치적 풍파를 일으킨 이들을 정부와 보수언론은 외부세력이란 익숙한 언어로 호명했다.
보수의 언어장 안에서 외부세력은 단순히 법적인 ‘제3자’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갈등을 확산시키려는 불순한 목적을 갖고 외부로부터 틈입해온 집단이나 세력’을 일컫는 정치언어다. 이런 외부세력은 과거 사법적 단죄 대상이었다.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그랬다.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강압적 법 조항은 사라졌지만, 갈등의 장에서 외부인을 불온시하는 습속과 관행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서울 홍익대 앞에서, 부산 영도에서, 제주 강정에서 ‘당사자 아닌 자들’은 어김없이 배척과 규탄의 대상이었다. “평화 해결 가로막는 외부세력 물러가라!”
흥미로운 건 공권력과 보수 진영의 비난 앞에서 이 외부인들이 드러낸 반응이다. 그들은 기꺼이 외부세력이란 악의적 호칭을 받아들였다(‘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을 보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의 행동에 담긴 ‘의도의 불온함’마저 쿨하게 인정했다. “약자들 편에 서는 게 편파적이고 불온한 것이라면, 그 비난 감수하겠다.”
그 어떤 절박감에 이들은 외부세력을 자임하게 됐을까. 중요한 건 이들에게 ‘외부’란 단순히 ‘비당사자’를 가리키는 중립적 지시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채 형상과 목소리를 빼앗긴 ‘난민들’(청소부, 철거민, 해고자 등)을 일컫는 실존의 언어였다. 이런 의미에서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를 지지 방문하고, 철거 위기의 건물 안에서 음악 공연을 하고, 단체로 버스에 올라 영도의 85호 크레인 앞으로 몰려가는 것은 외부와 손잡으려고 내부의 빗장을 열고 나가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결단 행위였다. 이들에 의해 외부세력이란 언어는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새로운 지평의 정치성을 부여받게 됐다. 이렇듯 정치의 전복은 언어의 전복을 수반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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