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들어 해직된 기자는 8명이다. 정직·감봉 등 다른 징계까지 포함하면 18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친MB 인사들에 의한 것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노조위원장을 자르고, 윤전기를 멈추고, 신문 발행을 하루 중단한 사태는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 닿아 있다.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 또는 정수재단 가운데 양자택일하라”는 이호진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의 말은 이번 사태의 시작점이자 해결점이기도 하다.
지난 11월30일 경영진은 윤전기를 세웠다. 사 쪽이 신문 발행을 거부한 것은 65년 역사상 처음이다. 이날 발행되지 못한 신문 1면과 2면에는 “유력 대권 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 무대에 나선 만큼 신문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박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재단과의 완전한 분리가 필수적”이라며 정수재단(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과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를 요구하다가 해고된 이호진 지부장과 대기발령된 이정호 편집국장에 대한 징계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았다.
“누구 때문에 중단됐나 보면 안다”
는 이에 앞서 11월18일치에도 “박 전 대표가 말로만 정수재단을 사회에 환원했다면서 자신을 보좌하던 비서관을 이사장으로 앉히고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며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촉구한 노조의 기자회견 기사를 실었다. 그날도 경영진이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라고 요구해 제작이 2시간여 지연됐다.
이번 사태는 의 비정상적 소유구조라는 오랜 논란에서 비롯된다. 는 1988년 편집권 독립을 이뤄냈지만,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정수재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장도 재단이 임명한다.
정수재단은 1961년 부산 지역 기업인 김지태씨가 소유한 ‘부일장학회’ 재산을 5·16 쿠데타 정권이 ‘헌납’받아 설립됐다. ‘5·16장학회’라고 했다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과 부인 육영수씨의 ‘수’를 따 정수장학회라고 이름 지었다. 박근혜 의원은 1996~2005년 이사장을 지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정수재단 이사장직을 겸한 2004년 총선 때는 이런 소유구조의 모순이 극에 달했다. 편파보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당시 결의문에는 “낯을 들고 다니기 부끄러울 정도”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부일장학회 헌납의 강제 여부 조사를 시작하자, 박 의원은 이에 반발해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박 의원은 이후 정수재단과의 관계를 일절 부인했다.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고,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한다”(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박 의원의 뒤를 이은 최필립(83) 이사장이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에서 ‘큰 영애(큰 딸) 보좌’를 맡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수재단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유로 사장이 신문 발행을 중단시켰다는 것은 의 실질적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 쪽은 펄쩍 뛴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 중진의원은 “재단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단 운영은) 인적 구성으로 하는 거다. 이사장직을 물러나는 순간 결별된 것”이라고 했다. 최필립 이사장도 박 의원이 추천한 게 아니라 이사들이 알아서 뽑았다는 주장이다. 최필립 이사장이 지난 11월15일 이호진 지부장과의 면담에서 했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내가 이사장을 맡은 이후 박근혜 전 대표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노사 갈등 때문에 직장폐쇄가 되거나 가 망하는 일이 발생하면, 내가 돌아가신 박 전 대통령께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고 이 지부장은 전했다.
노사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런 해묵은 논란을 끝내려고 공동으로 경영진 선임제도를 마련해 정수재단과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사 쪽은 “재단이 반대한다”며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노조는 지난 11월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론화를 시도했고, 편집국은 이를 기사화했다. 언론으로서 공정성 확립이 절실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시 불거진 재단 강탈 논란
노조와 편집국 기자들은 ‘신문 발행 중단’과 ‘중징계’라는 초강수로 대응한 회사에 맞서 지난 11월30일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노조 공보위 간사를 맡고 있는 이현우 기자는 “2004년 총선 이후 특별히 보도 내용과 관련해 문제가 크게 불거진 적은 없지만,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와 박근혜 전 대표를 연결시키고 있다. 재단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면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조는 ‘완전한 분리’를 위해 △정수재단 이름 변경 △이사장 등 이사진 전면 교체 △경영진 선임권 민주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 쪽은 “사장 임명은 본질적 경영권에 관한 문제로 노사 협의 사안이 아니며, 이에 대한 노조의 침해나 간섭은 불법”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박 의원의 처지에선 사태로 다시 등장한 ‘강탈 논란’이 더 부담스러울 듯하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부일장학회 헌납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으니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손해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7년 결정도 똑같았다. 김지태씨 유족은 김씨가 수갑을 찬 채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고 증언했다. 정수장학회가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만이 아니다. 박근혜 의원이 직접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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