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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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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영래’들의 아름다운 열병

사법연수원 41기 인권법학회원, 공익변호사 꿈꾸는 동기 위한 기금 모으기로… 안정적 인권 보호 활동 기반 마련 필요해
등록 2011-10-19 14:26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8월30일 공익법 운동을 고민하는 선후배 법조인들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사무실에 모였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제공

» 지난 8월30일 공익법 운동을 고민하는 선후배 법조인들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사무실에 모였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제공

1970년 노동자가 몸을 태웠다.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죽기 전에 노동자는 여러 번 말했다. 서울법대생은 그 말을 전해듣고 울었다. 법대생은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다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혐의로 투옥됐다. 1년6개월 감옥에 갇혔다. 6년간 수배됐다. 아주 늦게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가 된 법대생 조영래는 13년 전 전태일의 말을 잊지 않았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시민공익법률사무소’로 이름지었다. 가난하고 힘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공익 변론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숨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도 사무실에 들러 축하했다. 변호사는 공익활동에 몸을 혹사했다. 1990년 숨졌다.

전업 공익변호사를 위한 펀드

많은 사람이 ‘공익 변론’이라는 조영래 변호사의 열병을 같이 앓았다. 돈 잘 벌던 후배 변호사 박원순도 그중 한 명이었다. 조영래 열병은 잘 낫지 않았다. 박원순 변호사는 아름다운재단을 만들었다. 시민공익법률사무소가 만들어진 지 20년 뒤 조영래 변호사가 감옥에 있던 시절 태어난 1973년생 염형국 변호사가 아름다운재단으로 첫 출근을 했다. 이듬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첫 출발을 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숨진 지 21년이 지났고, 젊은 조영래 변호사에게 공익법 운동의 영감을 준 미국의 진보 정치인·변호사 랠프 네이더도 늙어 올해 77살이 되었지만, 앓는 사람은 계속 나온다. 배의철(34)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내년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한다. 2012년은 최초로 로스쿨 졸업생이 법조인이 되는 해다. 연수원·로스쿨 합쳐 2500여 명의 신규 법조인이 나온다. 언론이 종종 ‘무한경쟁 법률시장’이라고 묘사하거나 ‘법조의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대법원장을 가진 2012년의 법조인 사회가, 배씨가 들어가야 할 곳이다. 법원조직법상 사법연수원생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150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는다. 국민이 모든 법조인이 공익활동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길 기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수원생은 공무나 공익이 아니라 더 많이 승소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사익을 얻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변호사 시장에 뛰어든다. 100만원이 넘는 월급을 세금으로 받는 현실과 더 많은 수임료를 꿈꾸는 욕망 사이에서 어떤 자책도 느끼지 않는 적잖은 연수원생들에게는 공익법 운동을 꿈꾸는 것이 병이다.

배씨를 포함한 사법연수원 41기 인권법학회 35명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이들은 10월19일께 총회를 열 예정이다. 전업 공익변호사를 하려는 동기를 위해 다른 동기들이 매월 조금씩 활동비를 갹출해 기금을 마련하자는 게 중요 안건이다. 계획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권·노동법학회→사법연수원 내 다른 학회→사법연수원 자치회 전체’ 순서로 기금 마련 대상을 넓히고자 한다. 먼저 인권·노동법학회에서 기금 마련을 결정한 뒤 다른 학회와 연수원 자치회 전체로 제안 대상을 넓혀갈 계획이다. 일종의 공익 펀드다. 수탁자가 배당받는 것은 사회 진보의 작은 한 걸음이다.

“사법연수원 37기(2008년 수료) 선배들의 전례가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저희는 일회성(기금)이 아니고 동기들에게 지속적으로 1~2년 동안 매월 지원금을 주자는 것이죠.” 배씨는 장애인을 접하고 인권 문제에 눈떴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특례입학을 통해 대학에 들어온 장애인은 학생회관 식당조차 갈 수 없었다. 경사로도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장애 학생들은 항의했다. 항의시위는 97학번 새내기인 배씨의 가슴을 쳤다. 사법연수원 인권·노동법 학회원들은 저마다 비슷한 가슴의 못을 하나씩 갖고 있다. 이들은 연수생 모두 이런 못을 하나씩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제2의 ‘공감’을 꿈꾸는 ‘어린 조영래’들

펀드라는 지원 방식 뒤에는 선배들과 다른 고민이 있다. 고 조영래 변호사가 감옥에서 투쟁했다면, ‘어린 조영래’들은 일상의 감옥에서 싸워야 했다. 법조인으로서의 전망에 대한 고민, 생활인으로서의 불안, 외로움 등이 일상의 감옥의 간수들이다. 배의철씨는 지난 8월30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열린 ‘공익변호사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제문을 통해 고민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공익을 위한 삶=동료(또는 가족)의 삶의 파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예비 법률가들은 최소한의 안정적 재원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고뇌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고시 공부 과정, 연수원 생활, 로스쿨 수학 중에 쌓인 빚의 문제 등. …변호사 2500여 명 배출의 ‘연수원+로스쿨’ 시대, 2011년 공익전담변호사 채용 계획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어둡고 치열한 현실 속에서 공익·인권을 자신의 전망으로 꿈꾸는 이들의 존재와 관련해, 이를 개인이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창립한 지 8년 되었지만 인원수가 정체돼 있는 점, 비슷한 공익변호사단체가 추가로 생기지 않은 점, 대형 로펌이 공익활동을 하지만 공익 전담 변호사는 많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공익변호사 라운드테이블’은 공익법 운동을 지지하는 선후배 법조인들이 만나 고민과 전망을 나누는 자리로 공감이 마련했다. 8월30일 테이블에는 김종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인권이사, 로스쿨협의회 전해정 연구팀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정연순 사무총장, 연세대 로스쿨 손창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김재원 교수, 공감 염형국 변호사 등 40여 명이 사무실을 빼곡하게 채웠다.

로스쿨생들의 고민도 이와 닿아 있다.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연합 상임간사인 조영관 인하대 로스쿨생은 과의 통화에서 “로스쿨 학비가 비싸고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받아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국 25개 로스쿨 가운데 23개 로스쿨에 인권법학회가 있다. 학회 소속 로스쿨생들은 방학 때 캠프를 열어 고민을 나눴다. 학교별로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노동법·노동인권 특강도 벌였다. 문제는 전업 공익변호사로서의 전망이다. 이들도 조심스럽게 대안으로 공익 펀드를 고민한다. “몇몇 로스쿨에서 제2의 공감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스쿨생도 중요하지만 (로스쿨) 학교나 민변 차원에서 (공익) 펀드를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라고 조씨는 말했다.

장기적 공익활동을 위한 계획 세워야

선배 법조인들의 고민도 나왔다. 정연순 민변 사무총장은 스스로의 계획을 강조했다. “공익변호사로 일정 급여를 받고 일을 시작한 뒤 5년 후에도 계속 그 (낮은) 급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5년 후에 성장한 나는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겠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익활동 경력을 쌓은 변호사들이 법무부, 검찰, 판사로 들어가거나 입법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당장 어떻게 먹고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이 밖에도 공익활동 활성화 방안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2012년 이후에도 공익법 운동이 지속될 것을 전제로 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공익의 꿈은 오래 지속된다는 희망이 그 전제 뒤에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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