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상지대의 옛 이사장인 김문기(맨 오른쪽) 전 민주자유당(한나라당 전신) 의원 등 비리로 쫓겨났던 옛 이사들이 대법원 판결 뒤 만세를 부르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이 관련된 사학비리 싸움은 18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18년 된 이야기가 있다. 1993년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상지대 이사장이던 김문기씨가 구속됐다. 1994년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임시이사 체제가 됐다. 교수·교직원·학생, 지역 시민단체, 동문들의 노력으로 2004년부터 정식 이사를 선임해 완전한 정상화를 이뤘다. 김씨는 이를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며 김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2003년 정이사로 뽑힌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9명이 이사직을 잃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오세빈 변호사)는 2010년 김문기씨의 측근 여럿을 정이사로 임명했다. 8명의 이사 가운데 김문기씨 쪽이 추천한 인사가 4명, 학교 구성원 추천 2명, 교과부 추천 2명이었다. 이종서 전 교과부 차관은 임시이사로 선임됐다.
교과부의 ‘고육지책’
임기가 만료되는 이종서 전 차관을 누가 대체할 것인지가 최근 쟁점이었다. 김문기(79)씨는 자신이 정이사가 되길 바랐다. 현재 상지대 교수·학생 대다수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펜과 카메라 기자가 8월11일 교과부 16층 대회의실 앞에 모였다. 저녁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사분위는 이날 저녁 이종서 전 차관의 임기를 1년 연장하기로 의결했다. 교과부는 비공개 회의를 이유로 결정 취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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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대화 교수)는 이날 결정을 교과부의 ‘고육지책’으로 해석했다. 사분위가 지난해 옛 재단 인사들을 이사에 앉히는 결정을 내린 것부터 잘못인데 김문기씨를 정이사에 앉히면 상지대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비대위는 해석했다. 정대화 교수는 “이날 결정은 오도가도 못하는 교과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분쟁만 1년 연장된 셈이다. 이 가운데 감사원이 등록금 문제 조사 등을 이유로 전국 66개 대학에 대해 8월 초부터 감사에 들어갔다. 상지대도 포함돼 있다. 김문기씨의 복귀를 반대하는 교수·학생들은 감사의 시점과 계기에 의혹을 던진다. 김문기씨의 복귀에 명분을 더해주는 ‘표적 감사’라는 취지다.
분쟁은 1년 길어졌다. 김문기씨의 복귀를 두고 대립하는 집단의 정서와 논리는 접점이 없다. 이강두 전 한나라당 의원은 과거 상지대 임시이사 체제에 대해 “건학 이념 실현을 목적으로 출연된 사학법인의 사유재산을 강제 탈취한 행위와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을 뒤바꾼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김문기씨의 복귀를 반대하는 쪽은 상지대가 옛 재단 인사들을 척결한 뒤 부패 사학의 대명사에서 시민대학의 성공 모델로 재탄생했다고 평가한다. 김문기씨는 상지대를 사유재산으로 본다. 반대하는 쪽은 개인이 재산을 출연한 이상 재산권을 갖는 건 학교법인이며 학교 재산은 사유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립대학 이사회는 돈과 사람을 결정하는 권력기관이다. 김문기씨 쪽 정이사는 다음과 같다. 김길남(43) 상지문화원 이사장은 김문기씨의 둘째아들이다. 형인 성남씨와 김문기씨는 최근에도 언론에 등장했다. 성남씨가 김문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강원상호저축은행 경비 3억여원을 개인적으로 부당하게 지출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의해 지난 3월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런 사실을 적발해 부당하게 지출된 3억여원을 회수했지만 행정처분이나 검찰 고발 등의 제재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성남씨는 부행장을 맡다가 이 문제가 불거진 뒤 물러났다.
김문기 아들, 동문, 지인…박윤환(57) 변호사는 공안검사 출신이다. 경북고, 영남대를 나왔다. 사법연수원 11기로 1984년 서울지검 동부지청(현 서울동부지검)에서 검사 일을 시작했다. 부산, 대구 등에서 두루 일했다. 1997년 대검 공안과장, 1999년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지냈다. 2006년 서울고검 송무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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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호 성신회계법인 이사는 김문기씨의 금전 자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신회계법인 홈페이지를 보면, 이씨는 건국대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감사를 지냈다. 경방, 동일방직, 삼성전자를 감사한 사실이 주요 실적으로 공개돼 있다. 이영수 전 건국대 홍보실장도 측근으로 분류된다.
18년 전 비리로 물러났던 김문기씨는 교육인, 정당인, 금융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상고와 건국대를 나왔다. 지금은 접속이 안 되는 ‘상지학원, 상지대학교 진실규명 및 설립자 학교 찾아주기 운동본부’ 홈페이지를 보면, 김문기씨는 주변의 요청으로 어려움에 빠진 지역 교육기관을 인수했고, 이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는 등 학교 창립과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김씨는 1954년 파고다가구 공예점 창립회장이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 1970년 재경강원도민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사람을 많이 만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2년 청암학원 임시이사로 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 청암학원을 인수하고 학교 이름을 상지학원으로 바꿨다.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통일주체국민회의 초대, 2대 서울 종로구 대의원을 지냈다. 5공화국 때도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0년 민주정의당(민정당) 창당발기인이었고 1982년 서울올림픽추진위원회 종로구 위원장이었다. 이때쯤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 강원상호신용금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2년까지 회장을 지냈고 그 이후엔 강원상호저축은행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문기씨는 인맥이 넓다. 강릉김씨대종회 회장(1983년), 건국대 총동문회 회장(1991년), 한국라이온스연합회 회장(1983~8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1988년),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 강원도협의회 상임의장(1998년), 한국도덕운동협회 강원도 회장(1998년)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수상 경력으로 보면 그는 위대한 교육자다. 1981년 사학육성공로서훈 봉황장을 받았고, 1982년 국민훈장석류장을 받았다. 1990년 위대한 건국인 대상을, 2009년 봉황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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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씨는 1994년 대법원에서 부정입학 혐의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5월 중앙선관위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검찰 고발을 당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김문기’로 검색되는 사실상 최초의 기사는 ‘재단비리 항의 파면사유 안 된다-대법원 판결 상지대 교수 3명에 승소 확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당시 김문기 이사장에게 상지대 비리 척결을 요구하다 파면된 교수가 승소했다는 내용이다. 김문기씨가 구속된 소식을 전하는 기사는 1993년부터 검색된다. 이야기는 오래 지속된다. 보도는 18년째 이어진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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