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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 직원의 인권은 없다

노조간부 계약해지 반대해 1인시위 한 11명 징계 회부…사실상 반성문도 요구해 양심의 자유 침해
등록 2011-07-28 18:41 수정 2020-05-03 04:26
계약 해지된 국가인권위원회 강인영 조사관이 마지막 출근일인 지난 2월28일 인권위 들머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동료 직원들은 그에게 격려의 꽃을 전달했다. 한겨레 김진수

계약 해지된 국가인권위원회 강인영 조사관이 마지막 출근일인 지난 2월28일 인권위 들머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동료 직원들은 그에게 격려의 꽃을 전달했다. 한겨레 김진수

“어떤 피부색이든 어떤 인종이든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가 높고 낮음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권은 나와 이웃의 문제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말은 그럴듯하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얘기다. 요즘 케이블TV 뉴스채널 YTN을 틀면 현 위원장이 1분 남짓 동안 ‘인권’ 운운하는 장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과거 권고와 맞지 않아

인권위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인권위 직원들조차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지 오래다. 2009년 7월 임명 당시 ‘인권 비전문가’로 알려졌던 현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는 ‘인권 전문가’인 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해고·중징계·감사를 남발하고 있다. 이유는 참으로 반인권적이다. 인권위 10년을 함께한 ‘인권 전문가’로 노조 부지부장을 맡고 있던 강인영 조사관을 별다른 이유 없이 계약 해지한 데 이어, 이에 반발한 직원 11명이 릴레이 1인시위를 한 걸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인권위와 위원장은 이런 일도 한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할 내용이다.

현 위원장은 이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를 위반했다며 인권위 고등징계위원회에 중징계(3명)와 경징계(8명) 의결을 요구했다. 7월21일에 최종 결과가 나왔는데 당사자들에게는 25일 이후에나 결과를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위 회부 자체가 부당하다고 보는 당사자들은 징계 수위에 상관 없이 재심 요구를 하고, 이도 안 받아들여지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도 낼 계획이다.

인권위는 과거 1인시위를 방해한 공무원·경찰의 행위에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이들의 징계를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 등도 폭넓게 인정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권위의 이율배반을 두고 “앞으로 인권위 권고를 어느 국가기관이 따르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인권위의 ‘인권 자해’다.

이 과정에서 인권위가 이들 11명에게 공무원법 위반 사실 인정과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는 인권위 노조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상의 반성문에, 이른바 준법서약까지 요구한 것이니 인권의 바닥을 드러내 보인 셈이다. 중징계 의결 대상이었던 육성철 사무관은 강 조사관의 계약 해지에 반발해 이를 비판하는 언론 기고와 1인시위를 했다. 기자였던 육 사무관은 인권위가 태동하는 과정을 기자로서 지켜보다 직접 인권위로 뛰어들었다. 월급이 반토막 났지만 “인권을 밥벌이 이상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의 헌신성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과거 인권위 직원이 중징계를 받은 사안은 해외도박·금품수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상교 변호사는 “인권위가 해온 권고 등에 비춰봤을 때 이번 징계는 자가당착적인 행태다. 인권위를 넘어 공무원 조직 안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락한 아시아의 모범

‘1등 제품’이 갑자기 어디에도 내다팔지 못할 수준이 됐는데도 현 위원장을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2년이 넘도록 잠잠하다. 이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에는 행인지 불행인지 인권은 빠져 있음이다. 아시아의 모범이던 인권위는, 지금 아시아 지역 인권단체의 조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올해로 인권위가 만들어진 지 10년째다. 인권위도 무시하는 ‘인권’이 처량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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