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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주시냐 적극대응이냐

한국현대사학회 출범 바라보는 진보학계의 딜레마… 일단 지켜보자는 의견 속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 “적극 대처해야”
등록 2011-06-02 18:14 수정 2020-05-03 04:26
»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왼쪽부터).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김정효, 한겨레 류우종, 한겨레 이정아

»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왼쪽부터).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김정효, 한겨레 류우종, 한겨레 이정아

정색하고 반박하려니 판만 키워주는 것 같고, 내버려두자니 꺼림칙하다. 한국현대사학회 출범을 바라보는 진보학계의 딜레마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쪽이다. 섣불리 대응해 논란을 만드느니, 제풀에 지쳐 조용해지길 기다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적극 대처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보수세력으로부터 편향성 시비에 시달려온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이다. 보수신문을 등에 업은 조직적 공세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갈수록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 판단이다.

“차라리 교과서 만들어 겨뤄보자”

현대사학회를 순수한 연구 목적의 학술모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는 현대사 연구자와 교과서 집필자들의 인식이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예상하는 파장의 강도와 규모다. 김성보 편집주간(연세대 교수)은 보수학계 움직임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학술적 토론을 하기엔 현대사학회 참여 학자들의 연구성과가 빈약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2009년 현대사학회의 전신 격인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를 보면 오류를 지적하는 데 논문 한 편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고 꼬집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차라리 교과서를 만들어 실력을 겨뤄보자”고 말한다. 보수신문의 힘을 빌려 여론전을 펴지 말고, 학회원들이 직접 교과서를 펴낸 뒤 시장의 판단에 맡겨보자는 얘기다. 이런 느긋함 뒤에는 현대사학회 참여자들 가운데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가 드물다는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학회원들 가운데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는 경우는 이영훈 교수 정도인데, 그마저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신 분도 아니지 않느냐”며 “굳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모임의 외연을 좌파 연구자층까지 넓혔다는 학회 쪽 주장과 달리 진보 학자들의 참여가 부진한 것도 위기감을 경감시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실제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학회원 명단에서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연구자는 김명섭 연세대 교수 정도다. 이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사실상 외연 확대는 실패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공자라는 학문적 자신감에 매몰돼 안이하게 생각하고 대처할 경우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보수학자들이 뭉치고 보수언론이 이를 의제화하려고 필사적으로 시도하는데도 대응을 회피하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연구자로서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주 교수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37명과 함께 현대사학회 출범 나흘 전인 5월16일 ‘한국사 교육과정 논란과 역사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그는 “보수가 현대사 교육 문제로 집요한 공세를 펴는 것은 그것이 세 결집을 위한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라며 “진보학계와 시민사회가 논쟁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논쟁하더라도 학문 영역에서”

논쟁에 소극적인 현대사 연구자들도 이런 주 교수의 인식에는 공감한다. 그럼에도 정면 대응에 나서는 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김성보 교수는 “섣불리 대응했다가 이념 논쟁을 격화시키고, 결국 저들이 원하는 세 대결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상황을 지켜보며, 논쟁을 하더라도 학문 영역에 국한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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