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뭐해요? 밭이 이렇게 된 지 벌써 2년이나 됐는데 보상도 안 해주고,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나이지리아의 남부 델타 지역, 소수민족 오고니족이 살고 있는 오고니랜드를 찾았을 때, 지은이를 향해 어느 여인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며 화를 냈다. 그들의 발 아래 땅은 시커먼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작은 야구장만 한 넓은 밭에서는 풀 냄새 대신 기름 냄새가 났다.
아프리카 석유 개발의 최전선 나이지리아는 석유산업으로 국가재정을 지탱한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을 만지지 못한다. 석유는 송유관에서 줄줄 새어나와 주민들의 밭을 망친다. 오일머니는 정부가 독점 관리한다. 석유산업으로 오히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주민운동을 조직하고 투쟁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허공을 떠돌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합법적 권리 회복 운동이 정체되니 과격한 이들은 무장단체를 조직한다. 평화로웠던 마을은 점차로 싸우고 짓이기는 폭력의 세계로 접어든다.
‘음의 경제’를 통한 부의 재분배(현암사 펴냄)는 아프리카 폭력 르포다. 일본 기자인 지은이 시라토 게이지는 2004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특파원으로 일했다. 아프리카가 일본과 지리·심리적 거리가 멀뿐더러 정치·경제적 관계도 긴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은이는 사하라사막 이남 48개국을 혼자 담당해야 했다. 담당 권역은 넓었지만 마음먹자면 편할 수 있는 생활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낮은 관심만큼이나 기사는 통신사와 현지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내용들을 모아 정리하고 재작성해 보내줘도 충분했다. 게다가 회사는 요하네스버그 북부 샌튼의 고급 주택가에 미국 베버리힐스의 저택 같은 집을 얻어줬다. 지은이는 도쿄에서 집을 빌리는 비용과 비슷한 임대료만 내고 가정부와 정원사가 딸린 600평 남짓 되는 지국 겸 사택에 살았다.
듣기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생활이었지만 사실 매일이 위협 속에 놓여 있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남아공의 흉악범죄 발생률은 오히려 세계 최악이 되었다. 요하네스버그는 ‘세계 범죄의 수도’로 불렸다. 그가 머무르던 2006년 당시 집계된 살인사건 수는 1만9202건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살인사건 발생률(40.5건)을 일본과 비교하면 40배, 영국과 비교하면 28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론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할수록 고용이 창출되고 국민소득이 높아져 범죄 발생률이 감소하게 마련이지만 남아공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경제성장의 수혜는 사회의 한쪽으로만 몰렸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치안은 악화되었다. 지은이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무장조직이 결성되고 주민이 학살되는 폭력의 현장을 사회의 왜곡된 일면이 응축됐다가 가장 극적인 형태로 표출된 결과로 이해했다. 그가 아프리카 폭력의 배경에 주목한 이유다.
아프리카는 가난하지만 풍족한 자원을 가진 땅이다. 열강들은 아프리카에 흐르는 젖과 꿀에 주목하며 투자란 이름으로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안정된 정권보다 침략과 저항의 역사에 더 익숙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급작스런 부를 공평하게 나누는 법을 몰랐다.
지은이는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범죄라는 ‘음의 경제’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만연한다고 해석한다. 특히 1994년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된 남아공에서는 흑인 가운데서도 부유층과 중산층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줄지어 생겨났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인종에 따른 격차를 넘어 흑인 사이의 격차마저 만드는 모순을 불러왔다. 그가 취재 중 만난 남아공 ‘안전보장연구소’의 연구원 피터 가스트로가 그의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누구나 똑같이 가난한 사회에서는 범죄, 특히 조직범죄가 성립하지 않지요.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질 때 가난한 쪽은 범죄를 통해 부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특히 경제력이 있는 남아공은 세계적인 조직범죄의 중계 기지로도 이용할 만한 나라인 셈입니다.”
세계의 이분화가 심화된다면아프리카 대륙은 직선으로 반듯하게 분절돼 있다. 그곳에 사람들이 살며 오래도록 형성돼온 삶의 질서는 그 반듯한 직선에 끼워맞춰지느라 왜곡됐다. 당연히 그 땅을 채우고 있는 눈이 동그란 아이들의 마음은 반듯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섭다. 지금 이들에게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지리란 기대는 철저한 배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다시 아프리카에 새 바람이 불어온다. 지은이가 특파원으로 요하네스버그 주재 당시 담당했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다. 빈부 격차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며 피를 부르는 게 얼마나 무지한 일인지를 깨쳤다. 대신 거대 자본과 짬짜미한 정부의 부정부패 등에 항의하며 행진한다. 지은이는 오늘의 아프리카를 보며 내일의 아프리카, 그리고 세계의 내일을 염려했다. 논리는 이렇다. 아프리카 주민들을 괴롭히는 폭력 현상은 사회적 격차가 심화하며 발생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로 세계가 점차 이분화하다 보면 아프리카식 폭력은 세계시민 전체에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처럼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담은 이들의 저작도 눈에 띈다. 글줄을 따라 읽다 보면 아프리카는 지금 전방위적 위기에 놓여 있다. 사회구조의 모순뿐만 아니라 개발로 포장된 탐욕으로 파헤쳐지는 자연의 훼손도 심각하며 안전 문제만큼이나 위생 문제도 걱정할 수준이다. , 아프리카 사회의 부패와 주민들의 절망을 또 다른 시각으로 담은 마쓰모트 진이치의 , 조금 말랑말랑하게 다가가자면 케냐 구호의 경험을 일기로 쓴 빌 브라이슨의 등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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