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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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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의 지름길을 막아라

밀실회의·국정감사 거부 등 무소불위의 권력 휘두르는 사학분쟁조정위 폐지하고 비리사학의 복귀는 법으로 금지해야
등록 2011-05-19 15:17 수정 2020-05-03 04:26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8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출범한 지 근 3년 만에 처음으로 사분위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출석 요구에 응한 것이다. 그간 사분위는 조선대·세종대·상지대·광운대 등 임시이사 파견 대학들의 정상화를 심의해 비리로 물러난 옛 재단들을 속속 복귀시켜왔지만, 출석과 자료 제출을 거부해 국회가 이 결정들을 감사할 기회가 봉쇄돼 있었다.

비리 재단에 돌려주라고 해석한 적 없다?

청문회는 극적인 시점에 열렸다. 공교롭게도 2007년 상지대 대법원 판결(2006다10954)의 주심재판관이던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이 국무총리로 내정돼 인사청문회가 9월29~30일에 열렸기 때문이다. 김 총리는 판결이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취지일 뿐 비리로 물러난 옛 재단의 복귀를 허용한 결정이 아니라고 되풀이해서 밝혔다. 김 총리의 말은 사분위가 옛 재단을 복귀시키는 데 사용한 근거를 송두리째 허물어버렸다.

지난해 9월9일 '비리재단 복귀저지와 상지대 지키기 긴급 행동' 관계자들과 민변 이광철(오른쪽 세번째)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지난해 9월9일 '비리재단 복귀저지와 상지대 지키기 긴급 행동' 관계자들과 민변 이광철(오른쪽 세번째)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사분위가 상지대 옛 비리재단 복귀 결정을 내릴 당시 공식 기록인 회의록을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규탄하고 있다.

사분위가 2009년 9월 수립했다는 ‘정이사 선임 원칙’의 핵심은 상지대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원칙적으로 종전 이사에게 법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과반수)의 이사추천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간 학계·법조계·시민사회는 사분위가 상지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왜곡했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왔지만, 주심재판관의 공식 확인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여론의 눈과 귀는 이우근 사분위원장에게 모아졌다. 옛 비리 재단을 복귀시킨 일련의 결정을 이끈 수장이 주심재판관과 어떻게 다른 법리를 펼칠지 귀추가 주목됐다. 그런데 이 위원장은 뜻밖에도 “총리가 바른 말 했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 사분위는 판결을 “구재단에 돌려주라고 해석한 적 없다”고 궁색한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는 한 국회의원에게 “장난말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사실 사분위의 판결 왜곡은 지난해에 내려진 잇따른 후속 판결을 통해 입증돼왔다. 사분위가 자신의 과오를 수정할 기회는 충분했던 셈이다. 지난해 6월 신성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2010두6069)은 종전 이사의 의견을 배제한 것이 그들의 긴급처리권과 이사선임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지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고 했다. 10월에 내려진 조선대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판결(2009구합54741)은 종전 이사에게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는 정식 이사 정수의 추천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해당사자’ 포함된 새 사분위

사분위는 임시이사 파견 학교의 정상화 심의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다. 사립학교법은 사분위의 심의 결과에 대해 관할청인 교육과학기술부가 1회에 한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사분위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분위가 교과부를 제치고 사학 비리 정책 결정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분위가 상지대 대법원 판결과 실정법을 위배하며 옛 비리 사학을 복귀시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2010년 제2기 사분위처럼 대법원 판결과 사립학교법을 어기면서까지 파렴치범·반인륜범·강력범죄행위자가 아니면 아무리 심한 비리 사학도 모두 면죄부를 주고 복귀시킨다 해도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학교의 80%가 사학이고, 사학 비리는 해가 갈수록 창궐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사학 비리 척결’을 외쳐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이없게도 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사분위는 드러내놓고 실정법을 어기고 국회의 견제를 거부해왔다. 사분위는 정부조직법과 사립학교법에 따라 구성된 교과부 소속 행정위원회이지만, 국회의 서류 제출, 증인 출석, 국정감사 등의 요구에 일체 불응하며 오만을 보였다. 심지어 국회의 요구에 위법한 공세라며 전원 중대한 거취상의 결단(?)을 고려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또 모든 회의를 비공개로 운영하며 밀실에서 사학 비리 복귀를 결정해왔다. 이는 정보공개법뿐 아니라 회의 공개 원칙을 명시한 자체 규정마저 거스른 것이다. 국기 문란 수준의 폭거마저 자행했다. 상지대 심의를 다룬 두 차례 회의의 속기록을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폐기한 것이다. 그러고는 속기록 작성과 보관은 의무사항이 아니며 무단 폐기가 공공기록물관리법을 어긴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분위는 2007년 대법원 판결 결과 탄생한 작품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각각 3명, 대법원장이 5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사분위에 초법적 권력이 부여되고 이를 견제할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지대 대법원 판결은 임시이사 선임 사유가 해소된 상황에서는 그 “시점에 유효한 사립학교법,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 원칙에 따라” 정상화 방법을 강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현행 사립학교법은 정상화에 관한 일반 원칙을 정하지 않은 채 사분위에 모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 사분위가 보수 성향 인사들로 구성된다면, 판결을 왜곡하고 비리 사학의 복귀를 허용할 수 있다. 지난해 상지대 사태가 이를 웅변한다. 지난 4월21일 제3기 사분위가 구성됐지만 이런 우려는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강훈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대통령 추천으로 새 사분위원에 임명된 점을 거론할 수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현재 상지대가 낸 서울행정법원 소송에 교과부 쪽 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해당사자에 해당해,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과부 책임 강화해 학습권 보호해야

유일한 해결책은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길이다. 사립학교법에 사학 비리로 임원 승인이 취소돼 퇴출된 비리 사학의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임원 승인 취소 뒤 5년이 경과하더라도 해당 법인 복귀 금지 혹은 이사추천권 행사를 허용 불가 등 일체의 개입을 못하도록 한다. 비리 사학 복귀나 개입을 허용한다면 내부고발이 불가능해지고 사학들은 비리의 유혹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구성하는 교과부의 행정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초법적 기관인 사분위를 폐지해 사학 비리 정책 결정에 대한 교과부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름이야 어찌되든 사학 발전과 정상화 방안을 자문하고 심의해 교과부의 활동을 돕는 기구를 필요에 따라 설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회의 견제권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3년여 동안 임시이사 파견 학교들은 비리 사학의 복귀를 우려하며 불안에 떨어왔다. 상지대는 사분위의 결정과 교과부의 행정처분을 수용할 수 없다며 불복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위법하고 부당한 조처에 의해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수들의 교육권이 침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종식시켜야 한다.

심상용 상지대 교수·2010년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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