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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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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학왕국으로 회귀하나

1980년대 민주화 열풍으로 쫓겨난 사립대 비리 재단의 복귀 노림수에 ‘흔한 비리’ 면죄부로 담합하는 사학분쟁조정위
등록 2011-05-19 15:12 수정 2020-05-03 04:26

한국은 숭고한 교육 사업가들의 나라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4년제 대학 179곳 가운데 사립대는 152곳으로 전체의 84.9%에 이른다. 국립대는 25곳, 공립대는 2곳밖에 안 된다. 사립대 비율이 유례없이 높다. 교육 현장에 공공의 자본보다 개인의 자본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 학교 법인은 유력한 ‘재산 도피처’다. 태생부터 그랬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하던 중에 정부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려고 대지주들에게 토지를 학교재단으로 등록하면, 농지개혁 대상에서 빼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땅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대지주들은 앞다퉈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오래 불지 못한 교육 민주화 바람

개인의 막대한 자본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육을 빌미로 공공의 탈을 썼다. 교육에 써야 할 학교 재산의 개인 유용이 빈번했고, 교육에 써야 할 학교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입찰 비리가 횡행했다. ‘입학 장사’도 속출했다. 부정에 항의하는 구성원들은 ‘바지이사’들을 내세운 대학 자본 소유자에 의해 ‘합법’적으로 직을 박탈당했다. 사립대는 ‘봉건왕국’이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이 ‘혁명’으로 호명되지 못하는 까닭에는, 사립대의 ‘봉건왕국’을 공공화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한계가 한 부분으로 포함될 것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이 사립대 공공화를 바탕으로 대학 평준화를 이루며 고등교육 체제를 전복했던 것과 견주면, 이는 결국 불행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대구대를 비롯해 현재 학내 분규를 겪고 있는 사립대학들의 학생들이 지난 5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비리 재단의 복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대구대를 비롯해 현재 학내 분규를 겪고 있는 사립대학들의 학생들이 지난 5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비리 재단의 복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그래도 민주화 바람은 불었고, 1990년대의 사회적 합의는 비리와 전횡을 저지른 사립대 이사진과 대학 구성원들의 분규 사이에서 비리 재단 축출을 선택하는 쪽으로 귀결됐다. 1988년 영남대와 조선대, 1993년 상지대와 광운대, 1994년 대구대, 1997년 덕성여대 재단 이사진이 횡령과 입시 비리 등 각종 비리로 교육부의 감사 등을 받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나고, 교육부가 파견한 관선이사 또는 임시이사 체제로 학교법인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2003년 동덕여대, 2004년 세종대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바탕으로 난무하던 탐욕의 대립각에 ‘민주’로 상징되는 ‘정의’의 개념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쳐 이뤄낸 결과였다.

하지만 바람은 오래 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바람이 소멸하며 보수 정권으로의 교체를 눈앞에 둔 2007년 7월, 임시이사 체제의 ‘민주성’을 마뜩지 않게 여기던 한나라당과 로스쿨 입법을 원하던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거래로 사립학교법이 변경됐고, 그 결과물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탄생했다. 사분위는 곧 과거 회귀의 상징이 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이라는 영남대의 옛 재단 이사진이 2009년 6월 복귀했고, 지난해에는 세종대 주명건 전 이사장 쪽과 조선대 박철웅 전 이사장 쪽이 복귀해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백미는 지난해 8월 결정된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 일가의 복귀였다. 김 전 이사장은 1993년 공금 횡령과 부정입학 혐의로 구속된 뒤 이듬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1년6개월의 실형을 살았던 전력이 있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단 한 번도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모든 학교 행정을 결정했다. 하지만 사분위는 “김 전 이사장 쪽 옛 재단 이사에게 학교 운영권이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고, 이들의 비리도 파렴치 범죄나 강력 범죄, 반인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서 배제될 만한 정도가 아니다”라고 밝히며 김 전 이사 쪽에서 추천하는 이사 5명을 선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정상화한 임시이사 체제 흔들어 ‘분쟁조장’

사분위가 결정의 근거로 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7년 5월)은 “(옛 재단 쪽) 종전 이사가 학교법인의 정체성을 대변할 지위에 있는 자로서 적절한 정이사를 선임하는 문제와 관련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하는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대법원 판결에 명시된 “그렇다고 종전 이사가 정식 이사 선임권을 갖는다고 볼 수도 없다”는 판시는 사분위의 결정 근거에서 배제됐다. 사분위가 말하는 ‘정상화’는 결국 비리를 저지른 옛 재단 쪽에 사립대의 사적 ‘소유권’을 돌려주는 것을 의미할 뿐, 그 결정 과정에 공공성을 가져야 할 학교법인의 존재 이유, 그리고 교육의 개념은 개입할 틈이 없었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여전히 이사장실을 점거한 채 수백 일째 농성 중이고, 사분위의 ‘분쟁조정’이란 호명은 ‘분쟁조장’을 포장하는 껍데기로만 존재했다.

지난 5월12일 오후 열린 사분위의 제63차 전체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사분위는 이날 옛 재단 쪽 이사진의 비리에 의해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돼오던 대구대와 덕성여대, 동덕여대 등을 정이사 체제로 ‘정상화’하는 안건을 5시간 동안 논의했다. 대구대는 1994년 교육부 감사에서 설립자의 며느리인 고은애 전 이사 쪽이 주도한 영광학원 법인 운영 과정에서 재단의 교비 불법 유용, 교원 부당 임용과 허위 보고, 학내 공사 입찰 비리 등 27건의 문제가 적발돼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임시이사가 파견된 뒤 지난해 기준으로 영광학원의 자산이 임시이사 파견 전인 1993년에 견줘 6.1배 늘어난 반면, 부채는 2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9년부터 비리를 저지른 옛 재단 쪽 인사들이 학교법인 운영진으로 속속 복귀하면서, 고 전 이사 쪽도 학교 운영권을 다시 찾기 위해 복귀를 시도했다. 사분위가 대구대를 대하는 시각도 고 전 이사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사분위는 지난 2월 소위원회를 열고 대구대 ‘정상화’ 안건을 처음 다루며 이렇게 주장했다. “대구대 옛 재단 이사는 죄가 없다. 1994년 교육부의 감사 지적 사항도 그 정도면 어느 대학에나 다 있는 보편적 사항이라 본질적 비리라고 볼 수 없다. 만약 비리가 그토록 심각했다면, 교육부가 알아서 고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사취임 승인취소 처분을 받았으니 당사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옛 재단 비리에 대해 대법원 판결로 실형이 선고된 것도 없지 않으냐.”

사분위의 이런 견해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실형을 살았던 김문기 상지대 전 이사장의 추천으로 상지대를 ‘정상화’하던 때 내린 결정 논리와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사분위의 결정은 그렇게, 옛 재단 쪽의 사유권 보장을 때에 따라 변하는 ‘실정법 논리’로 포장하며 그들의 정치성을 은폐하는 도구가 됐다. 그 정치성은, 대구대를 넘어 학사 운영 간섭과 부당 인사 등 전횡을 저질렀던 덕성여대 박원국 전 이사장, 등록금 등 교비 78억여원을 법인 수입으로 불법 처리하고 교비로 주식투자를 해 2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이 드러난 동덕여대 조용각 전 이사장 쪽 인사들의 복귀 과정에도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고등교육 공공성 옥죄는 사적 탐욕의 마수

결국 고등교육 현장에서 교육과 공공성의 개념은 꺼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 됐다. 교육 현장이 ‘사적 소유권’을 둘러싼 탐욕의 전장이 될 때, 그 탐욕의 정치가 ‘실정법 논리’로 포장될 때, 투쟁의 장은 탐욕의 정치 앞에 그저 다시 ‘민주’라는 길항적 가치를 내미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 가치가 이미 한국 사회에 내재했을 것이란 기대, 이젠 고등교육의 본질적 철학을 거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을 것이라는 바람은 여기서 가볍게 부인된다. 사분위는 그렇게 한국 고등교육의 부재를 증명하는 기호로 존재한다.

이재훈 기자 한겨레 사회부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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