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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정에 울리는 사이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4년째 반대투쟁 중인 주민들, 단식 나선 전 도지사… “공사 전면 중단하라”
등록 2011-04-29 16:43 수정 2020-05-03 04:26

“이게 대한민국입니까?”
신구범 전 제주지사의 발언은 단호했다. 지난 4월6일 구속된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이 해군기지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옥중단식을 시작하자, 신 전 지사는 그의 건강을 우려해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해군과 공사업체, 주민 이간질까지

“갑자기 마을에서 사이렌 소리가 나요. 민방위훈련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사업체 직원들이 몰려오자 농사일을 하던 주민들을 현장으로 소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이나 그러더군요. 이게 대한민국 맞습니까.”
신 전 지사는 “해군과 공사업체들이 일부러 일부 강정주민을 굴착기 기사로 투입해 주민들끼리 싸우게 만든다”며 “해군 쪽이 2014년까지 해군기지 공사를 완공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시급성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설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공사업체가 진입로 공사를 하자 주민들과 반대단체들이 장애물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펼침막을 설치했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설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공사업체가 진입로 공사를 하자 주민들과 반대단체들이 장애물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펼침막을 설치했다.

창조한국당 고문이기도 한 그는 4월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야 5당의 강정마을에 대한 해군기지 조사를 촉구했다.

지금 강정은 전쟁터다. 기자와 얘기하던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해안을 보더니 “나중에 보자”며 곧바로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대책위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이다 벌금을 낸 주민만 33명이고 그 액수가 4400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농로를 따라 중덕해안으로 연결되는 제주올레 7코스 주변의 농지들은 폐원되고 있었고, 방파제 축조용 구조물을 제작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이날도 올레꾼들이 길을 걸으며 해군기지 반대 농성장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순남(38·여·전남 광양)씨는 “앞으로 이런 아름다운 곳에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강정은 예로부터 물이 많고 맑아 제주에선 드물게 쌀농사가 가능한 천혜절경의 해변 마을로 ‘제주 최고’라는 뜻의 ‘일강정’(一江汀)으로 불릴 만큼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2007년 마을 해안이 해군기지 입지로 선정된 뒤 4년째 반대투쟁을 전개하며 많이 지친 상태다. 이미 공사업체는 중덕해안에 진입로를 개설하려고 암반 파쇄작업까지 들어갔다.

각종 고소·고발과 사법 처리도 주민들을 자포자기로 몰아간다. “아무리 외쳐도 정부와 해군, 제주도가 꿈쩍도 않습니다. 생계를 팽개치다시피 하는 바람에 집안은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한 주민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주도의회가 지난 3월15일 ‘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동의 의결에 대한 취소의결안’을 통과시킨 뒤 강정마을 주민들의 결의도 되살아나고 있다. 도의회는 지난해 말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와 해군 쪽에 공사 중지를 요청했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정부와 해군을 비판했다.

지난 3월1일 제주4·3평화공원 참배를 시작으로 한반도 순례에 나서기로 했던 생명평화결사 순례단은 아예 강정마을에서 100일 동안 생명평화 활동을 하고 있다. 권술용 순례단장은 “제주 해군기지 투쟁을 보고 생명평화 활동 차원에서 강정마을을 지키려고 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 3월 새롭게 전열을 정비해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고권일 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이 한동안 포기하고 있다가 도의회의 지난달 의결 뒤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조만간 농번기가 끝나는데 전면적으로 공사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4·3 비극 일어날까 우려돼

강정마을은 지금 ‘제2의 제주 4·3’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으로 변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63년 전 제주도가 절해고도로 고립돼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참담한 피해를 겪었던 것처럼,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상황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사업이 국책사업이고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는 ‘그들만의 당위’를 강변하는 가운데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그때의 제주도와 닮았다. 4·3 당시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봉기’의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호소했지만, 미군정과 정치 주도 세력들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강정마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글·사진 제주=허호준 기자 한겨레 지역부 hojoon@hani.co.kr

**사진 설명: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설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공사업체가 진입로 공사를 하자 주민들과 반대단체들이 장애물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펼침막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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