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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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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싸움에 자리 잃은 사법개혁

‘로스쿨생 검사임용 방안’에 반발하는 사법연수원생들
특혜라는 비판과 환영하는 로스쿨생 뒤로 법률 서비스 개선 논의 사라져
등록 2011-03-11 00:18 수정 2020-05-03 04:26

“입소식 참석 않으실 분들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일단 입소식 시간에 개인 시간 보내시면 되고요. 1시30분부터 반지도 활동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전체 974명 가운데 550여 명 불참

지난 3월2일 오전 9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의 기숙사관 1층 로비. 법무부의 ‘로스쿨생 검사 선발 방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입소식 불참’을 결의한 100여 명이 모였다. 전날 사법연수원에 들어와 이제 막 공무원 신분이 된 제42기 ‘새내기’ 연수생들이다.

지난 3월2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42기 사법연수생 임명식에서 법무부의 로스쿨 검사 임용 방안에 반대하는 연수생들의 임명식 불참으로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3월2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42기 사법연수생 임명식에서 법무부의 로스쿨 검사 임용 방안에 반대하는 연수생들의 임명식 불참으로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눌러쓴 이부터 양복이 어색한지 연방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는 30대 남성까지 이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같은 시각, 다른 연수생들은 잘 차려입고 입소식 전 담당 교수로부터 이름표를 받기 위해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연수생 서너 명은 기숙사 건물 밖에서 유리문을 통해 로비 안쪽을 들여다보며 “400명 정도 될 거라고 했는데 얼마 안 돼 보이지 않아? 어떡하지?” 하며 동참 여부를 두고 갈등했고, 지방에서 자녀의 입소식을 보기 위해 올라온 부모들은 양손에 짐을 한 꾸러미씩 든 채 초조한 표정으로 로비 구석을 지켰다. 일부 연수생들은 “입소식에서 들 펼침막이 아직 도착을 안 했다”며 계속 휴대전화 시계를 바라봤다. 전날 저녁 기숙사 방을 돌며 ‘불참’을 설득했다는 이들은 “300명만 참여해도 성공”이라며 웃었다.

결국 성공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입소식에 전체 974명의 연수생 가운데 550여 명이 불참했다. 대강당 좌석들이 텅 빈 가운데 입소식이 시작됐다. 펼침막도 제때 도착했다. ‘로스쿨 검사임용 방안 철회’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나와 카메라들 앞에 한참 서 있다 나갔다.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연수원장을 비롯한 교수진들은 이들을 말없이 지켜봤다.

연수생들이 입소식 불참을 결의한 것은 지난 2월 중순께 언론을 통해 ‘검사 중 일부를 로스쿨 재학생 가운데 원장의 추천을 받은 이로 우선 선발할 것을 검토한다’는 법무부의 방침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연수생들의 온라인 내부 게시판에는 불이 났다.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자’부터 ‘공무원 신분이라 시위는 무리고, 법무부에 동시다발적으로 전화 테러를 하자’까지 다양한 대응 방안이 오갔다. 결국 입소식 불참과 성명 발표 정도로 정리됐다.

로스쿨과 연수원은 다르다?

연수생들의 반발심은 생각보다 컸다. 로비에서 만난 한 연수생은 “로스쿨 선발과 연수생 선발 과정이 엄연히 다른데, 로스쿨생을 어떻게 추천과 면접만을 가지고 검사로 임용한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연수생은 ‘사법시험’이라는 검증된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우수자를 곧바로 검사로 임용할 수 있지만, “사법시험과 달리 법 과목보다는 다른 능력을 위주로 선발하는 로스쿨생을, 그것도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추천을 통해, 게다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면접으로 선발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는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공부했던 건 그래도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전제가 무너져버려 우리도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연수생들 사이에서는 ‘로스쿨은 학생들을 위해 교수들이 적극 나서는데, 연수원 교수들은 뒷짐만 지고 있다’는 불만이 높던 터였다.

이들의 반발 뒤 법무부는 “재학생 사전 선발이 아니라, 추천받은 이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그 뒤 면접 등을 통해 최종 임용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연수생들은 그래도 반대다. 한 연수생은 “우리는 사법시험을 합격한 뒤 또 연수원에서 판검사 위주의 공부를 하는데, 로스쿨은 다르지 않느냐”면서 “로스쿨 졸업생을 바로 검사로 임용하는 것은 변호사 등 법조 경력이 있는 이들을 판검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취지와도 정면 배치된다”고 말했다. 변호사시험을 거쳐도, 변호사 능력 평가만을 목적으로 하는 그 시험과 사법시험을 동일하게 보고 변호사시험 합격자와 연수원 수료생을 같이 임용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다른 연수생은 “안 그래도 로스쿨에 대해 ‘등록금도 비싸고 선발 방식에도 면접 등이 많이 작용해 잘사는 집안의 자녀들만 갈 수 있다’는 비판으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변호사시험을 거치더라도 원장 추천 방식이 도입된다면 이런 우려를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반발에 대한 법조계 반응도 분분하다. 한 변호사는 “궁극적으로 로스쿨이 잘 자리잡을 수 있게 가야 하겠지만, 과도기에 놓이게 된 연수생들에 대해서는 기존 연수생과 비교할 때 기회의 정도가 제대로 제공돼야 하지 않느냐”며 “너무 ‘밥그릇 싸움’ 식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한 법조인은 “연수생이 로스쿨생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는 것 같은데,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사법시험 말고 로스쿨을 선택하는 이들이 빠지면서 (사시 합격이라는) 그 자리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 않느냐”고 봤다.

연수원장이 법무부와의 면담을 주선하는 등 수습에 나서면서 연수생들의 반발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연수생 대 로스쿨생’ 구도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이 되면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이 연수원을 전면 대체하게 되지만, 그 전까지는 연수생과 로스쿨생의 공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 2009년 개원한 로스쿨 1기 졸업생이 내년부터 배출되는데, 이들에 대한 판검사는 물론 변호사 선발 과정도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게 없다. 법무부는 일단 이들이 2012년 보게 될 변호사시험에서 로스쿨 입학 정원(2천 명)의 75% 이상을 합격률로 잡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합격률 기준은 정하지 못했다. 변호사단체는 ‘변호사 수 급증의 폐해를 막기 위해 5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로스쿨생들은 이런 주장에 반발해 ‘동맹 자퇴’를 결의하는 등 집단으로 반발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추천 뒤 검사 선발’ 방안에 대해 로스쿨생들은 ‘일단 환영’하며 연수생들의 반발을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학교마다 추천 수를 같게 주면 서울대 로스쿨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학교마다 환영의 ‘정도’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점점 깊어지는 갈등의 골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들이 실제 법조인이 된 뒤 현장에서 발생할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벌써부터 ‘과도기’ 기수의 판검사 중에서 출신에 따라 ‘성골’과 ‘진골’이 나뉠 거라는 소리가 들린다. 변호사 사이에서도 로스쿨 출신은 ‘변로사’로 불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 와중에 검찰은 이번에 문제가 됐던 방안을, 또 법원은 로스쿨 출신자 등을 판사 보조 업무를 시키는 ‘로클러크’(law clerk)로 뽑는 방안을 통해 우수 인재 선점 경쟁에 나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 속에 ‘국민을 위한 사법부’ ‘더 나은 법률 서비스 제공’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송경화 기자 한겨레 법조팀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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