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마지막 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가 문을 닫았다. 2005년 12월1일 출범한 진실위는 만 5년 동안 신청 사건 1만1175건 가운데 약 75%인 8450건의 진상을 밝히고, 이날 서둘러 과거의 일부가 되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혀내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는 진실위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이영조 위원장을 비롯해 뉴라이트 성향의 위원들이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나름의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진실위 이상환 상임위원을 지난 12월29일에 만나 진실위가 남긴 유산과 한계를 되짚었다.
진실화해위 이상환 상임위원.한겨레21 김정효
국가권력이 과거사를 체계적·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백하다. 우선 전체 사건 추정치에 비해 신청 건수가 너무 적었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보·배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발굴된 유해에 대한 영구적 안치 시설도 마련하지 못했다. 과거사 청산 작업을 계승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불행한 과거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재단도 설립하지 못했다. 이런 사항의 중요성을 감안해 진실위 활동을 종료하면서 종합보고서에 구체적인 권고 형태로 담기로 했으나, 이것마저 간단히 언급하는 수준에 그쳐버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위원장이 보기에 그런 내용을 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겠나. 최근에는 진실위 소식지에 내가 쓴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마지막 소식지 발간 자체를 취소한 일도 있었다. 아마 이영조 위원장은 아무런 후회가 없을 것 같다. 그의 마음대로 다 해봤으니. (웃음)
이곳저곳의 조직 생활을 해보았지만, 이런 조직은 처음이다. 위원장은 진실위 출범 때부터 함께한 사람 아닌가. 어찌됐든 그는 80%의 사건 처리에 동의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머지 20%의 사건에 대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 결정을 존중하고 잘 계승했다면 그것이 다 자신의 업적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무엇보다 인권과 평화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겠는가.
지난봄부터 해당 사건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는 미군 폭격 사건을 부담스러워하는 위원장과 일부 위원들의 태도 때문이다.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미국이 선임한 국선변호인 같다.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없어서 진실 규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 그러하듯 미군 폭격 사건도 미군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자료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존에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해당 날짜에 폭격이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진실 규명을 해왔던 것이다. 같은 사건이 예전에는 진실 규명이 되고 지금은 규명 불능이 되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좀더 일찍 압축적·효율적으로 조사를 끝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조사 기간 문제는 조직의 성격과 목표가 그대로라는 전제에서만 의미 있는 얘기였다. 2009년 12월2일 이영조 위원장이 취임한 뒤 모든 것을 뒤엎었는데 조사 기간만 늘어나면 무슨 의미인가.
문 닫은 진실위 앞에서, ‘규명 불능’ 혹은 ‘각하’라는 처분을 받은 약 25%의 신청인들은 갈 곳이 없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그들의 곡절 많은 생을 털어놓을까. 약한 이웃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유린한 국가는 오늘도 말이 없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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