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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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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탈출해 열흘 만에 포획된 말레이곰 ‘꼬마’의 가상 표류기
등록 2010-12-23 15:16 수정 2020-05-03 04:26

내 이름은 꼬마. 뭐, 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죠. 제가 처음 서울대공원에 왔을 때가 2006년, 그러니까 벌써 4년 전이잖아요. 지금 제 나이가 만 일곱 살이니까 그때는 고작 세 살이었단 말입니다. 한참 어렸죠.
몸집으로야 우리 말레이곰 가문이 원래 곰 패밀리 가운데서도 가장 작긴 해요. 다 커봐야 키 110cm나 될까. “나는 곰이다!” 하고 앞발을 번쩍 들어봐도 성인 남자 평균 키에도 훨씬 못 미칩니다. 크, 굴욕이죠. 곰이라면 불곰이나 북미 회색곰처럼 덩치가 좀 있어야 폼이 나는데 말이죠. 영화 기억하시죠. 거기 나오는 곰이 '그리즐리곰'이라고도 불리는 북미 회색곰인데요, 그 산만 한 덩치는 정말 압도적이잖아요. 저도 빨리 자라서 ‘빅 베어’가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나를 꼬마라 부르지 말레이!”를 우렁차게 외치고 싶지만, 현실은 웃기지 말레이! OTL

12월6일 오전 9시, 우연한 탈출

동물원 탈출 열흘째인 12월15일, 말레이곰 ‘꼬마’가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다. 꼬마는 이튿날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연합

동물원 탈출 열흘째인 12월15일, 말레이곰 ‘꼬마’가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다. 꼬마는 이튿날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연합

2006년 당시 서울대공원에 전입신고를 하면서 곰 사육팀 함계선 아저씨를 처음 만났어요. 제가 작고 어리다며 대충 ‘꼬마’라고 부르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곰 나이로 치면 저도 이제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어엿한 청년 아닙니까. 멋진 이름으로 바꿔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죠. 동물원에 갇힌 신세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우리 서울대공원 사육사 아저씨들은 센스가 영 꽝이에요. 심지어 제 유일한 동거녀 이름은 말순이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말순'씨, 크크크.

이름이 꼬마인데다 키도 단신에 속하는지라 사람들은 저를 참 만만하게 봅니다. 게다가 제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이미 파악했겠지만, 우리 말레이곰 가문의 비밀은 대체로 좀 멍청해 보인다는 거예요. 저주받은 혈통이라 할 수 있죠. 그래도 우습게 보지는 마세요. 제 이빨과 발톱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치질을 안 해서 좀 누렇기는 하지만 이빨은 꽤 크고 날카롭습니다. 검고 두꺼운 발톱은 또 어떻고요. 몸도 아주 재빠른 편이어서 단거리 선수로 나가도 될 정도입니다. 어떤 기자 아저씨는 제가 100m를 10초에 주파한다고 썼던데, 하하 그건 아니고요. 제가 언제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봤겠어요. 동물원에 트랙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 요즘 저는 이래저래 살맛이 나지 않아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자 이유를 모르게 한숨 쉬는 일이 잦아지더라고요. 몸 안의 뭔가 꿈틀대는 에너지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아무거나 막 물어뜯기도 하고 심술도 부렸어요. 잠자는 내실이랑 낮 시간에 나가 있는 방사장은 얼마나 갑갑한지 몰라요.

가장 짜증나는 건 방사장에 있는 시간이었어요. 혼자 있고 싶고 조용히 사색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를 찾아오는 꼬마 녀석들은 저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아요.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일은 예사고요, 작은 돌멩이나 핫바 막대기도 던져대요. 2002년 서울대공원에서 죽은 천연기념물 잔점박이물범 이야기 아시나요. 갑자기 죽은 이유가 수상해 배를 갈라보니 동전 124개가 나왔다는 이야기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늙고 힘없는 말순씨가 괜히 저 때문에 고생 많았습니다. 제가 좀 괴롭혔거든요. 말순씨 나이가 올해 벌써 서른. 말순씨보다 말순 할매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지 몰라요. 오늘내일하는 말순씨를 늘씬하게 때려주면 스트레스는 잠시 풀렸지만, 마음 한켠의 빈 공간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어요.

아, 그건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멀리 도망갈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12월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겠네요. 아직 내실에 있었으니 저로서는 ‘출근’ 전이었죠. 담당 사육사인 추윤정(28) 누나가 여느 때처럼 먹이통을 들고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사육사 누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먹이통을 내실 앞에 놓고 이것저것 정리하며 꾸물대기 시작하는데 동작이 어찌나 굼뜬지 속으로 ‘어이, 곰탱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니까요.

고향 말레이시아의 밀림도 청계산 같은가요

12월15일 오전 서울대공원 직원들이 청계산 국사봉 주변에서 붙잡은 꼬마를 포획틀에서 꺼내고 있다.한겨레21 최성진

12월15일 오전 서울대공원 직원들이 청계산 국사봉 주변에서 붙잡은 꼬마를 포획틀에서 꺼내고 있다.한겨레21 최성진

좀 서두르라는 뜻으로 내실 창살을 가볍게 흔들어줬죠. 그런데 몇 번 흔들어대니까 내실 문에 걸린 T자형 걸쇠가 툭 빠지데요. ‘이게 웬일이래’ 하면서 그냥 살금살금 걸어서 나갔어요. 먹이통에 담긴 생닭이며 사과 등을 먹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사육사 누나 몰래 조금만 먹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안 먹은 척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제가 원래 식탐이 좀 있거든요.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 정신이 나가는 거예요.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사육사 누나가 “야, 너 거기서 뭐해” 하면서 달려오더라고요.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뭐에 홀린 것 같았다니까요. 신나게 달렸어요. 사육사 누나가 쫓아왔어요. 물론 제가 더 빨랐죠. 곰 사육장 외곽에 설치된 이중 울타리도 문제없었어요. 마침 울타리 안쪽에 키 큰 나무가 있었거든요. 샤샤삭 나무 위로 올라가 울타리를 뛰어넘었죠. 동물원 울타리를 모두 뛰어넘으니 산비탈이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산이 서울대공원 남동쪽에 있는 청계산이라고 하더라고요. 내처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하죠. 처음에는 사육사 누나나 좀 골려주자는 생각이었는데, 누나를 한참 따돌린 뒤에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어요. 내 의지 같은 건 없었어요. 온몸의 근육은 이미 통제를 상실한 듯 스스로 최대치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어요.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푸른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하여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얼마를 달렸는지 모릅니다. 푸른 에너지가 연소를 다한 뒤 청계산 어느 골짜기에 쓰러졌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어요.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2003년 9월 제가 태어난 곳은 사실 동물원이었어요. 숲이 어떤 건지, 질주의 쾌감이 어떤 건지 몰랐죠. 아, 말순씨가 가끔 먼 세상 이야기처럼 말레이시아 열대우림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있었어요. 혼란스러웠어요. 여기가 어디쯤일까. 내 고향 말레이시아에는 울창한 밀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여기가 밀림인가요. 멀리 헬기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봤습니다. 사방이 고요했어요. 날이 좀 추웠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고요. 알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내 이름은 더 이상 ‘꼬마’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바로 숲의 지배자라는 사실 말이죠.

조용한 산속을 정처 없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수봉 방면에서 국사봉 쪽으로 가다 보면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멀리 도시의 야경도 구경했습니다. 갑자기 소리치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탈주의 욕망을 품은 적이 있잖아요. 세상 밖으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불빛을 향해 막 소리쳤습니다. “나는 곰이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지구의 주성분이 시멘트인 줄 알았다니까요. 좁아터진 내실 바닥도 딱딱한 시멘트, 방사장 곳곳에도 시멘트. 이해는 합니다. 한 해 300억원 수준의 서울대공원 예산으로 단번에 생태형 동물원을 꾸민다는 것은 무리겠죠. 그래도 2009년 유인원관에 이어 올해 열대조류관을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리모델링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곰사육장에서도 하루빨리 시멘트를 걷어냈으면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동물원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이미 꼬마가 아니라 숲의 지배자니까요.

문제는 배고픔

세상일이 그렇게 내 마음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배고픔.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인 모의원 아저씨는 추위를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말레이곰이 청계산이라는 중부 이북 지역의 겨울철 추위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좀 쌀쌀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견딜 만하더라고요. 낙엽 있잖아요. 그거 잔뜩 긁어모아 잠자리를 만들면 제법 아늑해요. 게다가 가을철에 먹이를 든든히 먹어뒀거든요. 피하지방이 제법 두툼해져서 오리털 파카가 부럽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굶주림은 정말 참을 수 없단 말이죠. 동물원에 있으면 적어도 하루 4~5kg의 밥을 주거든요. 사육사 추윤정 누나가 매일 아침 생닭 한 마리와 고구마 몇 개, 사과 몇 개, 건빵, 그리고 곰 전용 사료를 주고요, 가끔 특식으로 꿀도 줘요. 아, 꿀 생각만 하면 지금도 입에 침이 고여요. 다른 곰도 그렇지만 우리 말레이곰은 특히 꿀과 초콜릿 같은 단것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매일매일 꿀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우리 동물원이 가난하니까 그렇게 자주 주지는 못했거든요.

처음 며칠간은 청계산 등산객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주워먹었어요. 사냥은 언제 해봤어야죠. 훈련받은 적도 없고요. 청계산에도 청설모와 토끼, 고라니가 서식한다는데, 살아 있는 짐승을 죽여본 적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그냥 등산로 주변을 뒤져 사람들이 먹다 버린 사과나 소시지 등을 닥치는 대로 먹었죠. 아, 다래라고 있잖아요. 그거는 좀 따먹었죠. 그럭저럭 먹을 만하던데 맛은 없더라고요.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며칠 지나면서 배고픔이 한층 심해졌습니다. 탈출 닷새째였어요. 12월10일 경기 성남시 금토동에서 국사봉 쪽으로 가는 등산로 있잖아요. 아침에 먹이를 찾아서 등산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꼬마야” 하고 소리치더라고요. 김헌열 서울대공원 동물복지과장이었어요. 서울대공원의 다른 아저씨 4명도 함께 있었어요. 그때 차라리 잡힐까 싶었는데, 명색이 숲의 지배자인데 사람 손에 잡히는 건 창피하잖아요. 또 그냥 달렸죠.

배고픔이란 것, 참 무섭데요. 처음 알았습니다. 굶주림이 심해지니까 자제력이 떨어져요.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쯤이야 동물의 본능에 가깝잖아요. 12월13일 밤 이수봉 정상 근처에 있는 간이 매점을 털었던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정신이었다면 흔적을 남기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워낙 배가 고프다 보니 그냥 닥치는 대로 뜯어먹었습니다. 컵라면도 먹고 소시지도 먹고 양갱도 먹었어요. 양갱은 달달하니 맛있던데 포장 뜯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맛만 본 거죠.

그리고 12월15일 새벽이 됐습니다. 탈출 열흘째였죠.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습니다. 거의 정신을 잃고 국사봉 주변을 거닐고 있었어요.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솔솔 풍겼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 꿀과 포도주였어요. 정어리도 있었어요. 커다란 드럼통 안에 있는 꿀을 탐하면 위험이 닥치리라는 예감에 문득 정신을 차렸습니다. 왜 모든 깨달음은 좌절 뒤에 찾아오는 걸까요. ‘철컹’ 소리와 함께 포획틀의 문은 닫혔습니다. 짧은 여행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죠.

언젠가 제게도 참된 자유가 오겠죠

제 생애 최초의 여행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라고 하려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뺐어요. 비록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지만, 언젠가 제게도 참된 자유가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때까지는 12월6일 아침 그 끝을 알 수 없던 질주의 경험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청계산=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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