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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개념고객’ 되는 법



한국여성민우회, 식당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8개 실천사항 등 거리 캠페인 나서
등록 2010-10-27 11:40 수정 2020-05-03 04:26
고객 개념지수를 스스로 측정해보는 테스트.한국여성민우회 제공

고객 개념지수를 스스로 측정해보는 테스트.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이모’가 좋을까 ‘여기요’가 좋을까? 지난 10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가 마련한 펼침판에는 ‘식당 노동자를 부르는 호칭, 어떤 것이 좋을까요?’란 질문이 적혀 있었다. 머뭇거리던 한 시민이 ‘이모 대신 고모’라고 적어넣어 주변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의 엄마, 친구, 친구 엄마

민우회가 식당 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를 위한 전국 투어 거리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 10월9일 경기 고양시 라페스타 거리를 시작으로 15일 강원 원주, 16일 인천, 19일에는 서울 정동 시립미술관 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10월28일에는 강원 춘천과 광주를 찾아간다. 하지만 서울의 활동가들이 전국을 도는 형식이 아니다. 각 지역의 회원들과 식당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번 캠페인은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성희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무환경 등 식당 노동자의 현실(781~784호 ‘노동 OTL’ 연재 기사 참조)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함께 개선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민우회는 올해 초부터 식당 노동자를 위한 인권운동을 진행해왔다. 이름하여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이다. 지난 5월에는 식당 여성 노동자의 인권길잡이 소책자를 발행하고, 식당 노동자에게 전달할 ‘고맙습니다! 덕분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라고 적힌 감사 카드를 만들어 배포했다. 또한 식당 노동자는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한 상담 활동을 펼쳐왔다. 처음에는 말하길 꺼리던 식당 노동자들이 차츰 소책자를 읽어보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리 엄마가 식당 아줌마”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청한 딸도 있었다. 서울 금천구의 한 고등학교 사회교사는 수업 교재로 이 소책자를 활용해 학생들과 토론을 나눴다. 강원 원주시의 민우회 회원들은 함께 식당 여성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었다. 지난 10월15일 서울 성산동 민우회 사무실에서 상영회도 열렸다. 작지만 큰 변화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민우회는 이제 시선을 ‘손님’으로 확장했다. 식당 아줌마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주체, ‘손님’을 찾아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번 거리 캠페인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가장 인기를 끈 프로그램은 ‘고객 개념지수 측정’이다.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나에 대한 서비스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식당 여성노동자에게 술을 권해본 적이 있다’ ‘메뉴판에 없는 담배 등을 사다달라고 하는 걸 괜찮다고 생각한다’ ‘식당 노동자가 올 때까지 벨을 계속 눌러본 적이 있다’ 등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다 보면 자신의 고객 개념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은 ‘당신이 알고 있는 식당 노동자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판에도 스티커를 붙였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관계망 속에서 식당 노동자는 나와 먼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스티커를 붙인 자리는 ‘엄마’와 ‘친구’, 그리고 ‘친구 엄마’였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지난 10월19일 오후 서울 정동길에서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 거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지난 10월19일 오후 서울 정동길에서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 거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릇에 휴지 넣지 않기, 또박또박 주문하기…

거리 캠페인 마지막 행사로 민우회 활동가들은 주변 식당을 돌며 ‘8가지 개념고객 실천사항’을 담은 포스터를 배포했다. 실천사항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기 △벨은 필요할 때 누르고 기다리기 △그릇에 휴지는 넣지 않기 △존댓말 쓰기 △천천히 또박또박 주문하기 △셀프는 스스로 △성희롱 하지 말기 △남기지 않고 먹기 등이다.

여경 민우회 활동가는 “캠페인을 진행해보니 생각보다 시민들이 식당 노동자의 현실을 잘 몰라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캠페인 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식당 노동의 대안을 찾아가는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캠페인 관련 문의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전화 02-737-5763, 전자우편 equallove@womenlink.or.kr.

임지선 기자 한겨레 24시팀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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