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전국의 경찰서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는 “경찰공무원의 노조 가입 금지”와 “이를 어길 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내용이 ‘경찰 화합과 발전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올랐다.
경찰청 차원에서 올린 이 글은 “최근 일부 외부 단체의 경찰 노동조합 추진 움직임과 관련,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경찰 노동조합 가입 문제점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며 △노조 가입 시 불이익 여부 △근무환경 개선 추진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또 “경찰공무원은 법집행 주체로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은 노동조합 가입이 금지되어 있고 집단행동 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하면서, 근거 조항으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6조(가입 범위)와 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및 제84조(처벌 조항),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 의무) 등을 내세웠다.
경찰서 내부 게시판에 경고글 올라
이 글에서 ‘외부단체’로 명명한 곳은 경찰노조설립 준비 단체인 ‘전국경찰노조추진위원회’다. 이 단체는 사실 경찰 내부에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경찰청 차원에서 가입 금지 공문을 내려보낸 것은 그만큼 노조 준비 모임 자체를 경찰 지휘부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조 설립 준비 초기에 지휘부가 입장을 분명히 밝혀서 설립 시도를 무산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한 경찰서 팀장급 간부는 “경찰노조를 무조건 못하게 만들겠다고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보다는 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는지를 따져보는 게 우선임에도 금지 공문부터 내려보내니 아래에서는 오히려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한 경찰서 간부는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이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겠다고 나서면 공감해줄 국민이 누가 있겠느냐”며 “몇몇 불순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경찰 전부를 욕먹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찰노조 설립 움직임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은 경찰노조를 추진하는 한 현직 경찰관을 만났다. 그는 20여 년 동안 서울의 주요 지역에서 경찰로 일했다. 현재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경찰 지휘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법 위반자다.
김갑수(55·가명) 경사가 참여하는 전국경찰노조추진위는 지난 9월11일 출범해 이제 한 달이 돼간다. 그때 이들이 발표한 선언문을 보면 “경찰의 권익 대변은 물론이고 부패 방지와 공정한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경찰 바로세우기에 진력할 것”이라는 등의 출범 의도를 밝히고 있다. 추진위원장은 지난해 5월 경찰 내부 게시판에 조현오 경기경찰청장(현 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파면당한 경기 안산 상록경찰서 박윤근 전 경사가 맡았다.
“강박증 같은 게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인터뷰 내내 김 경사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 경사는 “현재 분위기로는 참여만 알려져도 파면”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한 차례 연기됐으며, 두번째 약속 당일에는 장소가 바뀌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 사진을 찍는지, 대화를 녹취하는지까지 신경을 썼다. “20년이 넘게 경찰 업무를 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강박감”이라고 말했지만, 노조추진위 참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커보였다. 허락된 인터뷰 시간이 길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font color="#008ABD"> 전국경찰노조추진위는 실체가 있는 조직인가. 구성원과 조직이 어떻게 되는가.</font>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실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font color="#008ABD">실체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보도를 할 수가 없다. 어느 정도라도 윤곽을 그려달라.</font>현재 재직 중인 사람을 기준으로 수백명 정도가 모였다. 현재 15개 시·도의 조직 책임자를 정한 상태다.
<font color="#008ABD">그 정도 정보로는 조직이 실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font>지역의 책임자가 있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지역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연결망을 갖고 연락을 주고받는 형태다. 솔직히 나도 조직이 어떤 규모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최근 사무실 운영도 시작했으며, 상근자가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사무실의 위치, 운용현황 등에 대해서는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했다.)
<font color="#008ABD">참여자가 수백명이라고 한다면 경찰 내부의 여건상 예상외로 많은 규모다.</font>현재는 지부별로 책임자들끼리 소통한다. 내가 밝힌 수와 일부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경찰청 차원에서 참가 금지가 공표된 다음부터 노조 준비 모임에 대한 감시나 견제가 심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안 때문에 소수만이 조직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공유하고 있다.
공무원 노조가 설립되는 등 경찰노조 설립의 적기로 여겨졌던 과거 정권 때는 움직이지 않다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찰 근무 여건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 끔찍하다. 그 시절에는 민주화되면서 그나마 경찰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고 일할 만했다. 그런데 이번 정권 들어, 특히 성과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밥도 못 먹고 순찰차를 돌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순찰차를 타고 돌다가 뭔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생겨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면 바로 서에서 연락이 온다. 혹시 딴짓하지 않았느냐는 채근이다. 특이상황이 없다면 사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순찰차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구축한 망이 이제는 쉼없이 움직이는지 감시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이대로는 못 버티겠다는 말이 나온다. 노조 준비 모임을 참가하지 말라고 협박하면서,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상황을 지휘부가 알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불만 얘기할 창구가 절실한 적 없었다”
근무 여건에 대한 이야기는 길었다. 김 경사 개인적인 참가배경을 물었다. 김 경사는 “얼마 전 술에 취한 피의자를 취조하던 중 뺨을 맞는 등 곤욕을 치렀음에도 보고조차 못했다”는 말을 꺼냈다. “모든 것을 개인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보는 분위기상, 그 일이 ‘피의자를 제압할 능력이 없어서 벌어진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 일을 겪은 다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게 결심을 굳힌 계기라면 계기”라고 말했다.
물론 근무 여건만이 참여 이유는 아니었다. 김 경사는 “현재의 성과주의가 극에 달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윗선이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며, 이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 생활을 하면서 요즘처럼 불만을 얘기할 만한 창구가 필요한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경사는 현재 상황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로 정리했다. 현재 노조추진위 내부에서도 경찰 지휘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맞춰 속도 조절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무궁화 클럽’이 노조추진위와 공조하는 듯하다가 최근 공식적으로 “노조와 무관하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시류를 반영한다. 하지만 김 경사가 보는 노조 설립은 낙관적이었다. 노조가 설립되기만 하면 참여할 것이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결심이 선 것으로 보였다. “20년이면, 나는 경찰 일 할만큼 했다고 본다. 설립 과정에서 희생이 요구될 텐데, 옷을 벗더라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경찰답게 일하다가 벗고 싶다”며 “그 시기가 언제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전교조가 좋은 사례다.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참교육’이라는 화두가 국민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끝내 교사노조를 만들어낸 것처럼, 경찰노조도 단순히 경찰의 제 밥그릇 챙기기가 아닌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득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전교조는 1989년 출범 당시 정부로부터 불법단체로 낙인찍히면서 그 해 1465명이 해직되는 등의 고통을 겪었다. 합법화 논의가 시작된 것은 8년이 지난 1997년 노사정위원회에서였다. 그리고 출범 10년 만인 1999년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합법적인 노동조합이 됐다.
전교조 합법화 10년의 두배가 걸려도
김 경사는 “전교조가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면, 경찰노조는 공권력이라는 특성상 그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쉽지 않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에 경찰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경찰노조추진위원회는 대외적으로는 박윤근 위원장 등 전직 경찰을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추진위는 11월께 국회에서 경찰노조의 필요성을 알리고 합법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유럽과 미국의 경찰노조들
<font size="2"><font color="#C21A8D">다양한 조직에 파업권까지</font></font>
유럽에는 대부분의 국가에 경찰노조가 설립돼 있다. 또한 파업을 허용하지 않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노동3권을 모두 보장한다. 유럽 전역의 경찰노조를 아우르는 조직으로는 유럽경찰노조연합(European Confederation of Police)과 유럽경찰노조연맹(European Council of Police Trade Unions)이 있다. 유럽경찰노조연합은 독일·스페인·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 등 23개국 30개 경찰노조, 50만 명의 경찰관을 포괄한다. 유럽경찰노조연맹은 1988년 창립됐으며, 유럽 18개국 28만 명의 경찰관이 조직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들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경찰의 시민적 권리 등을 보장하는 일을 한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독일 경찰노조는 1950년 창립됐으며 18만 명의 노조원을 보유한다. 복수노조를 보장하는 독일에는 2개 노조가 더 있는데, 수사경찰노조·문민경찰노조 등이 활동한다. 프랑스 경찰노조는 독립경찰노조연맹, 전국경찰노조, 경찰 총경 계급 및 일반 고위공무원 노조, 전국정복경찰관노조 등이 활약한다. 영국 경찰은 다른 유럽 노조와는 달리 파업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1919년 경찰법에 따라 창설된 경찰노조연맹은 13만 명의 경찰을 대표해 근무 여건 등의 교섭을 진행한다. 파업권은 보유하지 않지만 유럽경찰노조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정치적 이슈에 대해 집회를 열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등 우리 공무원 노조와 유사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미국 경찰도 노조가 있다. 1919년 보스턴 경찰의 파업으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노조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 밀려 설립 시도가 무산됐다. 본격적인 노조 설립은 1965년 미시간주 당국이 디트로이트 경찰의 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 시작됐으니, 미국에서 경찰노조를 세우기 위한 노력은 40년이 걸린 셈이다. 현재는 미국 경찰 대부분이 노조원으로 가입돼 있다. 대표적인 단체는 4천여 개에 이르는 경찰노조와 경찰협의회 등을 통해 22만 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미국 경찰노조연맹(International Union of Police Associations)과 2천여 개 지부, 약 32만 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경찰공제조합(Fraternal Order of Police union)이다. 이들은 노동 3권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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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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