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다음 설명 가운데 민주시민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은?
① 경찰이 길거리에서 소속과 이름도 밝히지 않고 무턱대고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 때는 이를 거부한다.
② 거부하는 내게 “경찰서로 같이 갑시다” 할 때는 “혼자 가세요”라고 말해준 뒤 내 갈 길을 간다.
③ 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한 뒤에는 빨리 날인과 간인을 해준 뒤 집에 와서 내용을 곰곰이 따져본다.
④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판결이 나면,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청구를 하고 필요하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다.
민변이 1년여 공들인 저작
정답은 3번. 피의자 신문을 받은 뒤 내가 한 말을 옮겨 적은 조서는 가능한 한 천천히 꼼꼼히 자세히 읽어보고, 틀린 건 수정을 요구하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게 있으면 절대 손가락 도장을 찍어주면 안 된다.
문제를 읽는 동안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했거나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면, 당신은 지난 7월에 나온 769호 표지이야기 ‘완전정복, MB시대 수사받는 법’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상당수 누리꾼들이 그 기사를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마당이니, 당신은 이미 유행에 한발 뒤처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시라. 유행을 따라잡을 좋은 기회가 생겼다. 당시 기사를 읽었던 이들은 이참에 ‘심화학습’도 가능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복잡한 형사절차를 쉽게 풀어쓴 단행본 를 마침내 펴냈다. 민변 소속 변호사 9명이 1년여 간 기획과 집필에 매달렸다. 발행 전 원고 상태에서 ‘완전정복…’ 기사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한 바 있는 이 책은 크게 9개의 뼈대로 이뤄졌다. 초보자 코스인 ‘불심검문과 임의동행’부터 시작해 ‘체포와 구속’ ‘압수와 수색’ ‘경찰과 검찰의 신문’ 등 하드보일드한 중급자 코스를 거쳐 ‘체포나 구속된 사람과의 소통’ ‘여성·장애인·소년에 대한 특례’ 등 고급 사용자용 지침까지 담겨 있다.
한평생 착하게 살아온 당신, “범죄자들에게나 필요한 책 아니냐”고 힐난하고 싶은 마음 다 안다. 그렇다면, 지난 12월2일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올해 들어 10월까지 일어난 ‘불법 폭력’ 시위는 44건으로 지난해 84건에 비해 47.6%나 줄었는데, 현장에서 검거한 이는 2385명으로 지난해(2139명)보다 12%나 늘었다. 불법 폭력 시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다시 묻고 싶은가? 그 시위가 불법인지, 폭력이 발생했는지는 대개 경찰이 임의대로 판단한다는 사실 아닌 사실을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철도노조가 합법 파업을 해도 대통령의 마음에 안 들면 업무방해죄로 고소·고발 당하고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범죄자들에게나 필요한 책이냐고?더구나 올해 시위 현장에서 검거된 이들이 당신보다 평소 범죄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애인 만나러 시내 나갔다 얼떨결에 색소 든 물대포 맞고 불법 시위자로 끌려간 사람 얘기를 명심하라.
이 험악한 시대 여차하면 수사기관 문턱 넘을 일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상황 발생시 대처요령, 알면 본전 뽑고 모르면 낭패 본다. 황희석 변호사는 출간사에서 이 책의 성격을 두고 “일종의 가정의학서”라 했고, 본 기자는 추천사에서 “민주시민의 민방위훈련 지침서”라 일컬었다. 단, 이 책을 자주 실전에 활용할 생각은 않는 게 좋겠다. 사람생각(031-211-5855) 펴냄, 1만원.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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