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서울 청량리 수산시장 일대, 5시 오후 공연을 마치면 해는 아주 져 캄캄하다. 영영 그 어둠 속으로 천막째 사라질 것만 같다. 1925년 생긴 동춘서커스단. 11월15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재정난 때문이다. 박세환(65) 단장의 회한은 깊었다. “서커스부터 연극, 국악까지 우리가 다 하며 대중문화를 끌어왔는데, 다른 장르는 국가 지원 아래 모두 발전하는 동안 서커스만 도태했다”며 “너무 억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순정이 있던가. 1960년대 중반~70년대 초반 전성기도 기습적으로 휘청했다. 박 단장은 날짜까지 정확히 왼다. “1972년 4월3일.” 한국방송에서 드라마 를 내보낸 날이다. “낮엔 새마을운동이다 뭐다 일하고 밤엔 모여 를 본다고 관객이 줄었어요.” 흥행 삼파전을 치르던 신국·태백서커스단이 문을 닫았다. 머리통만 한 브라운관의 힘은 갈수록 셌다. “16~17개 되던 무대예술 단체 중 6개 정도만 남았다.”
떡심 풀린 박 단장이 예명을 묻자 웃었다. “백두산이었어. 내가 최고 잘했지, 하하. 연극 주연, 사회, 노래, 줄타기까지 만능 엔터테이너로 가장 유망했어. 동기 장항선(배우)은 원래 김일남인데, 고향이 예산이라 그런 거야. 아주 잘 지었어.”
서영춘·남철·남성남·이주일씨 등 선배들은 하나둘 떠났지만, 박 단장은 1978년 아예 서커스단을 인수한다. 집 세 채 값(1800만원)이 들었다. “61년 입단할 때만도 (정식 단원이 될 때까지) 3~4개월 걸렸어. 연극·무용·가수·곡예팀, 홍보팀 등 200명가량 있었는데, 우리 같은 말단은 단장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거든.” 밥 굶고 월급 못 받으며 온갖 시역을 거두고, 손님이 적은 날 무대에 겨우 올랐다. 그 맛에 중독돼 유랑 인생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받은 일급 200원의 기억은 가물거린다. 어차피 돈은 박 단장의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한다. 곡예사도 떠나고 배우도 떠나면서, 2005년 중국인 단원 수가 한국인을 앞지른다. 이제 전체 단원은 40명이 안 된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관객이 뚝 떨어지며 3개월 정도 휴업이 거듭됐다. 올해 신종 플루 여파가 더해졌다. 지난 11월4일 오후 2시 공연 땐 20여 명이 900석을 채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빚은 4억원이 되었고 단원 급여도 3개월치가 밀렸다. 박 단장은 “잘 벌 때 땅이나 사둘 걸, 그 돈으로 남이섬·부천에 가설극장 짓고 또 서커스단을 만들었다”며 “이렇게 바닥나긴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정부 지원을 여러 차례 청했으나 성사된 것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위기가 알려지자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전해왔다. 박 단장은 “일단 마지막 공연을 통보하면서 나갈 단원들은 나가게 했다”며 “하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운명. 84년 서커스 역사가 다시 외줄을 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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