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던 문규현 신부가 지난 10월22일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다행히 깨어난 다음에 손발을 움직이고 말을 알아듣는 등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쾌차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그는 새만금·대추리 등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함께했고, 고통받는 생명을 위해 삼보일배·오체투지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1989년 임수경씨의 손을 잡고 분단의 벽을 넘은 ‘통일의 사제’에서 뭇 생명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생명의 사제’가 되었다. 문 신부와 오랫동안 평화운동을 함께해온 김종섭씨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편집자
오랜만에 문규현 신부님이 주임신부로 계시는 전북 전주 평화동 성당에 들러서야 단식 중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잠시 쉬어가시나 싶더니만 기어이 몸을 던지신 것이다. 오체투지 기도순례를 마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단식은 젊은 사제들에게 양보하라는 아우성에 “죽어간 사람과 그 처자식 고통만 하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신다. 형님인 문정현 신부의 걱정도 마다한 채 이미 용산, 그곳에 육신과 영혼이 자리잡고 있는 신부님에게 더 이상의 걱정은 큰 역성으로 돌아올 것을 아는 터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밥 한술 걷어 먹이겠다며 앞에 앉아 내 식사가 다 끝날 때가지 묵묵히 바라보는 신부님의 눈을 피해 허기를 달래느라 혼이 났다. 그 뒤 며칠이 지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못해 시커멓다.
삼보일배·오체투지, 자신을 희생하는 몸짓순간, 분명 쾌차하실 거라는 굳은 믿음,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 우르반대학 대강당에 새겨진 ‘그리고 그 다음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출세와 권력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말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신부님에게는 가장 낮은 곳, 연약하고 힘겨운 곳, 사람과 자연이 아우성치는 곳,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을 향한 쉼없는 발걸음을 뜻한다. 이제 예순이 훌쩍 넘으셨는데, 힘겨운 병상에서 일어나 ‘그리고 그 다음’의 길을 찾아나설 신부님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울컥한다.
돌이켜보면 쉼없이, 독하게 결단했던 신부님이다. 말이 오체투지, 삼보일배지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예측하기 힘든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행동은, 당신의 말씀대로 인간 개인이 아닌 사제로서의 사명 이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당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남북 분단의 경계를 넘어선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새만금의 생명을 파괴하는 탐욕의 개발이 뭇 생명을 이겨내려는 그 순간에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65일 동안 세 번 걷고 한 번 절하며 갔다. 얼마 전에는 모든 분들이 붙잡고 붙잡아도, 모든 생명에게 희망의 용기를 주겠다며 삼보일배보다 더 낮은 자세로 124일 오체투지 기도순례길을 재촉했다. 무사히 지나온 길이 함께 길을 걸어간 이웃들의 사랑과 기도 덕이라 했지만, 당신의 말씀처럼 ‘이러다가 길에서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느낄 정도의 힘겨운 고통을 다 받아내신 것이다.
독하게 결단하면 분노하기 마련인데 항상 조용히 화해하고 용서하신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중에는 정부가 허가한 방북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부안의 핵폐기장으로 정말 살벌하게 부딪치기도 했다. 이런 아쉬움과 상처를 치유한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던 역사적 순간,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짚모자를 쓰고 농부들과 친환경 농업을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니, 죽을 수 있다던 순례길이 신부님에게는 그토록 너그러운 길이었나 보다.
잠시 쉬어가는 것은 사치가 아니건만일상으로 돌아온 신부님은 변화와 나눔을 즐거워하신다. 생뚱맞게도 자신부터 삶의 대안을 만든다며 소작농을 자처해 농사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부안이 핵폐기장으로 홍역을 치르고 난 뒤에는 시민발전소를 통해 대안에너지 운동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떠났던 순례길에서 돌아오면 이렇게 하나씩 삶과 주변을 변화시키면서, 더디기만 한 사회적 변화를 한숨으로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약속한 것을 스스로 행하셨다. 덕분에 주위 사람들 일감은 자꾸 늘어나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턴가 성당 한켠 공부방에 제도교육에서 이탈한 학생들이 찾아와 있다. 주위 사람들이야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안이 벙벙하지만,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연민으로 안으셨단다. 어쩔 것인가. 따지고 보면 항상 좋은 일인 것을.
전국구 유명세 덕에 성당과 순례길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고 안아주고,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세상과 호흡하길 즐기고, 누리꾼들의 재치와 발랄함을 항상 즐거워하신다. 보기 좋고 남기고 싶은 것은 꼬박꼬박 사진에 담고, 미사와 강의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는 이 모든 일을 홀로 하신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은 사치가 아닌데도 참 끝도 없구나 싶다.
그렇다고 그 많던 역사적 일들을 스스로의 힘으로만 결단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과 행동은 조국 통일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한 고 조성만 열사의 죽음 앞에 자신의 무지를 속죄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새만금 생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당시 생태적 삶을 고민했던 청년들의 새만금 순례에 참여하면서 안내되었다. 항상 마음의 준비는 했겠지만, 그냥 스쳐지나는 인연들을 마음으로 경청하고 나누면서 자신의 길을 사색하며 큰 결단을 하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겠는가.
하지만 일이 시작되면 진자리만 고집하며 참 꼬장꼬장하시다. 될 성싶은 일에 낯내는 자리, 그냥 존재감으로 초청되는 자리, 어른만으로 모셔지는 자리와 조직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우리 같은 젊은이들을 꾸짖는 대목도 어찌 보면 매한가지다. 남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모르는 척 넘어가려 할 때, 자기 밥그릇부터 챙겨놓은 뒤 손잡아주려 할 때 어찌 아시는지 딱 걸려서 잔뜩 꾸지람을 듣는다. “이웃의 손을 잡고자 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며 자신에게 득이 되거나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것을 다 주려 할 때 비로소 공존하고 함께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항상 이런 신념이니 일을 시작할 때 단식이든 순례든 자신을 다 내어놓고 시작한 것이 아닌가.
용산 재판에 눈물의 기도 올리실지니용산 참사 재판부가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신부님은 진실을 외면한 역사가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숱하게 보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함께 눈물 흘릴 것이다. 낮은 이웃들의 그 고통을 내게 주시라며 눈물의 기도를 올릴 것이다. 하지만 신부님은 오늘도 비통함을 넘어 가장 좋아한다는 “너 어디 있느냐?”는 성서의 가르침을 성찰하실지 모른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제 아픈 몸 마다하지 않을 그 길에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이웃과 벗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종섭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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